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동행]은 당사자들이 병원, 관공서, 법원, 시설 등을 이용할 때 부딪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전하는 꼭지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 신청 동행기  

 

<이동현 /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IMG-0370_수정.jpg

▲그림=주장욱(홈리스행동 집행위원)

 

이달 초, ㅎ님이 고시원 방문 틈에 끼어 있었다며 우편물을 하나 들고 왔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보낸 ‘LH(엘에이치) 매입임대주택 주거취약계층 계약체결 안내문’이었다. 작년에 신청한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을 고를 차례가 되었으니 후보 주택들을 살펴보고 계약 체결일에 나오라는 것이다. ㅎ님과 함께 주택개방일(후보 주택을 개방하는 기간, 통상 일주일 미만) 중 하루인 일요일 오전부터 집을 보러 다니기로 했다. 얘기가 끝나자마자 ㅎ님의 동료들이 훈수를 둔다. “시장 가까운 데를 골라야 해”, “마포가 좋아”, “아냐, 서대문이 더 좋아”….

 

집 보기

안내문에 수록된 이번 회차 공급 ‘주거취약 주택목록’은 모두 19개 동 26개 호였다. 주택을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은 예비순번이 빠른 순으로 주어지는데 ㅎ님은 무려 47번이었다. 거의 끝 순번이었다. 엘에이치공사는 선정 당일에 출석하지 않거나, 신청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주택 수 대비 약 두 배의 인원을 예비 순번으로 배치한다고 한다. 사정이야 무엇이든, 이렇게 뒤 순번을 받은 이들은 마땅한 집을 고르기가 매우 어렵다. 그나마 최적의 선택을 위해서는 모든 후보 주택에 방문해 순위를 매겨놔야 한다. 오전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중랑구,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성북구, 동대문구, 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에 있는 집 25개 호를 답사했다. 한 곳은 안 가봐도 될 만큼 외진 곳이라 가지 않기로 했다. 정작 ㅎ님이 사는 용산구에는 후보 주택이 하나도 없었다. “도심 내 저소득계층 등이 현 생활권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2021년 주택업무편람) 하겠다며 도입한 매입임대주택의 목적은 용산구에서는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집 고르기 1
집 보기가 끝나자마자 봐 둔 집들에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찍어 온 사진들을 함께 보고 기억을 떠올리며 순서를 정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우리 둘 다 25개의 집에 1등부터 25등까지 순위를 매기기엔 기억력과 판단력이 모자랐다. 결국 보고 온 집들을 1그룹(제일 좋은 집들), 2그룹(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살 만한 집들), 3그룹(결정적 문제가 있어 고르면 안 될 집들)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정리해 본 결과 1그룹은 8개 호, 2그룹은 4개 호, 절반 이상인 14개 호가 3그룹에 속했다. 그중 가장 ㅎ님의 마음에 든 집은 마포구의 한 다세대주택이었다. 후보 주택 건물 19개 동 중 유일하게 그 건물에만 승강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승강기 있는 집을 바란 것은 다리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체 장애가 없는데도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려면 휘청이고, 길에 약간의 단차가 있어도 걸려 넘어질 만큼 다리에 힘이 없다. 작년에는 4층에 있는 고시원 계단을 오르던 중 다리가 풀리는 바람에 굴러떨어져 전신 타박상에 팔이 부러지고 의식까지 잃어 한참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는 승강기가 없다면 1층에 있는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1층에 있는 집은 총 4개 호밖에 없었다. 1층이라도 다 되는 것은 아닌 게 전철역에서 걸어갈 만한 위치에 있는 집이어야 했다. 발달장애가 있고 글 읽기가 어려운 그에게 전철 타기는 숙달되면 가능하지만 버스 타기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승강기가 있거나 계단이 높지 않은 집, 전철에서 내려 걸어갈 수 있는 집, 거실만 말고 방이 있는 집. ㅎ님이 원하는 집의 조건이었다.
 
집 고르기 2
동호 선정 및 계약일이 다가왔다. 발품을 팔며 찜해 놓은 집들이 그의 몫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날이다. ㅎ님과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1번, 2번…. 앞 순위자들이 고르는 집들을 확인하고 주택목록에서 지워나갔다. 스무 명 남짓 호명될 때 쯤 우리가 찜했던 1그룹과 2그룹의 집들은 모두 사라졌다. 물론 ㅎ님의 순번이 되었을 때까지 남아있는 집도 몇 개 있었다. 그러나 그곳들은 우리의 분류에 따르면 모두 3그룹, 평생 살아갈 집으로 적절치 않은 곳들이었다. 앞 순위에 있던 이들도 비슷한 이유로 선택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하지 않은 이들에게 남은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안내문은 이렇게 전한다.
 
