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특집 Ⅰ> 


 서울시 공영장례 조례, 홈리스운동의 새 과제


<이동현 /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공중 화장실에서 흔히 보이는 문구다. 사소할 수 있는 행동까지 존재의 차원으로 승급시켜 읽는 이를 압박한다. 사람의 행동이 그렇게 한결 같은 지 모를 일이다. 다만, 가난한 삶은 가난한 죽음으로 일관되었다. 가난하고 주목받지 못했던 삶 뒤에, 꼭 그런 마무리가 따랐다.


“지난 주, 이천에 사시던 형님이 돌아가셨는데 시신 포기 각서 써 주고 왔어요.”


작년 5월 5일, 대통령 사전투표가 있던 날, 광장 구석의 한 거리 홈리스가 소주를 마신 이유다.


유기물처럼 여겨졌던 무연고 시신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이하, 시체해부법)」은 인수자가 없는 시체가 발생하였을 때 교육 또는 연구를 위해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 조항은 1962년 「시체해부 보존법」 제정 시 부터 존속한 것으로,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의 의사를 불문하고 시체를 해부하도록 한 패륜적 유물이었다. 무연고로 돌아간 이들의 시신을 유기물과 같이 다루도록 제도가 용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2015년 11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생전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무연고 시신을 해부용으로 제공하도록 한 시체해부법은 위헌이라 선고하였다. 2016년 2월 법 개정을 통해 무연고시신을 해부·교육용으로 사용하도록 한 반인권적 법조항은 사라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항이 50년 이상 존속했다는 것만으로도 가난한 이들을 대하는 우리사회의 폭력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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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만 가는 무연고 사망
작년 10월, 국회의원 정춘숙 의원실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가 지속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중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의 인수를 포기한 이들의 수의 증가세는 더 가파르다. 2016년의 경우 무연고사망자 1,496명 중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을 포기한 이의 비율은 42%에 이른다. 이 뿐 아니다. 지자체마다 독거 기초수급자 사망자를 무연고 사망자의 통계에 넣기도, 빼기도 하는데 이들의 규모는 2016년 기준, 2만 명에 이른다.


▲   작년 11월 22일, 무연고시신의 유골을 봉안하는 시립승화원 100구역 추모의집.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무연고 사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법회를 가졌다. <사진 출처=홈리스행동>

‘무연고(無緣故)’라는 용어는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나, 사실은 다르다. 앞서 보았듯, 연고자가 있는 죽음이 절반에 육박한다. 치료 중 쌓인 병원비의 부담이든, 연고자를 찾는 기간 동안 발생한 시신 안치료의 부담이든, 높은 장례비용을 마련할 형편이 안 되든 연고가 있는 많은 죽음들이 무연고라는 이름을 달게 된다.


지우기 바빴던 가난한 죽음들
보건복지부의 「무연고 시신 등의 처리 매뉴얼」은 장례에 필수적인 ‘빈소 사용료’를 누락하고 있다. 결국 무연고 시신들은 장례 없이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이동하는, 소위 ‘직장(直葬)’을 당할 수밖에 없다. 부고(訃告)도 돌지 않는다. 무연고 사망자 공고 시점이 “무연고 시신을 처리한 때”로 돼 있어 고인의 지인들은 절차가 끝난 후에야 망자가 무연고 처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서울시는 2015년도부터 민관협력사업 으로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사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나, 무연고 사망자의 절반을 포괄하는데 그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행 제도는 수급자가 사망할 경우 1구 당 75만원의 ‘장제급여’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으나, 여기에도 빈소사용료 같은 항목은 없다. 또한, 75만 원의 돈으로 장례를 치른다는 것 자체가 억지다. 복지부 역시 “현실태상 75만원의 금액으로 장제를 모두 치루는 것이 어렵다(민원답변, 2015.9.15.)”고 답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무연고 사망자든, 기초생활수급자든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존엄하게 대하지 않았다. 지우기 바빴다.


서울시의회, 공영장례조례를 발의하다
홈리스행동은 매해 홈리스추모제 추모팀을 중심으로, 가난한 이들의 존엄한 마무리를 요구해 왔다. 그리고 그 제도적 귀결로 서울시 공영장례조례의 제정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작년 11월 9일, 서울시의회 박양숙 의원(보건복지위원장)은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안」을 발의하였다. 그러나 이름값을 하기에 턱없이 부실한 조례안이었다.


