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기고]

 

"우리 모두의 집을 덮치는 기후위기 앞에서"  

 

<디디 / 인문지리・도시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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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열린 ‘기후재난 피해 빈민·장애인 추모 기자회견’에 참석한 홈리스야학 학생들의 모습. <사진=빈곤사회연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산이 타오릅니다. 하늘이 무너진 듯 비가 쏟아집니다. 비에 불어난 강이 어딘가의 거리와 마을과 가난한 사람들을 덮칩니다. 플라스틱을 토해내며 죽어가는 거북이. 절절 끓는 바닷물에 익어버린 불가사리. 비쩍 마른, 더러운 회색 북극곰. 쩍쩍 갈라지는 흙바닥 위에 말라비틀어진, 한때는 살아있던 존재들의 시체들을 봅니다. 벌써 늦었다고, 이대로 가면 돌이킬 수 없다고 기후 위기를 외치는 활동가들은 호소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변함없이 매일 자가용을 굴리고, 공장을 가동하고, 탄소연료를 배출하며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지금의, 이 기후 위기를 불러온 바로 그 일상을요. 이러다 정말 다 같이 죽는 거 아니냐고 농담처럼 말하면서도, 밤새 도시가 물바다가 되어도, 다들 아침이 오면 당연한 듯 출근을 합니다. 에코백과 텀블러를 쓰는 것 정도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를 마치고 산불과 폭우와 폭염의 스펙터클 건너편의, 에어컨과 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안락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요. 이상하지 않나요? 정말, 다들 어쩌면 이렇게 태연한 걸까요?

 

그러고 보니, 2차 대전 직후 핵전쟁의 위험을 실감하게 된 서구사회에서는 핵전쟁에 대비한 소형 핵 대피소가 엄청나게 팔렸다고 합니다. 핵 대피소는 핵전쟁이 나면 숨을 수 있는 작은 개인 보호소 같은 걸로 집의 마당이나 지하실에 설치하는 건데요.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제일 싼 것이 천만원 정도라고 하네요. 이스라엘이나 스위스 노르웨이 등의 국가에서는 국민의 대부분이 핵 대피소를 보유하고 있고, 미국이나 러시아에서도 80%의 사람들이 핵 대피소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정말로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핵 대피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핵 대피소에 숨어있더라도 공기는 마셔야 하니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핵 대피소를 사고 그 안을 각종 비상식량과 비상용품으로 채우면서 안심을 하는 모양입니다. 정말 어리석지 않나요? 그런데, 지금 기후 위기 앞에 선 사람들의 행동 또한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가 닥친다, 지구가 불타오른다,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는 뉴스를 보면서, 대피소 안의 자신은 안전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위험을 가장 먼저, 가장 강렬하게, 온몸으로 경험하는 것은 아무런 보호막도 갖지 못한 존재들이죠. 홈리스, 장애인, 철거민, 노점상, 쪽방촌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난은 어떤 가림막도 없이 곧장 덮쳐오니까요. 추위도, 더위도, 홍수도, 태풍도, 스크린 속의 스펙터클이 아닌 생생한 현실입니다. 자기 일이고, 바로 곁의 동료가 겪는 고통이죠.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만 한다는 목소리가 바로 여기, 길 위에서 가장 먼저, 거세게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안락한 집 안에 갇혀 둔해빠진 인간들이 계속해서 물건을 만들고, 사고 또 버리고, 나무를 베고, 탄소를 배출하고,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그렇게 대피소 안에서 천천히 삶아지는 동안, 온몸으로 지구와 접속하고 있는 가난한 자들이 가장 먼저 재난을 알아채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재난을 먼저 감지하고 이동하기 시작하는 예민한 새들처럼, 들짐승들처럼요.

 

기후 위기는 분명한 현실이지만, 할리우드 영화처럼 하루아침에 세계가 와르르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인류는 아마도 오랜 시간에 걸쳐 훨씬 더 험난해진 조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할 것입니다. 어쩌면 물과 식량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 닥쳐올지도 모릅니다. 아직 상상할 수 없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재난을, 그런데도 완전한 지옥으로 만들지 않고, 존엄하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실 홈리스와 장애인들, 가난한 이들은 언제나 가장 적은 에너지를 사용해온 자, 가장 느린 속도로 지구에 가장 부담이 적은 삶의 방식을 연습해온 이들이기도 합니다. 가장 열악한 상황, 모든 에너지 사용을 박탈당한 상황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존엄한 삶을 되찾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이기도 하죠. 그러니, 우리는 지금 우리를 덮치고 있는 기후 위기 앞에서, 다른 가난하고 아픈 존재들에 공감하고 공생하며, (거짓 핵 대피소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우리들의 집, 지구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누구보다 잘 상상할 수 있는 자들일지도 모릅니다. 기후 위기가 만들어내는 불확실성과 고통의 최전선에서,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삶의 방식들을 상상하고 엮어내는 행동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행동하는 홈리스들 역시 기후행동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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