“잔여주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하지 않으실 경우에는 계약체결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예비입주자 자격이 별도 통보 없이 상실(계약포기) 됩니다”
 
주택 재고가 있는데도 고르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없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이 매입임대주택 재고 털라고 만든 정책인가? 이건 복지도 권리도 아니다. ㅎ님 보다 더 보행이 힘든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나 보행 보조기 이용 노인 같은 이들도 4층이든 5층이든 남은 집이 있으면 가야 하나? 어떻게 집에 사람을 맞추라 할 수 있나. ㅎ님의 경우 건강과 장애, 낮은 예비 순번을 고려할 때 집을 고를 수 없는 상황이 예상되었고, 공사 측과 사전 연락하여 해당 상황을 증빙할 자료를 제출하는 조건으로 다음 회차에 예비 순위를 배정받기로 하였다. 즉, ㅎ님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그러나 그날 동호 선정 자리에 왔다 헛걸음한 십 수명의 사람들은 어쩔 것인가. 까다롭고 눈 높은 사람들로 단정하고 말 일이 아니다. 포기하는 사람이 많으니 주택 재고 대비 예비자 수를 3배수, 4배수로 늘리면 될까? 적절한 주거를 공급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입주 신청자들의 특성을 고려한, 그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입지, 구조, 기능을 갖춘 주거를 공급해야 한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16 <홈리스뉴스 102호> 똑똑똑 - 창신동 쪽방촌과 동숭동 대항로 사이 파일
홈리스행동
126 2022-08-25
915 <홈리스뉴스 102호> 김땡땡의 홈리스만평 - "노숙물품 치우기 연합?" 파일
홈리스행동
82 2022-08-25
914 <홈리스뉴스 101호> 특집 - 용산구청에 주거대책 요구했던 텐트촌 주민들, 진통 끝 임대주택 입주 신청 마쳐 파일
홈리스행동
197 2022-07-04
913 <홈리스뉴스 101호> 진단 - 복지부가 만든 의료공백, 메우는 것은 오직 당사자의 몫 파일
홈리스행동
145 2022-07-04
912 <홈리스뉴스 101호> 이달의 짤막한 홈리스 소식 - 인권위, "노숙인 혐오 조장하는 게시물 부착은 인격권 침해" 파일
홈리스행동
111 2022-07-04
911 <홈리스뉴스 101호> 꼬집는 카메라 - 동의하지 않으면 계속 살 수 있을까? 파일
홈리스행동
112 2022-07-04
Selected <홈리스뉴스 101호> 동행 Ⅰ -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 신청 동행기 파일
홈리스행동
86 2022-07-04
909 <홈리스뉴스 101호> 동행 Ⅱ - '멀고도 험한' 긴급복지지원, 기초생활수급 신청의 길 파일
홈리스행동
79 2022-07-04
908 <홈리스뉴스 101호> 진단 - 거리홈리스 현장지원 체계 똑바로 개편하길 파일
홈리스행동
141 2022-07-04
907 <홈리스뉴스 101호> 어깨걸기 - 용산 다크투어. "용산, 시대를 걷다" 파일
홈리스행동
86 2022-07-04
906 <홈리스뉴스 101호> 당사자 발언대 - "우리도 한 명의 인간입니다" / 용산역 텐트촌 주민 이창복 파일
홈리스행동
95 2022-07-04
905 <홈리스뉴스 100호> 특집 - '시설 중심' 벗어나지 못한 '제2차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 파일
홈리스행동
244 2022-06-09
904 <홈리스뉴스 100호> 진단 - 영등포 소재 고시원 화재참사…고시원에 대한 주거ㆍ안전 대책 마련돼야 파일 [1]
홈리스행동
114 2022-06-09
903 <홈리스뉴스 100호> 꼬집는 카메라 Ⅰ - 고시원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받게 되는 신속‘차별’키트 파일
홈리스행동
110 2022-06-09
902 <홈리스뉴스 100호> 꼬집는 카메라 Ⅱ - 테러 위험이 아니라, '짐'입니다 파일
홈리스행동
86 2022-06-09
901 <홈리스뉴스 100호> 100호 특집 - 애독자들의 축하의 한 마디! 파일
홈리스행동
79 2022-06-09
900 <홈리스뉴스 100호> 100호 특집 - 홈리스뉴스, 10년의 말들 파일
홈리스행동
73 2022-06-09
899 <홈리스뉴스 100호> 동행 -노숙인 지원기관 방문부터 임시주거지원 신청까지... "정해진 만큼이라도 보장하라" 파일
홈리스행동
123 2022-06-09
898 <홈리스뉴스 100호> 어깨걸기 - 21년을 외쳤지만 끝나지 않은 싸움, 이동권 투쟁 파일
홈리스행동
91 2022-06-09
897 <홈리스뉴스 100호> 기고 - [당사자 기고] "수급권자의 권리, 제대로 보장해야 합니다" 파일
홈리스행동
71 2022-06-09
Tag List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