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똑똑똑]은 초보 활동가의 반빈곤 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을 담은 꼭지

 

창신동 쪽방촌과 동숭동 대항로 사이

증명의 무게와 지원의 공백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사회에서  

 

<민푸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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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과 창신동 쪽방촌, 대항로 유리빌딩 사이를 표현한 그림 <그림=필자>

 

반갑습니다. ‘병화’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민푸름이라고 합니다. 저는 현재 장애당사자들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조력하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노들센터’)라는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들센터는 올해부터 창신동 주민분들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창신동에 거주하시는 (미)등록 장애인분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입니다. 

 

장애운동판에서 활동하는 제가 홈리스뉴스에 글을 쓴다는 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사실 반빈곤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은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예를 들어, 매년 7월 1일은 반빈곤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이 끈끈하게 함께하는 날입니다. 2019년 7월 1일 장애등급제가 가짜 폐지된 날에 맞춰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장애등급제는 당사자로 하여금 ‘장애와 고통’을, 부양의무제는 당사자로 하여금 ‘가난과 단절’을 스스로 증명하도록 강제한다는 점에서 둘은 닮아 있습니다.

 

증명의 무게

창신동 쪽방촌과 동숭동 대항로를 오가며 가장 자주 생각한 것이 바로 이 증명의 무게였습니다. 창신동 주민분들께 장애등록 혹은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사용을 위한 종합조사를 제안했을 때 다들 차라리 수급자 등록이 더 쉽다, 장애등록은 준비하기 너무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유를 여쭈니 본인도 모른다고, 분명히 의사는 충분히 장애판정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왜 매번 떨어지는지 모르겠다고도 하셨습니다.

 

현재 서울시에서 매년 진행하는 서울시 쪽방촌 거주민 실태조사는 주민분들의 장애유형과 장애등록 여부만을 조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실태조사에 따라 마을에서 장애판정의 문턱을 넘어 증명되어 국가가 승인한 장애당사자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을에서는 실태조사가 미처 담지 못한 더 다양한 몸의 주민분들을 만났습니다. 현재 장애인복지법에서 인정하는 15가지 장애에 속하지 않는 장애, 혹은 질환을 가져 장애등록의 문턱 앞까지도 가지 못하는 몸, 이 정도의 장애로는 장애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듣는 몸, 장애등급은 받았으나 충분히 장애를 증명하지 않았다며 낮은 등급으로 판정된 몸, 수십 년 전 의료기록을 찾아 지역의 병원을 방문하라고 요구받는 몸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증명의 무게는 오롯이 주민분들 어깨에만 올라가 있을 뿐 공공은 이 책임을 함께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증명의 무게가 주민들을 짓누르는 동안 주민들의 장애와 질환은 더욱 심화되어 이제는 병원도 겨우 갈 정도 혹은 병원에 가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진 몸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공백의 무게

이렇게 증명의 무게를 개인들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그 증명에 뒤따르는 또 다른 증명의 무게도 개인들의 몫이 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입니다. 장애판정을 받으려면 자신이 <장애인복지법>이 규정하는 장애인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장애연금을 받으려면 1, 2급이거나, 3급이지만 중복장애 판정을 받아야 하고,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으려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정말 필요한 장애인인지, 필요하다면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필요한 장애인인지 판정하는 종합조사라는 것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이처럼 공공은 증명, 지원, 자원의 무게를 개인에게 지우고 있습니다. 개인들은 그 무게를 홀로 감당하거나, 뜻이 맞는 가족, 친구, 이웃 등에게 의존하며 겨우 견딜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당사자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장애인 거주시설로, 요양시설로 보내집니다. 마치 홈리스 분들이 요양시설, 재활시설로 갈 것을 강요받듯 말입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공공은 그들을 지역사회에서 살면 안 되는, 나아가 살 수 없는 이들로 둔갑시켜버립니다.

 

실제로 제가 창신동 마을에서 만나 뵌 당사자분들은 대부분 이웃 주민분들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웃들이 식사를 대신 차리고, 치워주지 않았다면, 계단이 있는 쪽방상담소의 세탁실 혹은 샤워실까지 부축하지 않았다면, 매일 아침저녁 방까지 찾아와 안부를 묻지 않았다면, 수동휠체어를 밀고 병원이나 주민센터에 동행해주지 않았다면, 당사자 대신 지금 당장 이용 가능한 돌봄서비스를 알아봐 주지 않았다면 지역사회에서의 삶은 더욱 위태로웠을 겁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7월 1일 ‘장애등급자 진짜 폐지 전동행진’에서 그 어느 때보다 더 간절하게 외쳤습니다. 절박한 아픈 이들을 방치하는 장애등급제를 진짜 폐지하라고, 지역사회 완전 통합을 위한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하라고, 이 모든 것들이 당사자들의 삶에 가닿을 수 있는 전달체계를 구축하는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고. 언제까지고 개인들에게만 책임의 무게를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당사자들의 삶을 비용으로만 계산하는 공공에 당사자들의 삶을 삶 그 자체로 보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빈곤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이 힘을 합치고, 가난과 장애가 가로지르는 지점에 서 있는 당사자분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 증명의 무게와 지원 공백의 무게가 개인들이 아닌 공공의 책임이 될 것입니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우리 더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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