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조회 수 : 131
2023.07.30 (20:09:45)

[현장스케치]

 

우리의 지하보도를 되찾는 여정

홈리스의 자리를 지켜낸 '화목한 지하도 감시활동'의 현장

<이재임 /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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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목한 지하도 감시활동에 참여해 피켓시위를 하는 당사자 활동가의 모습.  <사진=홈리스행동>

 

서울역 8, 9번 출구와 6, 7번 출구로 이어지는 지하보도는 서울역 홈리스 사이에서 이른바 ‘중앙통’으로 통한다. 이 일대는 거리홈리스가 비바람을 피해 잠을 청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어왔다. 홈리스가 많이 모이니 자연스레 이곳에서는 서울시립 노숙인 지원센터의 상담도 진행되고, 봉사단체가 물품을 나눠주는 ‘빵줄’이 서기도 한다. 홈리스행동 인권지킴이의 주요 활동 지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와 동료들은 이곳에서 머무는 이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두유도 나누고, 복지 상담을 진행해 왔다.
 
6월이었다. 까만 조끼를 차려입은 서울스퀘어 보안 직원이 지하보도 기둥 사이에 앉은 홈리스에게 언성을 높이며 자리를 옮기라고 명령하는 것을 인권지킴이가 목격했다. 서울역 8, 9번 출구에는 하나의 문이 더 있는데, 서울스퀘어(구 대우빌딩)으로 이어지는 출입문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서울스퀘어 보안 직원은 빌딩 안에 있지 않고 지하보도까지 나와 시민을 내쫓고 있을까. 인권지킴이가 항의하자 보안 직원은 지하보도 저 끝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서울스퀘어 관리 구간’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법적으로 우리 구역’이니 영업에 방해가 되는 홈리스는 퇴거시키는 게 당연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보안 직원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서울역 8, 9번 출구 밑으로 이어진 백여 미터 가량의 긴 통로는 서울시 중구청에서 소유하고 관리하는 곳으로 공공시설물에 해당한다. 이 내용은 본지 113호에도 실린 바 있다. ‘서울스퀘어 관리구간’이라는 표지판이 누구에 의해, 어떤 연유로 붙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해당 구역은 중구청이 관리한다는 표지판 또한 붙어있는, 엄연한 공공부지이다. 홈리스행동은 서울스퀘어 보안직원의 홈리스 강제퇴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서울스퀘어 정문 앞에서 열었다. 퇴거를 경험한 홈리스들이 다수 참여했다. 직접 퇴거를 겪은 한 참가자는 이렇게 발언했다. 
 
“저는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아 누워 자지도 못하고 기둥 사이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 자리에 앉아 버티니 한 명 더 불러와서는 “어르신, 안 가시면 저희가 들어서 옮겨드려요?”라고 합니다. 지금 안 나가면 앉은 채로 들어서 옮기겠다는 겁니다. 그렇게까지 당하고 싶지 않아서 내 발로 일어서서 나갔습니다. 지하도에 못 있게 하니 서울역 광장에서 기다리다가 밤 10시나 11시가 되면 내려가서 자고 있습니다. (...) 지하도를 관리해야 할 중구청에서는 자기들이 할 임무를 제대로 안 하고 방관하고 있습니다. 구청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국민의 권리를 지킬 의무가 있는데 이 상황을 수수방관하는 것이 화가 납니다. 그리고 서울스퀘어는 나라 땅에서 월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노숙인 인권 헌장도 있다고 하는데 노숙인들이 쫓겨나는 이런 상황이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자회견 뒤 서울스퀘어 보안팀에 의한 강제퇴거는 잠시 수그러드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금요일 저녁 인권지킴이 활동을 나가면 홈리스들의 제보가 빗발쳤다. ‘10시까지는 지하도에 못 오게 한다’, ‘다리가 아파 계단에 앉아있는데 자꾸만 일어나라고 했다’ 등. 인권지킴이가 오는 시간을 의식해 그 시간 동안은 퇴거를 하지 않았지만 다른 시간대에는 여전히 보안직원에 의한 퇴거가 지속됐다. 
 
인권지킴이는 이런 행태를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그래서 ‘화목한 지하도’라고 이름 붙인 서울역 앞 지하보도 감시활동을 시작했다.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퇴거명령이 가장 빈번했던 시간 동안 피켓을 들고, 유인물을 뿌리고, 기둥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버텼다.
이런다고 정말 바뀔까 염려되던 마음은 일찌감치 사라졌다. 기존 인권지킴이 활동가뿐 아니라 지하보도 퇴거 소식을 전해들은 서울역 홈리스들이 자원해서 활동에 참여했다. 함께 ‘퇴거에 불응하자’는 피켓을 들고, 기둥 사이에 몸자보를 입고 자리를 지켰다. 화목한 감시활동이 몇 차례 이어지자 지하보도에 보안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홈리스들은 속속들이 다시 계단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고, 깜빡 졸며 피로를 달랬다. 
 
눈에 띄게 바뀐 것도 있다. 일전에 보안직원이 기세등등하게 가리켰던 ‘서울스퀘어 관리 구간’ 표지판이 어느 날엔가 ‘중구청 관리 구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서울스퀘어 보안 직원 입장에선 더 이상 지하보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우길 명분이 사라진 셈이다. 지하보도를 방문한 중구청 직원을 통해 재차 이곳이 중구청 소유 부지임을 확인받기도 했다. 서울역 일대 홈리스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변화다.
 

서울스퀘어.jpg

▲ 왼쪽은 이전 표지판, 오른쪽은 현재 변경된 표지판이다. '서울스퀘어 관리구간'이 '중구청 관리구간'으로 바뀌었다. <사진=홈리스행동>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인권지킴이가 머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여전히 보안직원들은 활개를 치고 다닌다.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는 일은 그 누구보다 홈리스 그 자신이 목소리를 낼 때 효과적일 것이다. 보안 직원의 퇴거에 나홀로 대응하기 망설여진다면 화요일과 목요일 여덟시, 화목한 지하도 지킴이에 함께 하는 것도 방법이다. 빼앗지도 빼앗기지도 않아야 하는 우리 모두의 땅을 위해! 지하보도를 함께 지켜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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