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페다고지] 윌리 뱁티스트의 저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페다고지]의 주요 내용을 대담형식으로 각색해 담은 꼭지

홈리스 대중의 조직화: 첫 번째 이야기

<홈리스뉴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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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부터 몇 차례에 걸쳐 미국의 홈리스 활동가인 윌리 뱁티스트가 쓴 『가난한 이들을 위한 페다고지』라는 책 중에서 홈리스 운동에 의미 있는 참조가 될 만한 내용들을 간추려서 질의응답(Q&A)의 방식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윌리 뱁티스트는 미국의 전국홈리스연합과 켄싱턴 복지권연합 등의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반(反)빈곤운동의 조직화와 사회운동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윌리 뱁티스트(Willie Bap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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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당시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홈리스 대중의 가장 큰 조직 중 하나였던 전국홈리스연합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했습니다. 그 당시의 경험은 활동가로서 당신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경험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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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엄청난 홈리스 대중의 조직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홈리스 대중의 문제는 더 이상 빈곤층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쉼터 체계는 전국에 걸쳐 확대되고,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조직의 전성기 시절, 전국홈리스연합은 다양한 인종과 성별을 가진 약 15,000명의 홈리스들을 구성원으로 하여 25개주에서 25개의 지역지부를 조직했습니다. 1987년,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열린 뉴욕홈리스연합의 창립대회에는 그 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쉼터의 홈리스 당사자들을 대표하는 1,200명의 홈리스 대표단이 참여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홈리스 대중의 가장 큰 정치적 모임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 모임이 열린 리버사이드 교회는 20년 전인 1967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왜 미국인들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가”를 밝히는 연설을 한 곳이었습니다. 

“전쟁이 흡혈귀처럼 기술과 돈을 빨아들이는 한,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금이나 에너지를 결코 투자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전쟁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들, 형제, 남편들을 전쟁터로 보내 싸우다 죽게 하는 행위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잔인하게 조종당하는 현실 앞에서 저는 침묵을 지킬 수 없습니다. … 힘없는 이들, 발언권이 없는 이들, 미국에 의해 희생된 이들, 미국이 ‘적’으로 규정한 이들, 하지만 어떤 문헌에도 우리의 형제가 아니라고 적혀 있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저는 이곳에 왔습니다.”
-마틴루터킹의 1967년 연설 中 


▲  1985년 5월 13일. MOVE가 위치한 필라델피아의 콥스크릭지역에 경찰은 헬기를 이용해 사전경고 없이 지붕에 폭탄을 투하하였다. 폭발직후, 해당 건물들은 화염에 휩싸였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출처: http://www.phillymag.com/news/2015/05/13/thirty-years-move-still-hurts/
저는 그 연설을 들은 기억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 연설과 뉴욕홈리스연합의 창립대회의 중요한 의미를 연결해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모임은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그 당시, 주류 언론과 학계에서는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는 빈곤층을 무능력하며 부적절한 존재로 묘사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창립대회에 모인 홈리스 당사자들은 성공적으로 자신을 조직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조직의 역량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많은 것들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워싱턴 DC와 필라델피아의 시의회를 압박하여 집이 있건 없건, 거리나 쉼터에서 생활하더라도 홈리스 대중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많은 도시들에서 홈리스 당사자들이 쉼터에서 인간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가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활동들을 벌여나갔습니다. 

1983년 필라델피아에서 윌슨 구드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시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 후 1985년 5월, 흑인해방운동 조직인 “무브(MOVE)” 회원들이 웨스트 필라델피아의 주택으로부터 그들을 퇴거시키려 한 경찰들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 헬리콥터가 폭탄을 투하하여 집 65채가 파괴되고, 5명의 어린이들을 포함한 무브 회원 1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홈리스 연합은 주거 프로그램의 확대를 주장했고, 구드 시장은 이 사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기 위해 주거 프로그램을 지원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필라델피아에서 “존엄한 주거”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수백만 달러의 재정으로 홈리스 당사자들에 의해 운영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후에 오클랜드, 미네아폴리스 등 다른 도시들에서 홈리스 연합은 그 프로그램을 확대 시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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