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특집]

 

‘약자 복지’ 강조한 정부 예산안,

주거취약계층의 현실은 제대로 기입돼 있나

 

<안형진 /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1면_1.jpg

▲지난 9월 20일 LH수도권특별본부 앞에서 열린 'LH 사장 공모, 세입자도 지원한다 기자회견'에 발언자로 나섰던

용산역 텐트촌 주민 박재혼(사진 가운데)씨의 모습. <사진 출처=빈곤사회연대>

 

험난한 공공임대 입주신청, 기약 없는 입주대기

 

“언제 들어갈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2년이 될지 3년이 될지 모르겠네요. 입주할 때 살아 있을지 죽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년 동안 용산역 텐트촌에서 살아온 박재혼(남ㆍ62세)씨. 지난 4월 용산역과 인근 호텔을 잇는 공중보행교 신설공사가 시작되면서 퇴거 위기에 내몰린 박재혼씨는 같은 처지에 놓인 동료 주민들과 용산구청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다. 그의 요구는 간명했다. 구청의 도시계획사업에 따라 시행하는 공사인 만큼 구청이 적극적으로 이주ㆍ주거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구청은 긴급 방안을 모색하기는커녕 기성 제도와의 연계조차 고려하지 않으려 했다. 그 사이 박씨가 살던 텐트는 원인 모를 화재로 인해 전소되었고, 주거지와 생필품을 모두 잃은 그는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두 달에 걸친 싸움 끝에 구청은 박씨가 국토부 훈령에 따른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의 대상임을 인정하였고, 박씨는 임대주택(매입임대) 입주 신청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씨의 임대주택 예비입주자 순번은 630번대. 언제 입주가 가능할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숫자였다. 순번을 안내하던 LH서울중부권지사 관계자조차 “최근 대기자가 너무 많아졌다”라면서 한숨을 내쉴 정도였으니, 당사자가 느꼈을 당혹감과 허탈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은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노숙인시설, 컨테이너ㆍ움막 등 열악한 거처에서 최근 1년 내 3개월 이상 거주 중인 이들에게 매입임대주택, 전세임대주택을 신청에 따라 공급하는 정책사업(국토부 관할)이다. 

 

내년 예산안 설명하며 '약자 복지' 강조한 尹정부, 하지만...

지난 25일, 국회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에서 “약자 복지”를 강조하며 올해 발생한 폭우 피해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주거취약계층이 “보다 안전한 주거환경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보증금 무이자 대출을 신설”했다고 밝혔다.

 

얼핏 폭우 피해가 집중된 취약거처 거주자들을 위해 정부가 없던 대책을 새롭게 내놓은 것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주거취약계층 지원 강화는 이미 윤 대통령이 이미 후보 시절 내걸었던 공약이자 당선 이후 발표한 ‘국정과제’ 속에 포함돼 있었던 사항이기도 하다. 당시 정부는 “비정상거처 거주자”라는 새로운 용어를 전면에 세우며 “임대보증금을 무이자로 대여하여 (비정상거처에서) 정상 거처로 이전”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1면.jpg

국회 시정연설에 나선 윤대통령.  <사진=KBS 송출영상캡쳐>

 

어쨌건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주거취약계층 대상 정책사업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박재혼씨를 비롯한 주거취약계층이 “보다 안전한 주거환경으로 이주”하는데 충분한 것일까. 답은 간명하다. 그렇지 않다.

 

