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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281
2017.05.16 (22:44:21)
[동행]은 당사자들이 병원, 관공서, 법원, 시설 등을 이용할 때 부딪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전하는 꼭지
 
집 없는 사람이 수급자가 되는 법 下 
“고시원에 계신 분들이 문제를 많이 일으켜요”
 
<안형진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지난 2월 7일 오후. 홈리스행동 사무실에서 용수 아저씨와 정호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이날 주민센터(동사무소)에 함께 가서 전입신고와 수급신청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호에서 소개한 바 있듯, 「서울시 희망온돌사업」을 통해 두 달 치 방세를 이미 확보한데다, 고시원에 방까지 얻어둔 상태인지라 전입신고를 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터였다. 우려할 만한 것은 수급신청 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저씨들과 함께 용산구 OO동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용수 아저씨는 옛날에 살던 고향집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어 곧바로 전입신고(주소지 이전)가 가능했다. 그러나 정호 아저씨는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라 복원(재등록) 절차를 거쳐야만 했다. 하여 용수 아저씨가 혼자 전입신고를 하시는 동안, 나는 정호 아저씨를 보조하기로 했다.
 
 
“고시원 같은데 계신 분들이 문제를 많이 일으켜요”
 
정호 아저씨와 함께 창구로 간 나는 주민등록을 복원하러 왔다고 말하며 서류 하나를 건넸다. 그 서류는 주민증 발급 비용과 과태료를 경감받기 위해 다시서기를 통해 발급받은 것이었다. 이를 받아든 담당자는 나와 아저씨를 잠시 번갈아 보더니, 곧 이런저런 자료들을 꺼내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우리가 건넨 서류가 처리 가능한 것인지를 물었다. 시간이 한참 걸렸지만, 이것이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일을 하다보면 간혹 모르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 아닌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 다음에 발생했다. 과태료 경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담당자는 전입신고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내게 물었다. 그러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고시원 같은데 계신 분들이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고 덧붙였다. 말문이 막혔다. 대체 고시원 같은데 계신 분들이란 누구이고, 그 분들이 일으킨다는 문제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것이 지금 상황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아마 그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고시원에 방 잡은 노숙자를 데려와 무작정 전입신고만 하고 가면 자기네 관리 행정이 어려워진다” 정도였을 것이다. 사실 소득이랄 게 거의 없는 거리홈리스가 고시원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고시원에다 주민등록을 하려는 홈리스를 일선 공무원들이 ‘미래의 주민등록말소자’로 판단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이것이 ‘고시원 같은데 계신 분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안정적인 주거와 일자리를 보장하는 일엔 도통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무슨 지원이라도 받으려 치면 온갖 자격기준을 들이대는 정부와 지자체야말로 ‘미래의 주민등록말소자’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업무부담이 과중될 것을 우려하는 그 담당자의 태도야 과연 동정할 만한 것이지만, 그는 문제 삼아야할 대상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이 건으로 나와 공무원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일었다. 그 무렵, 다른 창구에서 혼자 전입신고를 하고 있던 용수 아저씨 또한 상당히 불쾌한 일을 겪고 있었다. 아저씨는 담당자로부터 “고시원에 진짜 사나 안 사나 나중에 확인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수급의 ‘수’자도 꺼내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과 들리실 거죠?”라는 퉁명스런 안내를 받아야만 했다. 당시 기분이 어땠냐는 내 질문에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분이 좋겠어요? 갑질이죠. (우리 같은 사람은) 아랫것으로 보는 거지.”
 
 
바야흐로 ‘도덕적 해이’가 판치는 세상
 
이후 주민센터 복지과에서 이뤄진 수급신청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조금 전의 창구 공무원들에 비하면, 이곳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은 거의 보살이었다. 다만, “연락 끊긴지 오래인” 가족이 있는 용수 아저씨의 경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다. 가족 관계가 단절된 경위를 글로 써달라는 담당자의 요청에 아저씨는 겸연쩍게 웃으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가난 증명. 출처=한겨레 2012.12.28. [김한민의 감수성 전쟁]
여기까지가 두 분의 아저씨와 함께했던 수급신청을 향한 여정이다. 두 달 가량을 기다린 끝에 아저씨들은 조건부 수급자가 되었다. 어딘가에 모여 있을 ‘가난 검증 전문가’들이 ‘자격 있음’ 판정을 내린 결과다. 그렇지만 이건 좀 웃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급신청을 하기까지 아저씨들과 내가 겪어야만 했던 일들 때문이다. 본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제도를, 그것도 시행된 지 벌써 수년이 지난 제도를 아저씨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자신들을 ‘받아줄’ 고시원이 없을까봐 발을 동동 굴러야 했고, 전입신고를 할 때는 ‘잠재적 문제인물’ 쯤으로 취급받는 수모를 당했다. 이 어이없고, 짜증나고, 불쾌한 일들을 아저씨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겪어야만 했다. 이런 과정을 감내하고 참아내면서 끝까지 수급신청을 한다는 건, 아마도 가난하지 않은 사람에겐 전연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러할진대, 추가로 또 무슨 ‘가난 검증’ 따위가 필요한 것일까.
 
대선을 앞둔 현재, 몇몇 후보자들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이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언론은 물론이요, 무슨 무슨 전문가라 자처하는 자들, 심지어는 공약을 내건 당사자의 입에서까지 ‘도덕적 해이’란 말이 오르내리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바야흐로 도덕적 해이가 판치는 세상이다. 수급신청 단계서부터 가난한 사람을 괴롭히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런 도덕적 해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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