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다림질]은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확대하는 문화를 ‘다림질’해보는 꼭지
 
먹고 죽은 귀신이 “내 장래희망”이라고? 
개그로 둔갑한 폭력, 가난을 조롱하다
 
<안형진 / 홈리스뉴스 편집인>
 
7p.jpg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1대1’, 가난의 문제를 웃음거리로 만들다

KBS의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11’이라는 코너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퀴즈쇼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코너에서 개그맨들은 각각 퀴즈쇼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을 나눠 맡는데, 이때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은 아무리 쉬운 문제를 내어도 언제나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는 퀴즈쇼 참가자들이다.

 

얼마 전부터 이 코너에는 일호선이라는 이름의 캐릭터가 퀴즈쇼의 참가자로 등장하고 있다. 산발머리에 때가 낀 얼굴, 반쯤 짖어진 옷이 특징인 이 캐릭터는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는 거지또는 노숙자를 연상케 한다. 그 역시 다른 참가자들처럼 진행자가 내는 퀴즈에 기상천외한 오답들을 내어놓으며 웃음을 자아낸다. 퀴즈의 패턴은 대개 속담이나 동요의 뒷부분을 맞추는 것인데, 일호선은 언제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중심으로 답을 맞히려고 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답은 모두 오답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황이라는 게 다름 아닌 가난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는 데 있다. 그가 엉뚱한 대답을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배고픔의 문제, 위생의 문제, 잠자리의 문제 등 가난한 이들이 직면하는 모든 문제들은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한다. 가난 때문에 겪게 되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7_1p.jpg

 

<흥부전>에는 있지만 <개그콘서트>에는 없는 것

사실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조롱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는 행태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낮은 사회적 지위로 인해 자신을 조롱하는 행위에 쉽게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늘 손쉬운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의 처지를 조롱하는 악질적인 코미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때로 가난을 웃음의 소재로 삼으면서도 공격의 대상을 가난한 사람이 아닌 가난을 만드는 사람(또는 세상)’에 맞추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그 대표적인 예를 찾자면 <흥부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흥부전>은 가난한 흥부와 부자 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코믹하게 그려낸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야기의 초반부를 잘 살펴보면, 흥부가 가난해진 원인과 그 과정들이 놀라울 정도로 상세히 묘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가난해진 가장 큰 이유는 놀부가 농사지을 땅을 몽땅 빼앗아 갔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살던 집에서마저 쫓겨난 흥부는 풀을 엮어 만든 집 같지 않은 집에 살면서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고 여러 이웃들에게 업신여김까지 당한다. <흥부전>은 이 눈물 나도록 비참한 상황을 매우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러나 이 과장과 우스꽝스러움 속에는 흥부가 가난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 깨알같이 담겨 있다. 또한 여기에는 모든 것의 원흉인 나쁜 놈(놀부)’이 존재한다. , 자신의 이익을 위해 흥부의 집과 일자리를 빼앗은 놀부야말로 흥부를 가난하게 만든 나쁜 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개그콘서트>의 코너 ‘11’에서는 가난의 원인이나 그 과정이 일절 언급되지 않는다. 놀부와 같은 나쁜 놈도 없다. 여기에는 가난 때문에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는 상황을 비하하는 거침없는 묘사만이 있을 뿐이다. 바로 이것이 <흥부전><개그콘서트-11>의 결정적인 차이인 것인데, 동시에 이는 개그폭력을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라고? 폭력은 폭력일 뿐이니 개그하지 말라!

