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진단]은 홈리스 대중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책, 제도들의 현황과 문제들을 살펴보는 꼭지 

 

복지부가 만든 의료공백, 메우는 것은 오직 당사자의 몫 

“노숙인 1종 의료급여,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주장욱 / 홈리스행동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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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릴레이 1인시위에 나선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들. <사진=홈리스행동>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자인 이모씨는 혈압약을 처방받기 위해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부속의원(이하 서울역 무료진료소)을 이용해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복지부가 「노숙인진료시설 지정 등에 관한 고시」를 제정하면서 이씨가 서울역 무료진료소를 꾸준히 방문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 복지부가 노숙인종합지원센터장과의 ‘주 1회 이상의 주기적 상담’을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수급 요건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고시에 따르면, 노숙인일시보호시설 또는 노숙인자활시설에 입소하지 않은 이씨의 경우 7일마다 노숙인종합지원센터를 방문하여 급여를 갱신해야 한다. 이씨가 상담에 임하지 않아 시설의 “관리 범위에서 벗어나는 경우” 이씨의 급여는 중지된다.

 

복지부는 이번 고시를 통해 ‘노숙인 등’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겠다고 하였으나, 홈리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제자리걸음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주의’ 이상의 감염병 위기경보 발령 시 노숙인진료시설을 확대 지정하여 의료공백의 발생을 막겠다면서 정작 진료시설을 이용할 때 필요한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수급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기껏 높인 의료접근성을 다시 낮추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시가 제정되면서 새롭게 수급 자격을 갖게 된 거리홈리스의 경우에도 의료접근성이 높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앞서 이씨의 경우처럼 매주 노숙인시설에 방문해야 급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거리홈리스에게는 지자체 의료지원사업이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공적 통로였다. 하지만 아플 때마다 시설에서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 병원을 이용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당사자들이 이를 기피하거나, 치료시기를 놓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노숙인 1종 의료급여를 신청하면 아플 때 별도의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지 않아도 노숙인진료시설을 곧바로 이용할 수 있다. 즉, 거리홈리스의 의료 이용을 가로막았던 ‘시설 입소’와 ‘진료의뢰서’라는 장벽이 이번 고시를 통해 허물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수급 자격을 유지하려면 7일마다 노숙인종합지원센터장과 상담해야 한다는 조건이 고시에 포함되면서, 진료가 필요할 때마다 시설에 방문하도록 만드는 지자체 의료지원사업과의 차별점이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의료급여를 신청하려는 거리홈리스에게 ‘시설 입소’냐, ‘주 1회 시설 방문’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남겼을 뿐이다. 장벽을 허물기는커녕, 홈리스 지원체계의 ‘시설 중심성’을 강화하는 보수 공사만 진행한 셈이다.

 

노숙인 1종 의료급여는 일정한 거주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료 이용 실태를 정부가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만들어졌다.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홈리스가 이용할 수 있는 병원의 종류와 수를 제한하고 ‘시설 입소’를 강제해왔다. 어떤 이유에서든 “건강에 관한 권리”는 침해받을 수 없다는 <보건의료기본법> 제10조의 내용은, 그럼에도 ‘노숙인 등’은 지정된 병원만을 이용해야 한다는 <의료급여법 시행규칙> 제3조 제2항과, 의료급여를 받고 싶으면 노숙인시설에 입소해야 한다는 의료급여사업의 지침 앞에서만 유독 힘을 잃었다.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가 해당 조항들은 홈리스의 “보편적 의료서비스 접근권을 침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에 대한 국가의 의무와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제도개선을 권고하였으나, 복지부는 권고 반영은커녕 이를 기만하는 내용의 고시를 뒤이어 제정한 것이다.

 

복지부가 메우지 못한 홈리스 지원체계의 공백은 결국 홈리스 당사자들이 채워야 하는 몫으로 돌아왔다. 한두 달에 한 번 혈압약을 처방받아 오는 것으로 충분했던 이씨는 이제 처방받을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매주 서울역 무료진료소를 방문한다. 거주 지역인 용산역 인근에는 내과 의원만 열 곳이 넘지만,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자를 진료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복지부는 제도개선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 운운하며 뒤로 물러서지 말고, 제도와 고시가 수급자의 현실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복지부의 존재 이유조차 되묻게 만드는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지하고, 공급자가 아닌 홈리스 당사자의 입장에서 의료급여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홈리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첫걸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사 속 기사]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의 폐지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올해 초 복지부에 해당 제도의 차별적 성격을 꼬집으며 전향적인 폐지를 권고했던 국가인권위원회가 또다시 입장을 냈다. 지난 5월 27일, 인권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복지부가 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 권고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향후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 폐지 등과 관련해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여 주기를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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