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똑똑똑]은 초보 활동가의 반빈곤 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을 담은 꼭지

 

 

도망쳐 간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도망칠 권리

우리의 공간 바깥에도 필요한 우리의 공간들 

 

<민푸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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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아랫마을에서 문을 닫고 있는 한 여인숙 <사진=필자>

 

 

지난 10월 14일 금요일, 대항로에서 ‘2022 노들장애인야학 평등한 밥상’이 진행되었다. 대항로의 대명절과 같은 이 날엔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가들이 총출동하여 후원행사를 직접 준비하고 진행하기도 해서, 정말 사돈의 팔촌까지 한 가족으로 모인 분위기가 난다. 게다가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까지 찾아온 전국 방방곡곡의 손들이 오랜만에 안부를 물으며 밥 한 끼, 술 한 잔을 나누는 풍경 속에 있으면 ‘오늘이 대명절이구나, 지나간 추석이 다시 왔구나’ 싶다.

 

 

원하는 만큼 혼자일 수 있는 곳

하지만 오감을 총동원하게 하는 자극들이 지척에 깔리다보니 나처럼 자극에 취약한 사람은 행사 전부터 준비할 게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동선준비. 이 정신없는 날, 나는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열심히 손을 보태면서 정신줄 꽉 붙들어 매고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중대한 과제를 앞에 두고 머리를 쥐어짠다. 흡연구역은 이쪽인데 저쪽 흡연구역으로 가면 혼자 있을 수 있겠군, 올해는 쓰레기 정리를 여기서 하는군, 하며 당일의 그럴싸한 도피처를 물색한다.

 

올해 다행이었던 건 내가 주방에 배치되었다는 점이었다. 주방은 과한 자극들을 쳐내 주는 안전한 공간이다. 난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 중요한 사람이지만, 적당히 내 반경선 밖에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혼자 있는 것이 좋다. 혼자이지만 마냥 혼자이지는 않은 그 상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소리, 매장에 배달 기사님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주방에서 조용히 닭을 튀기고 설거지하는 주말은 나에게 꼭 필요한 이 시간을 보장해준다. 후원주점 날에도 나는 기름때 묻은 집기들을 박박 닦으며 밖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를 라디오 삼아 들었다.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을 수 있는 것, 완전히 혼자 있는 것과 완전히 함께 있는 것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혼자’의 정도를 물색할 수 있는 것, 그렇게 찾은 ‘혼자’의 상태에 혼자 있고 싶은 정도만큼만 혼자 있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라서 일상에서도 안전장치들을 만들어둔다. 이번 후원주점에도 주방으로 도망갈 수 없었다면, 일주일에 두 번 치킨집 주방으로 도망갈 수 없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크게 망가질 일상이 저절로 그려진다.

 

 

쪽방 다음에 ‘도망갈 곳’

이불 속 말고 도망갈 곳이 없을까? 요즘 내가 창신동 쪽방촌을 오가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화두다. 집이라고 하기 어려운 쪽방도 누군가에겐 집이다. 거리와 달리 혼자 있을 수 있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깨고 싶을 때 깨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일말의 자유가 있는 곳. 쪽방 주민들의 삶의 궤적을 함께 보면 이런 의미가 더 커진다. 원가정에서 결혼생활, 결혼생활이 잘 안 돼서 공장의 기숙사로, 그마저도 안 돼서 거리로, 거리에서 쉼터로, 그리고 쪽방으로 온 그의 삶에서 쪽방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 해방감. 그 일말의 자유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쪽방은 집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쪽방 다음에는 어디로 도망가지? 근처 공원? 복지관? 한 칸의 방이 지긋지긋할 때 도망갈 곳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이제야 고민한다. 언니가, 할머니가, 밤이고 낮이고 맨날 이불 속이 아니라 좀 더 그럴싸하고 괜찮은 곳으로 도망갔으면 좋겠다. ‘여기 막다른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자신 있게 ‘저기로 가자’하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 또한 마땅한 곳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기껏해야 함께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거나, 근처 식당 혹은 카페로 가는 것이 전부다. 이 정도밖에 생각해내지 못하는 상상력에 매번 스스로 실망하는데도 나는 ‘동반해줘서 고맙다’는 진심어린 인사를 듣는다. 이 과분한 말을 들을 때마다 나의 한계를 생각한다. 주위에 도망칠 수 있는 다른 개인들과 좋은 돌봄 관계를 맺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일상이 곧 세상이다

일상의 일과 세상을 바꾸는 일이 별개라고 생각하기 쉽다. 후자가 전자보다 중요한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일상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개인의 더 나은 일상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함께하는 공간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만큼이나 이 공간 바깥을 안전하고 멋지고 단단하게 만들 때, 세상을 바꾸는 일과 일상을 바꾸는 일은 함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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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화목한 사랑방의 현수막 <사진=필자>

 

 

조력이란 결국 지역사회를 바꾸는 것까지 포함한다. 지금 이곳이 아니어도 도망칠 수 있는 곳, 쪽방의 이불 속이 아니어도 도망칠 수 있는 곳. 이불 밖에도 안전하게 마음 놓고 도망쳐 혼자 있고 싶은 만큼 혼자 있을 수 있는 곳. 이러한 곳들을 지역사회 안에 세워나가는 것, 나아가 지역사회 어디든 마음 놓고 갈 수 있도록 지역사회를 바꾸는 것이 일상과 세상을 바꾸어내는 조력일 테다.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이긴 한데 다음 주 화요일엔 언니랑 할머니랑 어딜 가야 할까. 어딜 갈 수 있을까. 추운데 굳이 찾아 나서느니 나도 이불 같이 덮고 앉아서 따듯한 믹스 커피를 나눠마시는 게 나을까. 그러다 겨울까지 이불 속에만 있게 되면 어떡하나. 우리 어디로 같이 도망가면 좋을까. 여의도 농성장 따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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