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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03
2022.03.17 (19:41:28)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지금 서울역 맞은편 양동 쪽방촌에서 살고 있는 이석기(가명)님은 1955년생 양띠에 외모도 성품도 “양 같은 사람”이다. 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양 같이 순한 그를 속이고 잡아 먹어댄 세상 속 수많은 승냥이들이 떠올라 분노와 송구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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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때부터 남의집살이했어요.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키도 작은 아이가 논 물구덩이에 푹푹 빠지고 지게로 나락 져내고 월급도 없이 밥이나 얻어먹는 꼬마 머슴살이를 한 거지요. 열네 살 때 친구 하나랑 같이 그냥 고향을 나와 버렸어요. 친구가 남의 집 쌀가마를 훔쳐 같이 짊어지고 도망 나오다가 잡혀서 소년원에서 몇 개월 살았어요. 그러고는 구두닦이, 넝마주이, 시장에서 짐 날라주기, 청소, 허드렛일, 그냥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겨우 먹고 살았어요. 가게에서 일 도와주다 도둑 누명을 쓰고 소년원에 또 갔다 나와서, 열차 타고 무조건 서울로 왔어요. 주로 서울역과 남대문시장 근처에서 파지를 주어 팔거나 니야까로 짐 나르는 일을 했어요. 잠은 니야까나 창고에서도 자고 남산에 올라가 노숙도 했어요. 어느 겨울 남산 벤치에서 자다 새벽에 깼는데 눈이 수북이 쌓였더라고요. 저 눈에 묻혀 얼어 죽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에 울기도 했어요. 그 중간에는 목포 신안에 있는 염전에서 거의 갇혀서 10년 정도 일했어요. 그 돈을 떼어먹힐 뻔했는데, 경찰 도움으로 겨우 밀린 돈을 받았어요. 그 돈을 고향 가서 농사짓는 형에게 모두 주고 다시 서울로 올라와, 주로 노숙하면서 또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그러다가 교회가 운영하는 시설에 들어갔고 거기서 수급자를 만들어줬는데, 십일조랑 감사헌금 내고 담배나 좀 사면 내 손에는 돈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몰래 도망 나와서 다시 서울역으로 왔다가 여기 양동에 방을 얻은 게 2019년이에요. 생전 처음 얻은 방이지요. 저는 이 방 하나면 충분해요. 사방 벽이 있는 방에서 자고 밥도 해 먹고, 여기 양동은 서울역도 가깝고 남산으로 산책하러 갈 수 있어서 숨도 트이고 마음도 편해져요. 지금 한글도 배우고 있고, 이젠 지하철이 무료니까 평생 가본 적 없는 서울과 경기도 여기저기 지하철로 많이 다녀요. 나는 스스로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못 배우고 가진 것 없고 빽도 없어서 남한테 속기도 많이 속고 명의도용도 당하고, 니아까로 남의 승용차를 실수로 긁어 그동안 모은 돈을 다 털어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남았잖아요.” 

 

1957년생인 김강태(가명)님은 어리고 젊은 시절 잘 나가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마흔 즈음인 IMF 외환위기 때 인생이 뒤집어졌다. “남들은 직장 잡고 결혼해서 세상에서 자기 삶을 한창 펼쳐갈 때, 서울역 건너 지금 연세빌딩 앞 은행나무 거리에서 노숙을 시작했어요. 열 명 정도 같이 있었는데 여섯 명은 일 나가고 네 명은 일 없고 몸이 안 좋아서 놀고 그런 식이었어요. 일을 나가는 사람만 나가는 게 아니라 로테이션으로 하는 거지요. 나도 지방에 있는 양계장이나 돼지농장에서 한참씩 일해서 돈 벌면 다시 서울역 연세빌딩 앞으로 왔지요. 돈 좀 모은 거 식당에 맡겨 놨다가 밥 묵고, 친구들도 동생들도 밥 사주고 같이 술 한 잔 먹고. 원래 그라던 데입니다, 거기가. 대한민국에 그런 법은 없지만,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그 좋은 법을 만들어 놨어요.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몰라도 내한테는 참 좋은 기억입니다.” 

 

서울역과 힐튼호텔 사이에 남대문 경찰서 뒤쪽 “양동 쪽방촌” 주민 8명의 평생 살아온 이야기와 활동가 2인의 이야기가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2021년,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후마니타스) 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홈리스 야학 교사와 자원 활동가들이 모인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주민들의 “스스로 말하기”를 돕고 기록했다. 

인터뷰를 거의 마치고 필자들의 글쓰기가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주민모임이 시작되었고, 먼저 돌아가신 이웃들의 공영장례에 함께 가다가 “양동 쪽방 주민회”를 만들었다.

 

2021년부터 다시 급하게 밀어붙여진 양동재개발 추진 과정에서 “양동 쪽방 주민회”가 중심이 된 활동과 투쟁으로 쪽방 주민들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남은 싸움이 아직 많고 남은 삶들이 이어질 테지만, 어쨌든 또 흩어지지 않고 마을에 모여 살게 되었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쪽방촌들은 돈과 가족을 최고로 치는 세상에서 가장 끝자리로 밀려나, 이젠 늙고 병들어 돌아갈 힘도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 김에 돈과 가족 따위를 넘어 “없이 사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며, 김강태님이 마흔과 쉰 즈음에 만들었던 ”은행나무 아래의 그 좋은 나라”를 다시 만들기에 딱 좋은 곳이다. 

 

최현숙 / 구술생애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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