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진단]은 홈리스 대중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책, 제도들의 현황과 문제들을 살펴보는 꼭지

 

‘이용제한 조치’ 꺼내든 서울시립 따스한채움터

조치 시행 알리는 공지문 부착했다가 수거…지원 무기 삼는 지원기관, 존재 이유 있는가 

 

<안형진 /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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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터 입구에 부착된 문제의 공지문 <사진=홈리스행동>

 

 

 

지난 14일, 서울시가 위탁운영 중인 ‘서울역 실내급식장 따스한채움터’(이하 ‘채움터’) 건물 외벽에 이용 제한 조치를 시행한다는 공지문이 붙었다. “취한 상태로 이용하는 경우”, “실내에서 소란을 피운 경우”, “폭행을 하는 경우”, “직원 통제에 3회 불응한 경우”, “비품, 집기 등을 고의로 파손하거나 훔친 경우” 그에 상응하는 법적 조치와 더불어 일정 기간 채움터 이용을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제재 기준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매일같이 찾아오는 지원기관 초입에 난데없이 경고성 게시물을 부착한 경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서울시(자활지원과)에 사실 확인을 요구했다. 담당 주무관은 “최근 이용자가 늘면서 주취 행패가 발생하는 등 운영상의 어려움이 있어 (공지문을) 붙였다고 들었다”라면서, 다만 “시와 상의 없이 기관에서 임의로 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서비스지원 여부를 수탁기관이 임의로 결정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지만, 그것만을 문제 삼자는 것이 아니다. 채움터의 이번 조치, 무엇이 문제일까.

 

 

“이용자의 자존감” 뭉개기

 

가장 큰 문제는 채움터 이용자들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점이다. 채움터가 내건 공지문은 이용자들로 하여금 식사를 위해 채움터를 찾을 때마다 “당신은 제재당할 수 있다”라는 겁박과 모욕을 감수하도록 만든다. 심지어 공지문은 이용자들에게 ‘이용제한 조치’가 왜 필요하며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제재의 대상, 내용만을 일방적으로 전할 뿐이다. 

 

지난 2010년 채움터가 개소한 이래, 줄곧 서울시는 채움터의 설립 이유이자 장점으로 “이용자의 자존감 향상”을 강조해 왔다. “쪼그리고 앉아 허겁지겁 먹을 수밖에 없는 거리 급식”은 급식 이용자의 자존감을 낮추기에 실내 급식 장소인 채움터를 설립ㆍ운영 중이라는 것이 서울시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급식 이용자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단지 ‘급식장소’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지원’을 무기 삼는 지원기관?

 

채움터 조치의 두 번째 문제는 ‘골치 아픈’ 이용자를 제재하기 위해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서비스의 제공을 중단하려 했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채움터는 ‘급식소’가 아닌, 외부에서 조리된 음식을 가져와서 제공하는 ‘급식장’이다. 이러한 운영 구조상 급식의 질과 양을 담보하기란 불가능하다. 실제로, 채움터 이용자들에게 ‘맛없음’, ‘부족함’이란 평가를 전해 듣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거리홈리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오늘도 채움터를 찾는다. 서울시가 시의회에 보고한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채움터의 하루 평균 이용인원은 300명을 훌쩍 넘는다. 맛이 없고 양이 적은데도 채움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숙인복지법> 제21조는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해놓고 있다. 법을 떠나 상식선에서 생각하더라도, 기관운영을 위해 ‘지원’을 무기 삼는 지원기관이 과연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과잉 통제’의 심화

 

채움터 조치의 세 번째 문제는, 그간 잘못된 기관 운영으로 인해 이용자들에 대한 ‘과잉 통제’가 예삿일이 된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오히려 과잉 통제를 더욱 심화하는 길을 택했다는 데 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을 해보자. “취한 상태”, “소란”, “통제 불응” 따위를 누가 판단하고 개입하게 될까?

 

코로나19 팬데믹 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20년, 채움터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를 수행한 일이 있다. 당시 조사 참여자들이 한목소리로 “통제와 간섭이 지나치게 심하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이때 ‘통제와 간섭’의 주체는 정식 직원(사회복지사)이 아닌 ‘서울시 노숙인 전일제 일자리’ 참여자들이었다. 실제 작년 서울시의회에서도 채움터 내 일자리 참여자들의 과잉 통제가 문제로 거론된 일이 있다. 

예전부터 채움터는 일자리 참여자들에게 일종의 질서유지 역할을 맡겨 왔다(물론 이는 채움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채움터를 방문할 때, 이용자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은 사회복지사가 아닌 ‘일자리 참여자’였고, 이용자 간의 갈등이 발생할 때나 이용자가 문제를 제기할 때, 가장 먼저 상황에 개입하는 사람도 ‘일자리 참여자’였다. 사회복지서비스 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대면 서비스’가 훈련받지 못한 비(非)전문가의 몫으로 떠넘겨져 있는 것이다. 이미 시의회에서 지적사항으로 다뤄질 정도로 문제가 심각함에도 “직원 통제 불응” 운운하며 통제를 더욱 강화하려 한 채움터의 조치를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외려 이는 당사자들을 서로 다른 편으로 갈라놓는 분할통치를 떠오르게 할 뿐이다.

 

물론 일자리 참여자들은 잘못된 개입과 통제에서 비롯된 결과에 책임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복지서비스 전달 과정에서 전문성을 갖출 수 있을 만큼 충분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건 일자리 참여자들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명백히 오롯이 채움터의 운영 주체인 서울시와 수탁기관의 책임이다.

 

 

게시물은 떼어졌지만…

 

홈리스행동은 서울시 담당 주무관에게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을 전했고, 그로부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문제의 공지문은 제거됐다. 그렇다고 해서, 이용자들이 겪어야 했던 모욕과 수치심이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년 말, 시의회는 채움터에서 비리ㆍ부정이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서울시가 제출한 ‘민간위탁 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심지어 시의회에서는 시가 직접 운영할 것을 서울시에 요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에 서울시는 “단순 업무에 공무원을 배치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전하며 난감해했을 뿐이다. 올해 1월, 서울시는 “노숙인 무료급식 관련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법인 등에 위탁하여 운영할 필요”를 내세우며 채움터 운영사무에 대한 민간위탁 동의안을 다시금 시의회에 제출했고, 결국 동의안은 통과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미루어볼 때, 서울시가 ‘민간위탁 불가피론’의 근거로 제시한 “노숙인 무료급식 관련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의 실체가 무엇인지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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