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성규 기자 = 서울 중구 중림동 약현 성당과 아바이 왕 순대국집 사이 골목.
‘한사랑 가족 공동체’라고 파란 글씨로 써 있는 이정표가 보였다. 노숙자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는 천주교 산하 자선기관인 ‘프란치꼬의 집’ 김수희 원장이 전해준 서울에서는 유일한 공동 쪽방촌이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은 비가 내리기 때문인지 더욱 좁아보였다. 이정표를 따라 가니 윤석찬 프란치스꼬 신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문패에는 서울 중구 중림동 149-27번지라고 주소가 쓰여 있다.
외벽이 낡아 있었고, 철조망으로 건물 외벽이 둘러싸여 위태위태해 보였다. ‘가톨릭 한사랑 가족공동체’라는 팻말만이 이곳이 쪽방식구들이 공동생활하는 쪽방촌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윤 신부는 기자에게 3.3㎡(1평)남짓 되는 쪽방을 보여줬다. 이어서 쪽방 식구들이 같이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는 공간인 사랑방을 소개했다.
사랑방에는 쪽방식구들이 지금까지 얼마만큼 적금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도 하나 붙어 있었다. 50만 원에서 300만 원 이상까지 식구들이 적금한 금액도 천차만별이었다. 쪽방식구들 5~6명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건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윤석찬 신부는 “2003년도부터 용산성당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빈센치오 회원들이 처음 서울역에서 무료급식을 한 것이 계기가 돼 시작했다”며 쪽방촌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빈센치오 회원들은 다른 곳에서도 무료급식을 하고 있어 노숙자들을 도울 다른 방안을 강구하다가 쪽방촌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이후 2년간 세브란스 병원 의사들이 주축이 돼 방세를 지원하면서 이곳에 쪽방촌이 들어서게 됐다. 윤 신부는 2007년 4월께 안식년 차원에서 쪽방생활을 하면서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
윤 신부는 “처음에는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려 했지만, 그 상태론 구심점 역할을 하기가 어려워져 지금처럼 됐다”며 “이후 조금씩 방을 더 얻게 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난한 사람은 혼자 살기 힘들다”며 “이곳은 각자 방을 쓰지만 생활은 같이 하는 느슨한 형태의 가족공동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사랑 가족 공동체의 거주자는 총 62명이다. 이 중 이곳 중림동에 거주하는 이들이 34명, 마포 고시촌에 3명, 동자동과 후암동에 16명, 그 외 지역에 9명이 있다.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의 30%는 병원비 없고 갈 곳 없는 이들이 성가복지병원, 국립의료원 등에서 치료를 마치고 병원에서 의뢰해 여기서 상담을 마치고 들어왔다. 또 다른 30%는 노숙인센터에서 의뢰해 상담하고 들어왔고, 나머지 30%는 이곳에서 길가다가 발견해 데리고 왔다.
이처럼 들어오는 경로는 다양하지만, 들어올 수 있는 기준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건강이 너무 안 좋아 요양원에 가야하는 상황이나, 다른 사람에게 극심한 피해를 주는 경우만 아니면 누구나 이곳에 들어올 수 있다.
윤 신부는 “중림동에 거주하는 이들은 같이 식사를 하고 같이 생활하고 있다. 다른 곳에 있는 이들은 여기 와서 밥을 먹기도 하고 쌀을 가져가기도 한다”며 “이쪽에서 그들에게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 거리를 두고 있는 친구들을 가장 편한 상태로 두는 것이지만 적금 관리는 함께 한다”고 말했다.
적금관리는 쪽방식구들이 일을 하거나 기초수급으로 받은 돈을 스스로 적금케 한다. 이들에게 희망을 줘 스스로 자립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윤 신부는 쪽방식구들의 적금 노트를 펼치며 “벌써 1000만 원 이상 적금을 쌓은 가족도 있다”며 “이들에겐 이 같은 방식이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적금을 쌓는 방식은 식구들이 한 달에 40만~100만 원을 벌면 그 중 방세로 15만 원을 내고 저금을 5만~15만 원을 한다. 그러면 저금을 하는 사람들에게 방세 15만 원 중 5만 원만 방세로 내게 하고 나머지는 저금에 더해 적금으로 부어주는 형태다.
그는 “올 6월에는 적금을 300만 원 이상 한 식구들을 대상으로 일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생활의 동력을 부여하고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고철을 주우며 가족생활을 하고 있는 김성주(가명)씨도 “적금 300만 원이 넘어 나도 일본여행을 간다”며 기뻐했다.
쪽방가족들은 공동 쪽방촌에서 이처럼 스스로 돈을 벌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조금씩 자립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쪽방에서 벗어나야 진짜 자립이라고 보는 사회적 시선이 그 첫 번째 어려움이다.
윤석찬 신부는 “장기적으로 이들이 새로운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돌아가야 할 일상이 없었던 사람”이라며 이곳에서 나가야 자립이라고 보는 의견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어 “이곳은 사회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이들의 용이한 생활형태라고 볼 수 있다”며 쪽방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를 하나의 자립으로 봤다.
또 다른 어려움은 이들을 위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할 의사와 능력이 되는 식구들은 서울시의 취로 사업, 국가에서 하는 공공근로, 일용직의 형태로 일을 하고 있지만, 나머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받는 40만 원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윤 신부는 “요즘은 일용직 일자리도 구하기 어렵고 음식점 등의 일자리도 많이 줄어들었다”며 “정부에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또 “몸이 아프기는 하지만 일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있는데 기초수급을 못 받을까봐 일을 못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며 “이들이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2007년도에 생을 포기하고 노숙을 하다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됐다는 박주혁(가명)씨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으로 살고 있지만 이곳에 와서 몸도 많이 좋아지고 마음의 안정도 찾았다. 무엇보다 진정한 삶의 의미가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의 경우 기초수급으로 방세, 병원비, 차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것이 없는 형편이다. 그 역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윤석찬 신부는 그러나 물질적인 지원만이 이들의 자립을 도울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들은 내면이 많이 부서지고 박탈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내면을 자립시키는 데는 정부의 물질적 지원으로만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신부는 “대부분 이들과 관련된 질문은 눈에 보이는 질문들이 많다”며 “초점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적립하면서 내면이 치유되고 내적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많은 것을 갖고도 욕망과 불평·불만으로 사는 사람이 많은데 여기 있는 식구들은 적은 걸 갖고도 행복해 한다”며 “이들이 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한사랑 가족 공동체 골목길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골목은 더 이상 좁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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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166호(3월1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