개밥에 손대고 싶다”, “먹고 죽은 귀신이 내 장래희망따위의 말들을 마구 내뱉는 <개그콘서트> 일호선의 행태를 과연 개그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개그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거리홈리스의 처지를 조롱하는 폭력일 뿐이다. 가난을 항상 진지하고 비극적으로 다룰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가난 때문에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는 상태를 조롱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우리가 재해를 당한 사람들, 상을 당한 사람들의 고통을 조롱하며 웃지 않아야 하는 것과 꼭 같은 이유에서이다. 가난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을 조롱하는 것보다 더 비열하고 졸렬한 폭력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별로 웃을 일이 없어진 오늘날, 개그와 폭력을 구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 된 듯하다. 온갖 폭력들이 개그라는 이름으로 빈번히 자행되고 있으며,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야말로 진짜 우스꽝스러운, 그러나 너무나 비극적인 개그일 것이다. 근데 이 비극의 중심에는 두 부류의 멍청이들이 자리하고 있다. 하나는 자기가 자행하는 폭력을 개그라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것을 개그로 받아들이는 멍청이들이다. 이들은 하나 같이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심지어는 표현의 자유운운하며 사람들을 훈계하려 한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자. 자유를 말하고 싶으면 평등도 함께 말하라고. 평등 없는 자유란 결국 약자를 괴롭힐 자유에 그칠 뿐이라고. 따라서 폭력은 폭력일 뿐이니 개그하지 말라고 말이다.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56 <홈리스뉴스 107호 - 여성홈리스 특별판> 편지 - 여성 노숙인들에게 드리는 편지 파일
홈리스행동
145 2022-12-10
955 <홈리스뉴스 107호 - 여성홈리스 특별판> 여성홈리스를 위한 공간, 분도이웃집을 소개합니다 파일
홈리스행동
271 2022-12-10
954 <홈리스뉴스 108호 - 홈리스추모제 특별판> 주거 - 홈리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과제 파일
홈리스행동
107 2022-12-09
953 <홈리스뉴스 108호 - 홈리스추모제 특별판> 추모 - 무연고 사망자 양산하는 법과 제도 개선돼야 파일
홈리스행동
112 2022-12-09
952 <홈리스뉴스 108호 - 홈리스추모제 특별판> 인권 - 평등한 의료접근권 가로막는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 파일
홈리스행동
113 2022-12-09
951 <홈리스뉴스 108호 - 홈리스추모제 특별판> 여성 - 젠더 관점에 기초한 조사와 평가체계 마련돼야
홈리스행동
80 2022-12-09
950 <홈리스뉴스 106호> 특집 - 끊임없이 흔들리는 ‘서울시 노숙인 지원주택 사업’
홈리스행동
117 2022-12-01
949 <홈리스뉴스 106호> 진단 - “집은 인권이다, 내놔라 공공임대!”
홈리스행동
87 2022-12-01
948 <홈리스뉴스 106호> 편집위원의 시선 - 아픔에 덧붙는 감정들에 대하여
홈리스행동
92 2022-12-01
947 <홈리스뉴스 106호> 당사자 발언대 - “거꾸로 가는 임대주택 예산, 바로잡아야 합니다”
홈리스행동
68 2022-12-01
946 <홈리스뉴스 105호> 특집 - '약자 복지' 강조한 정부 예산안, 주거취약계층의 현실은 제대로 기입돼 있나 파일
홈리스행동
150 2022-11-04
945 <홈리스뉴스 105호> 지역통신 - 부산시 ‘인권침해, 유인입원’ 노숙인복지시설 재위탁 추진, 대응 활동과 남은 과제 파일
홈리스행동
161 2022-11-02
944 <홈리스뉴스 105호> 이달의 짤막한 홈리스 소식 2 - 일년에 단 한 번 열리는 '무연고 사망자 합동 추모위령제' 파일
홈리스행동
96 2022-11-02
943 <홈리스뉴스 105호> 이달의 짤막한 홈리스 소식 1 - 불평등이 재난이다, 빈곤을 철폐하라! 파일
홈리스행동
84 2022-11-02
942 <홈리스뉴스 105호> 특집 인터뷰 - 홈리스의 코로나19 확진과 격리 이야기, 두 번째 파일
홈리스행동
135 2022-11-02
941 <홈리스뉴스 105호> 진단 - 문제는 당사자 관점의 부재다
홈리스행동
87 2022-11-02
940 <홈리스뉴스 105호> 똑똑똑 - 도망쳐 간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도망칠 권리 파일
홈리스행동
122 2022-11-02
939 <홈리스뉴스 105호> 기고2 - "모든 사람들은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합니다" 파일
홈리스행동
67 2022-11-02
938 <홈리스뉴스 105호> 기고1 - "대안사회가 있으면 좋겠다" 파일
홈리스행동
125 2022-11-02
937 <홈리스뉴스 104호> 특집 - 누구나 안전한 집에 사는 것이 기후정의 파일
홈리스행동
133 2022-10-04
Tag List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