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편집위원의 시선]

 

낙인과 차별을 겪으며 왜 동행해야 하나?

존중받는 밥상이 될 수 없는 오세훈 표 동행식당

 

<림보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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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약자와의 동행’을 기치로 내걸고 노숙인급식시설(참좋은친구들)에 배식봉사를 하러 왔다는 소식에

피케팅 시위에 나선 쪽방주민과 활동가의 모습 <사진=홈리스행동>

 

지난 7월 1일, 민선 8기 서울시장이 된 오세훈은 온라인으로 취임사를 발표하고 창신동 쪽방촌으로 갔다. 선거 때부터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기조를 앞세운 오세훈 서울시장은 고작 열흘을 고민하고 취약계층 보호정책을 취임 첫날 내놓았는데, 바로 ‘노숙인ㆍ쪽방주민 3대 지원방안’이다. 물론 쪽방주민을 비롯한 홈리스 당사자들은 오세훈 시장의 ‘약자와의 동행’은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일 뿐, 대화 없는 일방적 소통 속에서 동행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8월 1일부터 동행식당 사업이 시작됐다. 

 

지역상권도 살고 쪽방주민의 식비 부담도 덜기 위해 시작했다는 동행식당의 운영방식을 설명하자면 대략 이렇다. △쪽방주민이 8천원 상당의 식권을 쪽방상담소를 통해 발급받는다. △식권을 받으면 지정된 ‘동행식당’에서 1일 1식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는 월별로 식당이 받은 식권을 정산해준다. 그러니까 동행식당 사업은 일종의 바우처를 활용한 급식지원 서비스다. 집단급식소를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적은 예산을 쓴다는 장점을 내세우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영역(시장가치)에 의존하는 지원방식이다. 

 

그동안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사회운동단체는 홈리스 급식지원 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할 것을 요구해 왔다. 식품위생법을 거스르지 않는 제대로 된 급식소를 권역별로 설치해야 급식원정을 다니는 홈리스들의 수고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민간의 자원에 기대지 않는 항시적인 급식지원 서비스의 필요성은 코로나19 시기에 충분히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민간의 급식지원이 중단되면서 거리홈리스가 하루에 두 끼도 채 먹지 못했다는 조사결과를 감안할 때, 홈리스와 취약계층의 규칙적인 식사를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제대로 된 급식지원을 할 책무가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에 있음은 명확하다. 

 

물론 홈리스의 거처별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지원방식의 하나로 동행식당과 같은 아이디어는 일면 환영받을 만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쪽방주민은 열악한 취사시설이나 공간의 어려움으로 특히 여름철 직접 밥을 지어 먹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동행식당의 운영방식이 식권을 이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확연히 구별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로써 식당 주인이나 종업원, 다른 식당 이용자에 의해 모욕과 차별을 겪기 일쑤다.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식권으로 밥을 먹는데 공짜로 밥을 얻어먹는 사람으로 대놓고 무시당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식당을 이용하고 싶지 않을 테다. 수많은 홈리스와 급식소 이용자들이 분노하는 것이 변변찮은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으면서 귀하게 밥을 먹겠다는 것이다. 

 

눈치 보지 않고 존중받는 식사를 위해 식권이 아닌 현금지원도 고민할 수도 있다. 여타의 상황으로 자신의 존엄을 유지할 조건을 결핍한 이들은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보장을 누릴 권리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사회보장권이라고 부른다. 사회보장권은 현금이든 현물이든 차별 없이 혜택에 접근하고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복지지원을 할 때 식권과 같은 현물 제공방식을 주로 선택하는 이유는 제공자 관점에서 목표 달성에 유리하고, 제공자의 기준을 근거로 급여받는 이의 ‘비합리적 소비’를 통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리에서의 효율성이 높다는 것은 급여를 받는 이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여지가 대폭 축소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동행식당 식권으로는 주류를 이용할 수 없다. ‘홈리스’ ‘가난한 사람’이라는 낙인의 명찰 노릇하는 식권이 아닌, 복지지원을 받는 사람이 차별과 낙인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고작 열흘을 고민해서 만든 동행식당은 무례한 지원방식이다. 그렇게 해서는 존중받는 밥상을 준비할 수 없는 건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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