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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한 노숙인의 죽음을 기억하며...

 

주 영 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2001년 3월초 어느 날 이었으니 벌써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다. 아침에 신문을 펼쳤는데, 새벽에 운동을 하던 한 시민이 지금은 없어진 서울 동대문운동장 공중전화부스 옆 쓰레기더미에서 커다란 종이박스 안에 노숙인으로 보이는 주검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쓰여 있었다. 아마도 술에 취하고 허기진 그 노숙인의 몸이 막바지 거리의 겨울추위를 이겨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를 보다 더 슬프게 했던 내용은 그의 추정 사망시점이 발견된 날보다 보름이나 이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보름동안 서울시내에서 가장 화려한 지역 중 하나인 동대문운동장 앞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터인데, 누구 한 사람도 그 노숙인의 죽음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그의 주검을 인도받기 위해서 찾아온 망자의 동생은 그와의 추억으로 ‘가난했던 기억밖엔 없다’는 슬픔을 넘어서는 ‘한(恨)’을 토로했었다.

 

1998년 여름부터 노숙인들의 건강과 관련된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처음시작은 내가 회원으로 있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가 을지로 지하도에서 열었던 ‘노숙인 무료진료소’ 활동을 돕기 위하여 거리현장의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하면서부터였다. 지하도로 내려간 첫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한데, 당시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던 무료급식소가 인근에 있었고 몇 명인지도 모를 지하도를 가득 메운 노숙인들이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봐도 눈물이 날만큼 가슴 아픈 광경이었다. 급식소 봉사자로부터 당일 저녁식사를 제공받은 사람들이 대략 700명이었다고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건강실태조사를 통해 확인한 노숙인들의 정신적·신체적 문제는 심각했다. 오랜 노숙생활을 했던 분들도 일부 계셨지만, 상당수가 IMF 경제적 위기로 인하여 갑작스레 거리로 나오게 된 사람들이었고, 어디에도 체계화된 지원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밥 한 끼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상황이었다. 사실 몇 명이 거리에 있는지 그 누구도 대략적인 숫자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오죽했으랴. 그해 겨울이 다가오면서 서울시가 영등포(문래동)에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자유의 집’이라는 노숙인 시설을 구상하였는데, 집단수용 시 발생할 수 있는 응급상황 대처와 전염성 질병의 확산예방을 위하여 인의협에 건강검진을 포함한 의료적 지원을 요청해 와서 여러 인의협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결국 그 틀이 확대·발전되어 이후 서울역진료소(현재의 다시서기지원센터 진료소)를 설립하고 국·공립병원으로의 전원(후송)체계를 구축하는 등, 현재의 노숙인 의료시스템 기본구도를 완성하는 작은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2면-사진1.JPG

<사진 2면 사진-1> <사진 설명 : 노숙인 추모제에 참여한 한 거리 홈리스가 동료들의 영정에 분향하고 있다>

 

가끔씩 만나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노숙인 문제와 관련하여 10여 년 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대부분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처음 시작한 때부터 10여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의 사이에, 우리나라 노숙인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는가?’. 사실 이 질문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자료정리를 위하여 이전기록들을 찾다가 2001년에 언론에 기고한 자료들을 찾은 적이 있는데, 그 들 중에는 상기한 동대문운동장 노숙인 사망사건을 보면서 노숙인 정책 전반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했었던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동안 거리에서 사망한 노숙인은 적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아마도 노숙인 문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이라면 누구나 ‘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 노숙인 정책의 문제를 가장 주요하게 지적할 것이다. 즉, 지금까지 ‘관’의 정책은 노숙인들을 ‘공공에게 더러운 병을 옮기는’, 혹은 ‘도시미관을 해치는’, 혹은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몰염치한’ 사람들로 간주하고, 거리에서 물리적으로 제거하는데 주력하여 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정책방향의 문제점이 급기야 이제는 ‘거리의 주검’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이 기록이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머릿속에서 지금 서울역사에서 내쫓기고 있는 현재 노숙인들의 모습과, 이를 방관하고 있는 ‘관’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차라리 슬프기까지 하지 않은가? 아프게 고백하건데, 비록 나름 조그마한 성과가 있었다고 자부했건만, 노숙인 문제는 아직도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매년 신규로 유입되는 노숙인들이 1,000명-1,500명에 이르고 있고, 매년 사망함으로써 노숙을 벗어나는 분들이 300명-350명 정도씩 확인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울역’이나 ‘서울시’ 등의 공공부문이 지금 보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노숙인에 대한 인식과 정책을 고수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런지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10년 전 동대문운동장 전화부스옆에서 운명을 달리한 그 노숙인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과거로 회귀하려고 하는 우리나라 노숙인 정책의 비극적 결말이 예상되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더블딥으로 우려되는 미국발 경제위기가 닥쳐오고 있고 그 고통의 무게를 온전히 홀로 짊어져야 하는, 또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같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정리해고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풀뿌리 민초들 모두는, 비록 조금 늦었지만 이제 노숙현장이 때로는 자신이 빠져 들어갈 수도 있는 곳이라는 점에 대하여 공감하고, 지금에라도 모두가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과 어깨를 걸고 머리를 맞대어 이 풍랑을 헤쳐 가겠다는 의지를 모아 보여주면서 열심히 연대하여 싸웠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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