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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16
2023.01.29 (15:25:22)

[똑똑똑]은 초보 활동가의 반빈곤 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을 담은 꼭지

 

 

그놈의 합리성, 꼴도 보기 싫어서

장애인 이동권 투쟁, 그리고 ‘합리적’ 무정차라는 공공의 폭력 

 

<민푸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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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지하철 탑승 저지를 위해 집결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들의 모습 <사진=홈리스행동>

 

새해 첫 월요일 아침부터 삼각지역을 찾았다.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지하철행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 날에는 경찰과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길을 가로막아 삼각지역에 가지 못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수백의 경찰들과 서울교통공사보안관이 승강장마다 배치되고, 일렬로 늘어서 경찰방패를 들고 휠체어 이용자들을 비롯한 모든 지하철행동 참여자들의 지하철 승차를 막는다. 나중에는 아예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킨다. 실제로 전년도 12월부터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행동에 대응하여 지하철행동이 진행되는 역사에 열차가 멈춰 서지도 않도록 ‘무정차’ 통과시키고 있다.

 

언론은 보도한다. 지하철을 타려는 전장연과 타지 못하게 막는 서울시 사이의 갈등을. 그러니 지하철행동이라는 ‘전술’과 이에 대응하는 시의 ‘조치’에 방점이 찍히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말한다.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도 너무하지만, 그래도 더 나은 전술이 필요하지 않겠어? 장애인권리예산 확보도 장애인권리보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더 합리적인 전술이 있을 거 아냐. 나는 이런 요구를 종종 생각한다. 투쟁의 방식보다 이유에 더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게 아니다. 그보다 어떤 운동이나 투쟁이 이성과 합리성을 무기로 경합해야 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지향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더 나은 전술을 찾아보라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는 경제학 교과서 어딘가에 나와 있을 것 같은 모범 사례가 떠오른다. 합리적인 요구를 합리적인 전술로 촉구하면, 시민들은 동의하고, 나아가 합리적인 정부와 지자체는 요구안을 검토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과 단계적으로 시행할 것을 구분하여 결국 가까운 미래에 그 요구안은 관철될 것이라고. 그게 바로 협상이고, 그런 협상이 운동의 성패를 결정할 거라고.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묻고 싶어진다. 당신이 경험한 정부가, 국가가 정말 합리적으로 설득하고 협상할 수 있는 상대인지.

 

작년 1월 서울역사 안에는 서울교통공사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었다. “엘리베이터 내/외부 대소변 금지, 엘리베이터 내/외부에 대소변을 보는 노숙인 발견 시 역무실로 신고 바랍니다. 적발 시 CCTV 확인 후 고발조치 예정.” 비슷한 일이 재작년 12월에도 있었다. 혜화역에서 지하철 출근길 선전전이 진행되던 당시에 혜화역 승강기가 원천 봉쇄됐다. 봉쇄된 승강기에는 이러한 안내문이 혜화역장의 이름으로 붙었다. “금일 예정된 장애인단체의 불법시위(휠체어 승하차)로 인하여 이용시민의 안전과 시설물 보호를 위하여 엘리베이터 운행을 일시 중지합니다.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혜화역장)”

 

지하철행동 현장에서 나는 보았다. “왜 남의 직장에 와서 행패냐”며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던 공사 직원,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참여자들에게 “어차피 그래봤자 못 타는데”라며 동료와 낄낄 웃던 경찰, 내 귀 바로 옆에 앰프를 대기에 치워 달라 하자 “에베베베”하며 조롱하던 공사 직원, 야유하며 지나가는 시민에게 “경찰이 못하는 말 대신해주셔서 감사하다”던 경찰. 

 

안내문이든 집회 현장의 언행이든, 공공의 이름으로 동료시민을 협박, 위협, 분리, 배제했다는 점에서 똑같다. 엘리베이터 봉쇄, 탑승 저지, 무정차라는 발상이 경찰과 공사 직원 개개인의 수행과 안내문으로 역 안에, 승강장 앞에 시현되기까지, 나는 이것이 어떤 합리적인 고민의 과정을 거친 건지 모르겠다. 찰나라도 합리적인 고민을 했다면 싫고, 불편하고, 불쾌하고, 괘씸한 날 것의 감정들이 그 자체로 공공의 조치가 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고, 안내, 규제와 같은 조치가 사적인 대응 이상의 공공성을 가지고 있음을 잠깐이라도 알았다면, 이렇게까지 투명하게 혐오가 공적 언행의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되묻는다. ‘합리성’의 언어가, 그 조치가 언제, 어디서, 누구를 향해, 무엇을 가리고자 동원되는지 아느냐고. 누군가 그 조치를 합리적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실은 그 배후의 지극히 감정적인 의도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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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연대하는 홈리스행동 인권지킴이 활동가들 <사진=홈리스행동>

 

나는 묻는다. 어떤 감정들이 어떤 조치와 행동을 낳았는지, 어떤 감정을 가리기 위해 합리성이라는 말이 동원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동료 시민들을 시민으로 대접받지 못하게 하는 장벽을 만든 데에 합리적인 근거가 아니라 지극히 감정적인 동력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나는 요청한다. 합리성이 아니라 현장을 날뛰는 감정들에 주목해 달라고. 감정을 죽이고, 치우길 요구하기보다 어떤 감정이 이곳에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하는지 생각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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