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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17 (11:13:02)
[문학]밑바닥 가난 몸부림은 아름답다
-조지 오웰·김신용의 궁핍소설 두편-


“에이 갈보년, 갈보년! 벌레를 벽지에는 문대지 말라고 벌써 몇번째 말했어? 네년이 내 여관을 산 게야 뭐야? 이런 개잡년, 갈보년!”(‘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중)

벽지에다 벌레자국을 남겼다는 이유로 이토록 심한 욕설을 퍼붓도록 만드는 악의 정체는 무엇일까. 생활을 힘들고 비참하게 할 뿐 아니라 인간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인류 최대의 적, 가난이다. 극도의 가난은 그 속의 사람들을 일반적인 행동규범에서 벗어나도록 해 삶의 폭이 얼마나 크고 다양한지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편견을 벗을 때 극빈자들은 인생의 보람과 기쁨을 꿈꾸는 평범한 이웃이다. 가난을 직접 체험했던 작가들의 자전소설 2편이 나란히 나왔다.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신창용 옮김·삼우반)

‘동물농장’ ‘1984년’으로 유명한 영국작가 조지 오웰은 1903년 영국식민지였던 인도 벵골에서 태어나 이듬해 영국에 돌아온 뒤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역시 식민지였던 미얀마에서 5년간 경찰관으로 근무한다.

억압자의 생활에 회의를 품은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해 1928년 봄부터 18개월 동안 파리에 체류하면서 소설습작과 접시닦이 생활을 했고 영국으로 귀국한 뒤에도 1931년 여름까지 런던과 잉글랜드 지방에서 부랑자의 삶을 체험한다. 르포르타주 성격이 강한 자전소설 ‘파리와 런던…’은 이때의 경험을 예리한 통찰과 블랙유머, 사회비평정신과 섞어 전달한 작품으로, 본명인 ‘에릭 아서 블레어’ 대신 ‘조지 오웰’이란 필명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계기가 된다.

‘나’는 파리에서 영어교습이나 정신박약아를 돌보는 일로 생계를 해결했으나 일자리를 잃고 남은 돈마저 여관에서 도난당한 채 무일푼의 신세로 전락한다. 중산층이었던 그가 겪게 된 가난은 생각과 다르다. “아주 단순하리라고 여겼는데 복잡하기만 하다. 끔찍하리라고 여겼는데 궁상맞고 따분할 따름이다.” 사흘간 굶어야 할 지경이 됐을 때는 “몸속의 피가 모두 빠져나간 다음, 미지근한 물로 채워져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호텔식당에서 하루 15시간씩 접시닦이를 하면서 배고픔을 면하지만 대신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파리에서의 고통이 생리적인 것이었다면 런던의 부랑자 생활은 주변의 차가운 멸시와 불편한 잠자리, 행정당국의 편의주의 등 사회적 편견과 싸우기를 요구한다. 값싼 간이 숙박소와 부랑자 보호소를 전전하는 동안 ‘나’는 부랑자를 양산하는 제도의 모순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또한 스스로 가졌던 부랑자에 대한 편견을 버린다. 밑바닥 생활에서 얻은 통찰로부터 그는 대작가의 길을 걷는다.

◇김신용 ‘달은 어디에 있나’(쳔년의시작)

“내 생의 숱한 고통의 순례 이후, 나는 비명을 노래로 부를 줄 아는 생존본능, 아니 테크닉, 그 비슷한 슬기를 배웠다.”

1994년 발표했던 김신용씨의 자전적 장편소설 ‘고백’(미학사)이 ‘달은 어디에 있나’로 제목을 바꿔 9년만에 새로 출간됐다. 16살이던 60년대초 무작정 상경한 뒤 부랑자와 쪼록(매혈)꾼들의 세계를 거쳐 교도소, 부랑자수용소, 도시빈민가, 창녀촌을 전전하다 지게꾼이 된 25살까지의 삶이 날것 그대로 그려져 있다. 감방에서 읽어치운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작가가 된 그의 고백은 당시 지식인들이 대변하는 민중문학의 도식성에 빠져있던 우리 문단에 적잖은 충격과 감동을 던졌다.

그는 한밤중 불꺼진 역에서 부랑자의 무리에 섞여 미친 여자를 윤간하다가 그녀의 배 위에서 “지랄하네”란 말을 듣는 순간의 비참한 이미지로 자신의 생을 요약했다. 한 인간의 출생이 무수한 정충들의 경합에서 이루어지듯 세상은 거대한 자궁이며 자신 같은 최하층의 인생들은 난자와 결합해 착상하려고 기를 쓰는 정충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한다. 피를 팔아 밥을 사먹고 800원을 받으려 정관수술을 두번이나 하면서 살아갈 이유가 있느냐고 쉽게 질문하는 독자들 앞에 그는 “삶에의 의지를 갖고 있는 모든 생명체, 그 생명체의 살아있고자 하는 몸부림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답변한다.

〈한윤정기자〉 경향신문 200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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