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편집위원의 시선]

 

아픔에 덧붙는 감정들에 대하여

코로나19 생존 홈리스 인터뷰를 마치며

 

<안희제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홈리스뉴스 발송 작업 중인 안희제 편집위원(사진 오른쪽) <사진=홈리스뉴스 편집부>

 

지난 두 달 동안 코로나19에 걸린 뒤에 생존한 홈리스 분들을 만났다. 두 분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고, 최여름 편집위원이 인터뷰한 두 분의 이야기는 글자로 읽으면서, 코로나19가 홈리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일상의 언어를 통해 이해하고자 했다. 

 

네 명이라는 숫자만 놓고 보면 우리가 글로 옮긴 것은 적은 경험이겠지만, 그들의 경험에는 사회의 모습이 깊숙이 새겨져 있었다. 코로나19는 분명 질병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특히 경우에 따라 코로나19는 질병보다 주거의 문제에 가깝기도 했다. 

 

홈리스행동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꾸준히 ‘주거가 백신’이라고 외쳐 왔다. 적정 주거의 부재는 홈리스의 코로나19 감염, 진단, 치료, 휴식 전반에서 문제가 되었다. 적정 주거가 없기에 감염되고, 진단을 받아도 안전하게 쉬면서 치료할 공간이 없었다. 완치가 되더라도 후유증을 대비할 공간도 없었다. 질병이 몸의 문제인 만큼이나 공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코로나19 생존자들의 이야기에서 깊이 드러나고 있었다.

 

취재 이후 내게 계속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그러한 문제들 외에 내가 역량 부족으로 인터뷰를 할 때도, 기사를 쓸 때도 충분히 다루지 못한 지점들이다. 처음부터 나는 코로나19 생존이라는 경험이 홈리스들에게 어떤 감정을 남기는지 알고 싶었고, 특히 그러한 감정이 어떻게 각 개인의 생애 전체 안에서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었다.

 

 

감정은 상처이자 흉터다

우리가 겪은 것들은 날짜와 시간과 함께 지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은 시간과 뭉쳐서 우리 안에 쌓인다. 그렇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경험에는 감정이 덧붙는다. 질병, 주거, 코로나19, 국가, 보건소, 병원과 같은 말들에는 어떤 말들이 덧붙기 시작했다. 

 

착잡함, 쓸쓸함, 괴로움, 답답함, … 인터뷰 중에 등장한 말들이었다. 이런 특정한 감정들은 코로나19 진단과 그 이후 벌어진 일들을 상기할 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감정은 특정한 날짜에 묶여 있기보다 언제고 다시 우리의 몸에 차오르는 편이다. 그렇게 차오른 감정에 잠기기도 한다. 감정은 물과 같아서 우리의 목을 적셔 주면서도 질식시키기도 한다. 

 

코로나19에서 생존한 이들의 감정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적정 주거를 얻게 된다고 바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원래는 임대주택 입주를 미루려던 사람조차 얼른 임대주택에 들어가고 싶도록 만드는 불안감과 공포는 주거 환경이 나아진다고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감정은 그러니까 상처이기도, 흉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정부, 혹은 국가가 홈리스들의 고유한 삶 안에 남긴 상흔을 직시하고, 그 이후를 상상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담배와 인생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인터뷰이들이 담배를 굉장히 중요하게 언급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담배는 무엇이었을까? 몸에 안 좋다고 해서 끊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도무지 끊을 수 없었던 담배는 지난달 인터뷰한 나경동 씨의 삶에 꽤 오랫동안, 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에게 담배를 언제부터 피웠냐고 묻자, 그는 봉제공장 재단실과 손톱깎이 도금 공장, 그리고 전라도의 한 염전에서 일한 경험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담배라는 어찌 보면 사소한 습관은 때로 삶에서 가장 꾸준히 유지된 무언가이기도 하다. 감염병으로 격리된 와중에 흡연 공간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분명 어려울 것이다. 다만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답답함은 누군가의 삶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수도 있다.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사실은 무증상이었고 병원에서 치료도 잘 받은 나경동 씨에게도 “감옥에 갇혀 있는 것같이” 갑갑한 경험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담배를 언제부터 피웠냐는 질문에 자신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담배란 무엇일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담배를 피워 본 적이 전혀 없지만, 그것이 중독성이 강할 뿐 아니라 어떤 관계들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은 나에게도 분명하다. 사람들은 담배를 매개로 관계를 맺는다. 담배를 빌리고, 담배에 불을 붙여 주고, 연기 속에서 일상을 나눈다. 별 것 아닌 일상의 습관 안에서 서로 다른 생들이 연결된다. 그렇게 담배는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인생의 중심을 파고든다. 

 

 

사소한 감정과 습관, 하나하나가 세상이다 

착잡함이나 쓸쓸함, 괴로움과 같은 감정은 분명 모두가 겪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처럼 흔한 것들은 사람들 각각의 삶 안에서 각기 다른 고유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때로 그것은 고통과 차별의 증거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소한 감정과 습관 하나하나에는 그렇게 생이 담긴다. 생에는 세상이 깊숙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 사소한 감정과 습관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세상을 볼 수 있다. 적정한 주거가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권리이기 때문인 동시에, 적정한 주거가 없는 상황이 어떤 형태의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함께 그 흔적에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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