▲   지난 2월 14일, 홈리스행동은 제대로 된 공영장례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설 귀향 서명전을 진행하였다. <사진 출처=홈리스행동>

우선, 지원대상이 지극히 선별적이었다. 조례안은 1)무연고시신, 2)기초수급자 중 연고자가 미성년자, 장애인, 75세 이상 어르신으로 장례처리 능력이 없는 경우, 3)그 밖에 시장이 인정하는 경우로 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초수급자도 전부 포괄하지 못하는 쪼그라든 조례안이었다. 둘째, 별 내용이 없었다. 조례안이 밝힌 지원내용에는 장례에 필수적인 빈소도, 장의 차량도 들어 있지 않았다. 더욱이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독거노인 장례서비스 집행기준’을 따르도록 하였는데, 이는 45만원 한도에서, 고작 3시간의 빈소를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셋째, 무연고사망자의 시신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방안을 누락하고 있었다. 무연고자라 하더라도 곁에 가까운 사람 하나 두지 않고 살라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부고를 띄우지 않고, 화장과 봉안 이후에 찾아보기도 힘든 지자체의 관보에 공고하고 끝내버리는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없었다.


그럼에도 서울시 의회는 예산 문제로 서울시와 협의가 잘 안 되니 한계가 있더라도 일단 통과시키고 이후에 수정하자 하였다. 그러나 예산이 문제라면 경과규정을 둬 시행시기를 늦추면 될 일이지 예산맞춤형 조례를 만들 이유는 없었다.


결국 추모팀은 허울에 불과한 서울시 조례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 항의 면담, 상임위원회 회의장 현장 대응 등을 진행하였고, 안건 상정을 저지하였다. 그 후 제대로 된 서울시 공영장례조례 제정을 위해 서울시 주무부서와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 면담 등을 진행하였다. 홈리스 당사자와 서울시민들에게 공영장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월 말부터 서명전도 진행하였다. 동자동 쪽방, 영등포 쪽방, 서울역 지하도와 광장에서 홈리스 당사자들을 만났다.


공영장례조례의 제정, 또 다른 과제
3월 7일, 수정된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가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 6개월 후 시행될 예정이다. 그동안 지속해서 요구했던 것 들 중 모든 기초생활보장수급자들을 지원 대상으로 포함, 장의 차량 등 필수 현물의 지원, 실효성 없는 ‘노인돌봄대상자인 독거노인 장례서비스 집행기준’ 삭제 등이 반영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   2월 22일, 홈리스행동은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58명의 공영장례조례 청원 서명서를 전달하였다. <사진 출처=홈리스행동>

우선, 조례의 핵심이라 할 ‘지원 대상’이 시행규칙으로 과도하게 위임되었다. 조례는 장제급여를 받는 기초수급자, 차상위 계층을 지원 대상으로 정했으나 구체 범위를 ‘시행규칙’으로 위임하였다. 그리고 시행규칙은 서울시가 정한다. 즉, 기초수급자 전부를 대상으로 할 것이냐, 일부만 할 것이냐의 싸움이 여전히 남아있고, 다만 그 대상이 시의회에서 서울시로 옮겨졌을 뿐이다. 둘째, 무연고사망자 시신 처리의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이 없다. 무연고 사망자 발생 시 부고를 전해 지인들이 장례에 참여할 방안은 새로운 조례에도 여전히 담겨 있지 않다. 또한, 서울시의 ‘저소득 시민 장례지원 계획(안)’에 저소득층 장례지원과 연고자가 없는 무연고사 장례지원이 구분되어 있어, 무연고 사망자가 공영장례에서도 차등이 될 우려가 있다. 셋째, 공영장례가 장례서비스업체들의 시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서울시는 입찰을 통해 장례서비스 업체를 선정하는 익숙한 방식을 채택 할 것이다. 그리고 민간업자들의 이윤추구 과정에서 공영장례는 충분히 왜곡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조례(제4조)에 명시된 “공설장례식장”의 확충을 적극 요구해야 한다. “공영장례는 공설장례식장에서 치른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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