진전보다 퇴보ㆍ정체가 더 우려되는 정부의 ‘2023년 주거취약계층 대책’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 담긴 주거취약계층 대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대상자들을 위한 (임대주택ㆍ민간주택) 임대보증금 지원예산과 이사비ㆍ생필품비 지원예산이 신설된 것이다. 물론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을 통해 임대주택 입주신청을 한 사람에게 임대보증금과 이사비ㆍ생필품비를 지원하는 사업이 기존에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2019년 정부는 ‘아동 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대책’을 발표하며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공임대주택 보증금 50만원을 전액 지원하고 이사비ㆍ생필품비 각각 20만원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재원을 정부 예산이 아닌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이 조성한 ‘사회공헌기금’으로 충당했다는 점인데, 정책사업을 시혜적 성격의 기금에 의존함에 따라 지원의 안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 지난해 8월에는 기금이 고갈되면서 임대보증금과 생필품비ㆍ이사비 지원이 중단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사회공헌기금으로 충당하던 지원사업의 재원을 정부 재정으로 전환한 것은 주거취약계층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은, 재원 구조의 전환과 더불어 지원사업의 구체 내용 또한 기존과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사비ㆍ생필품비 지원(가구당 40만원 책정)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던 주거취약계층 대상 공공임대주택 보증금 지원은 기존 ‘무상지원’ 방식에서 ‘융자지원’ 방식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비정상거처 거주자(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대상자) 등이 “보증금 부담으로 이주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공공임대 입주 희망 시 50만원 한도, 민간임대 입주 희망 시 5,000만원 한도의 금액을 융자지원하는 전용상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무이자’, ‘최장 20년’이라는 융자 조건은 얼핏 파격적인 것처럼 보이나, 기존 ‘무상지원’ 방식이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신청자들의 경제력을 고려해 채택한 것임을 상기할 때 입주자에게 빚을 안기는 이 같은 지원방식은 ‘퇴보’로 평가해야 옳을 것이다.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부분은 주거취약계층의 이주수요를 발굴하고 입주 과정(주택물색, 신청 조력, 임시거처 운영 등)을 지원하는 ‘주거상향지원사업’의 예산액이 올해 대비 35억원 증액된 100억원으로 책정되었다는 점이다. 지원제도 자체를 잘 모르거나 입주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주거취약계층이 적잖게 존재한다는 현실에 비춰 볼 때 이 같은 예산 증액은 물론 바람직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년과 마찬가지로 해당 사업은 ‘지자체 공모사업’으로 묶여 있어 공모에 선정되지 않은 지자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지원에서 배제되는 일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정부의 예산안은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에 따른 매입임대주택의 공급 물량을 기존처럼 여전히 2,000호로 한정하고 있다. 즉, 주거취약계층에게 가장 중요한 주택 공급은 전혀 늘지 않은 것이다. 대상자 발굴과 수요파악이 아무리 잘 이뤄진다 한들 입주 가능한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슨 반향을 이룰 수 있을까. 결국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대상자가 △열악한 거처에서 ‘입주대기자’ 신분으로 장기간 대기하고, △입주 시점에선 주택 선택의 폭을 제약받고, △거주 안정성이 낮은 전세임대(민간주택 전세보증금 지원) 입주를 궁여지책으로 선택하게 되는 현실은 내년에도 반복될 공산이 크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56 <홈리스뉴스 107호 - 여성홈리스 특별판> 편지 - 여성 노숙인들에게 드리는 편지 파일
홈리스행동
145 2022-12-10
955 <홈리스뉴스 107호 - 여성홈리스 특별판> 여성홈리스를 위한 공간, 분도이웃집을 소개합니다 파일
홈리스행동
271 2022-12-10
954 <홈리스뉴스 108호 - 홈리스추모제 특별판> 주거 - 홈리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과제 파일
홈리스행동
107 2022-12-09
953 <홈리스뉴스 108호 - 홈리스추모제 특별판> 추모 - 무연고 사망자 양산하는 법과 제도 개선돼야 파일
홈리스행동
112 2022-12-09
952 <홈리스뉴스 108호 - 홈리스추모제 특별판> 인권 - 평등한 의료접근권 가로막는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 파일
홈리스행동
113 2022-12-09
951 no image <홈리스뉴스 108호 - 홈리스추모제 특별판> 여성 - 젠더 관점에 기초한 조사와 평가체계 마련돼야
홈리스행동
80 2022-12-09
950 no image <홈리스뉴스 106호> 특집 - 끊임없이 흔들리는 ‘서울시 노숙인 지원주택 사업’
홈리스행동
117 2022-12-01
949 no image <홈리스뉴스 106호> 진단 - “집은 인권이다, 내놔라 공공임대!”
홈리스행동
87 2022-12-01
948 no image <홈리스뉴스 106호> 편집위원의 시선 - 아픔에 덧붙는 감정들에 대하여
홈리스행동
92 2022-12-01
947 <홈리스뉴스 106호> 당사자 발언대 - “거꾸로 가는 임대주택 예산, 바로잡아야 합니다”
홈리스행동
68 2022-12-01
Selected <홈리스뉴스 105호> 특집 - '약자 복지' 강조한 정부 예산안, 주거취약계층의 현실은 제대로 기입돼 있나 파일
홈리스행동
150 2022-11-04
945 <홈리스뉴스 105호> 지역통신 - 부산시 ‘인권침해, 유인입원’ 노숙인복지시설 재위탁 추진, 대응 활동과 남은 과제 파일
홈리스행동
161 2022-11-02
944 <홈리스뉴스 105호> 이달의 짤막한 홈리스 소식 2 - 일년에 단 한 번 열리는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위령제' 파일
홈리스행동
96 2022-11-02
943 <홈리스뉴스 105호> 이달의 짤막한 홈리스 소식 1 - 불평등이 재난이다, 빈곤을 철폐하라! 파일
홈리스행동
84 2022-11-02
942 <홈리스뉴스 105호> 특집 인터뷰 - 홈리스의 코로나19 확진과 격리 이야기, 두 번째 파일
홈리스행동
135 2022-11-02
941 no image <홈리스뉴스 105호> 진단 - 문제는 당사자 관점의 부재다
홈리스행동
87 2022-11-02
940 <홈리스뉴스 105호> 똑똑똑 - 도망쳐 간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도망칠 권리 파일
홈리스행동
122 2022-11-02
939 <홈리스뉴스 105호> 기고2 - "모든 사람들은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합니다" 파일
홈리스행동
67 2022-11-02
938 <홈리스뉴스 105호> 기고1 - "대안사회가 있으면 좋겠다" 파일
홈리스행동
125 2022-11-02
937 <홈리스뉴스 104호> 특집 - 누구나 안전한 집에 사는 것이 기후정의 파일
홈리스행동
133 2022-10-04
Tag List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