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으로 더 떨어지지 말자” 배움의 불 밝히는 노숙인들 | |
3년전 주말배움터서 출발 한글·영어 등 맞춤식 강의 “발전하는 내모습에 뿌듯” | |
이승준 기자 | |
서대문 ‘홈리스 야학’ 가보니 지난 1일 저녁 7시께, 서울 서대문 인근 건물 3층에 있는 ‘홈리스행동’에 중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건물엔 지난달 16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홈리스야학’이 자리잡고 있다. 선생님들은 수업을 듣기 위해 등교하는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10평 남짓한 강의실에 들어오는 이들을 향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머금고 연신 “와츠 유어 네임?”이라고 묻는 이가 눈에 띄었다. “영어 공부하는 게 재밌어요. 영어를 배우니까 컴퓨터도 좀 알게 돼서 행복하고….” 그는 틈날 때마다 공책에 연필로 알파벳을 또박또박 적었다. 불혹을 넘긴 그(44)는 이곳 야학에서 ‘미안해요’로 통한다. 이름 대신 사용하는 애칭이다. 학생과 교사 간에 좀더 편안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은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 초등학교 졸업 뒤 구두닦이, 막노동일을 전전하다 교도소까지 다녀왔던 그는 별명을 스스로 ‘미안해요’라고 지었다. “제가 죄도 많이 짓고 실수도 많이 해서 ‘미안해요’라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자활근로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는 그는 뒤늦게 배우려는 이유를 묻자 “‘더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말자’는 게 제 신조입니다”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곳에서 35명의 학생들과 31명의 교사가 매주 월·화·수·토요일 저녁 7시30분부터 9시까지 모여 야학을 한다. 일반 야학과 달리 주거가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자, 노숙인 등을 위해 한글·기초영어·기초 컴퓨터·홈리스 권리교실 등 ‘맞춤식 교육’이 진행된다. 이날은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실장이 학생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강의했다. ‘없는 사람들에게 문턱이 높은 병원’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에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박수를 치며 공감했다. 눈꺼풀을 짓누르는 고단함에 꾸벅꾸벅 졸거나 딴청을 피우는 학생들도 더러 눈에 띄었지만, 출석한 27명의 학생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대형 서점 청소 일자리가 있는데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력서를 내세요.” 이날 강의가 끝나고 학생회장 조성래(52)씨가 학생들에게 공지사항을 전했다. 학생들에게 야학은 배움의 공간이자 사회와 연결되는 ‘끈’의 구실도 하고 있다. 야학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관계도 맺고, 일자리 정보를 공유하거나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권리도 알아가는 것이다. 조씨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쌓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학생회장의 말에 ‘종달새’(62)가 옆에서 거들었다. “영어를 배워 지하철이나 길에서 모르고 지나쳤던 말의 뜻도 알게 되고, ‘까막눈’ 신세를 면하니까 참 좋아.” 그는 높게, 멀리 날고 싶다는 의미로 종달새란 별명을 지었다고 했다. “내가 한단계씩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글·사진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