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주말배움터’…“여기 안왔으면 다시 길거리로”
| 기사입력 2009-12-02 01:23
‘노숙인 주말배움터’의 교사·학우들이 종강을 앞둔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종로구 동숭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한 학우의 칠순 축하잔치를 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ㆍ직장인·대학생 봉사자들 요리·컴퓨터 등 교육
3년 전만 해도 김동민씨(39)가 살던 곳은 서울 남산 안중근기념관 처마 밑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잃은 일자리를 아직까지 잡지 못하고 있다. 지방의 양돈·양계장을 떠돌면서 가축분뇨를 치우고 겨우 돈을 벌었지만 일거리가 없어지면 돈이 떨어져 또다시 거리로 나앉았다. 그렇게 처마 밑에서 겨울을 세 번 보냈다. 그러다 김씨는 노숙인 인권운동단체 ‘홈리스행동’이 여는 ‘노숙인 주말배움터’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컴퓨터와 요리를 배우고 진로를 상담한 지 2년째. 그는 지금 토지주택공사의 임대주택에 살며 공공근로로 적금도 붓고 있다.
지난달 29일 종로구 동숭동 노들장애인야학 교실. 일요일마다 노숙인들에게 요리·컴퓨터·몸살림(전통체조)·노숙인권리 등을 가르쳐온 ‘노숙인 주말배움터’에는 특별한 행사가 벌어졌다. 종강을 일주일 앞두고 ‘사랑의 김장’ 담그기와 학우 이모씨(70)의 칠순잔치가 함께 열렸다.
부침개를 만들던 김종언씨(44)는 “다들 저마다의 사연이 많다. 나도 여기 안 왔으면 다시 노숙생활로 되돌아갔을 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노숙생활을 시작한 것은 2002년이었다. 회사가 부도난 뒤 카드 빚으로 생계를 이어가다 결국 남대문 근처에서 노숙하게 됐다. 4년 전 배움터를 찾은 김씨는 “이제야 생활이 안정돼 7년 만에 부모님을 찾아뵈었다”며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장남인데 얼마나 걱정하셨겠어요.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못 드렸죠.”
2005년 출발한 노숙인 주말배움터에 나오는 이들은 현재 30여명.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자원봉사 교사를 맡고 있다.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노숙인 실태 조사를 하면서 대부분 취미도 없고 평균 학력도 낮은 사실을 알게 돼 문화교육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배움터는 ‘인생 배움터’였다.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기씨(46)는 “노숙을 하면 가정과 친구를 잃고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끝내 술이나 노름에 빠지게 된다”며 “언제든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여겼는데, 결국엔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컴퓨터 교사인 박준수씨(28·대학원생)는 “가르치기보다 배운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오후 6시쯤 칠순잔치 준비가 끝났다. 상마다 김이 솟는 밥과 국, 붉게 절인 김치와 삶은 돼지고기가 올라왔다. 이씨의 칠순 인생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되고 활동가들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이씨는 “행복한 자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훔쳤다. 눈시울이 붉어진 김동민씨는 “고아로 자라 나이 사십이 되도록 한 곳에 정 붙인 적이 없었는데 이곳과의 인연은 죽을 때까지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적금을 타 배움터 교실 마련 비용으로 내는 게 그의 꿈이다.
<황경상기자 yellowpi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