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편지]   

 

여성 노숙인들에게 드리는 편지

 

<최현숙 / 홈리스행동 인권지킴이 활동가>

 

편집자 주: 여성홈리스에게 건네는 편지인 이 글엔 ‘노숙인’과 ‘홈리스’라는 표기가 혼용돼 있다. 그동안 홈리스뉴스 편집부는 ‘노숙인’ 보다는 '홈리스'라고 줄곧 써왔다. 단지 정책사업명이나 법률상 명칭에 한해 그리고 홈리스 당사자의 기고글에 한해 부분적으로 예외를 두었을 뿐이다. 홈리스뉴스 편집부가 ‘노숙인’이라는 용어를 지양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슬露 맞고 자는宿 사람人’이라는 뜻의 ‘노숙인’은 집다운 집이 부재한 사람들의 현실을 직관적으로 전하지 못한다. 즉, 지칭하는 대상의 삶을 담아내지 못한다. 둘째, 정책 용어로 채택된 ‘노숙인’은 정책대상을 축소하고 주거빈곤 이슈의 심각성을 은폐하는 데 동원되어 왔다. 현실에서 ‘노숙인’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노숙인복지시설에 입소한 사람과 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뿐으로, 집다운 집이 아닌 곳에서 거처하는 많은 사람들이 ‘노숙인’이라는 정책용어의 범주에서 배제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홈리스뉴스는 ‘노숙인’이 아닌 ‘홈리스’ 혹은 ‘주거취약계층’(주거빈곤층)이란 용어를 대체어로 사용해 왔다. 다만, 이 글의 대상은 용어를 둘러싼 논쟁 자체가 낯설 수 있는 여성홈리스라는 점을 감안, 원문 표기인 ‘노숙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표기하였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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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의 모습 <사진=홈리스행동>

 

 

날씨가 추워지는데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저는 노숙인 인권단체 『홈리스행동』에서 인권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는 날라리(본명 최현숙)에요. 매주 금요일 오전과 저녁에 주로 서울역 노숙인 광장으로 홈리스들을 만나러 가는 초짜 할매이기도 합니다. 

 

지난 2년 9개월 간 주로 서울역 노숙인들을 정기적으로 찾아가거나 서울역 인근 쪽방촌의 주민들을 만나오면서, 저는 특별히 여성 노숙인들과 여성 주민들에게 마음이 많이 갔습니다. 저와 같은 여성인 점도 있고, 홈리스들 중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더 어렵고 다른 생애 경험과 어려움을 겪어왔으며, 지금의 삶도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나온 언니들(나이를 따지지 않고 여자들 간에는 친밀감과 연대의 의미를 담은 “언니”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합니다.)의 이야기는 다양하고 각별하고 아픕니다. 나아가 같은 여성으로서 언니들의 상처가 저의 상처와 겹쳐져 분노가 솟구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 “계집애”라는 이유로 미움과 차별을 받으며 아들에 비해 교육받지 못했고, 따라서 우리의 꿈과 소망을 키울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도망가다시피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에 마주쳐야 했고, 자식 때문에 남편을 떠날 결심을 못한 채 스스로 지옥 같은 집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어릴 때나 결혼해서나 우리들에게 집은 편하게 쉬는 공간이 아니었으며, 그런 면에서 그 때부터 이미 우리는 “홈리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출하거나 이혼한 언니들은 집안사람들이나 사회로부터 “나쁜 년”라는 비난을 받았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자립을 위한 일자리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더 많은 차별과 성희롱을 겪었으며, 싸구려 일자리와 험한 일자리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언니들은 잠 잘 곳을 마련하지 못해 여러 곳을 떠돌다가 여성 노숙인이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언니든 집에 두고 나온 언니든, 노숙하는 언니들이 겪는 자식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괴로움은 남성 노숙인들과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어떤 언니들은 성폭행을 당했고, 어떤 언니들은 적은 돈과 밥과 잠자리를 위해 남자들의 성적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으며, 어떤 언니들은 성 서비스 노동을 했고, 어떤 언니들은 충분히 신뢰할 수 없는 남자와 길고 짧은 동거를 하거나 혼인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성폭행이든 성매매든 혼인관계든 동거관계든, 임신과 출산은 많은 빈곤한 여성들에게 더없이 두렵고 무거운 짐입니다. 아이를 지운 언니들은 나름대로의 고생과 남들의 비난을 감수했지만 어쨌든 빈곤과 상처를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친척이나 보육원에 맡긴 언니들은 당시로서는 자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 버린 여자”라는 비난과 자괴감을 사는 내내 품고 살게 되었습니다. 자식과의 관계 역시 아예 단절되거나 뒤틀린 채 빈곤과 상처를 대물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리에서 사는 언니들이 겪어야 했던 많은 고난과 폭력과 상처들로 해서 어떤 언니들은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져 있기도 합니다. 남성 노숙인 중심으로 되어있는 노숙인 복지정책에서 소외되어 왔으며, 무료급식 줄에 서서 더 많은 비난을 받거나, 공중 화장실에서 숨어살다시피 하는 언니들도 있습니다. 먹고 사느라 법적 처벌을 받은 경험도 있고, 자살과 자해의 경험도 많으며, 어떤 언니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몸과 마음의 병으로 일찍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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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성홈리스의 ‘증언’. 2018년 12월 촬영<사진=홈리스행동>

 

노숙하고 있는 언니들과 모든 홈리스 언니들에게 감히 말씀드립니다. 상처와 고통의 양과 깊이는 차이가 있겠지만, 언니들이 겪은 고통과 상처, 억울함과 분노는 제가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것들과 같은 무늬이며, 저희 『홈리스행동』의 여성 활동가들이 살아오면서 겪은 혹은 앞으로 겪게 될 걸림돌이나 장벽들과 같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언니들과 더 만나고 싶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든 지금의 어려움이든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혹 저희가 더 배우고 더 가진 힘이 있다면, 언니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더 많은 고통을 살아내느라 언니들이 갖게 된 힘과 지식과 생존의 지혜를 배우고 싶습니다. 각자 스스로 원하는 자신다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언니들과 지지와 연대의 끈을 단단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우리는 언니들을 계속 찾아가겠습니다. 언니들도 우리를 찾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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