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당사자 발언대]

 

불평등한 재난, 미봉책은 이제 그만

 대책 없는 개발과 기후위기가 겹쳐지는 장소에서

 

<은희주 /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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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의에 대한 정부 대응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한 필자 <사진=빈곤사회연대>

 

 

얼마 전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의 참사 소식을 듣고 많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제가 살던 고시원, 지하방 같은 열악한 집들이 떠올라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울 청구역 근처 지하실에 산 적이 있습니다. 반지하도 아니고 창문 하나 없는 완전한 지하방이었습니다. 지하실을 쪼개 쪽방처럼 1인실을 만들고 숙박업소로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주방에서 음식을 해먹고 나면 하루 종일 음식 냄새가 빠지질 않았습니다. 옆방에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이 살았습니다. 아마 저처럼 조금이라도 저렴한 방을 찾아 온 모양이었습니다.

 

건물에는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찜질방처럼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이불이 축축할 정도로 습도가 높았습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열악한 집에 사는 사람들은 날씨를 그냥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지하실을 나와서는 고시원에서 주로 지냈습니다. 고시원 방은 지상이었고 에어컨도 있었지만 원장이 리모콘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살고 있는 개개인이 원하는 온도에 맞출 수 없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을 잘 때만 방에 들어가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차라리 밖에 나와서 생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갑니다.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주거비로 고를 수 있는 곳은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즉 ‘지옥고’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임대주택 제도 중 전세임대주택 제도가 있습니다. 공공이 보유한 임대주택이 아니라, 민간 임대시장의 집에 들어갈 수 있게 전세금을 지원해 주는 제도입니다. 이때 들어갈 수 있는 집들은 역시나 지하방, 원룸, 옥탑방, 고시원 같은 곳입니다. 정부와 제도가 사실상 열악한 주거환경에 가난한 사람들을 방치해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이번 폭우 참사 이후 반지하방을 없애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반지하방은 사라져야 할 주거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쪽방촌의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며 주민을 내쫓고, 내쫓기는 사람들을 그저 방치하고 있는 시장 입에서 나올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7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노숙인 쪽방 주민을 위한 3대 지원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폭염 대책으로 민간후원을 활용해 서울 지역 쪽방촌에 에어컨 150대를 설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동료들을 통해 전해들은 실상은 이러했습니다. 한 층에 12가구씩 모여 사는 쪽방 건물의 복도에 에어컨이 하나씩 달렸습니다. 에어컨 냉기를 느끼려면 방문을 항상 열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에어컨과 거리가 먼 복도 끝에 사는 사람은 이전과 별반 차이 없는 더위를 느끼며 지내야 했습니다. 그마저도 에어컨 리모컨은 건물 관리자들이 쥐고 있어, 필요한 때 적절하게 이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와 동료들은 이런 지원이 전혀 고맙지 않습니다. 그동안 열악한 주거환경에 살고 있는 저와 동료들이 줄기차게 제기했던 쪽방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대답은 쏙 빼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간개발이 추진 중인 양동과 창신동 쪽방촌에서 하루걸러 주민들이 사전퇴거 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서울시는 전혀 대책을 내놓지 않고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불평등한 기후위기의 문제는 단순히 에어컨으로 열 식히는 것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열악한 주거의 문제,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 병과 장애와 가난의 문제.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에 대해 손쉬운 미봉책만 남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폭염과 재난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길 요구합니다.

 

더 이상 불평등하지 않게, 모든 이들의 적정 주거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끝으로 발언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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