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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les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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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18
2023.04.01 (21:33:33)

[똑똑똑]은 초보 활동가의 반빈곤 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을 담은 꼭지

  

유서에 호명된 자, ‘나의 동지’

제복 입은 권력과 유언으로 남겨진 투쟁의 책임

 

<민푸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3면 최종.jpg

▲ 장애여성이자 노점상, 빈민이자 또한 사회운동가였던 故최옥란 <사진=빈곤사회연대>

 

3월 26일은 중증 뇌병변 장애여성으로, 노점상이자 도시빈민으로 진보적장애운동과 반빈곤운동에 헌신한 최옥란 열사의 기일이다. 이날엔 전국 각지의 장애활동가들이 한데 모여 권리의 주체가 된다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관인 전국장애인대회가 펼쳐진다. 그것도 그들을 시설로 몰아내려고 악을 쓰는 지역사회의 한복판에서.

 

중증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시혜와 동정을 선물처럼 감사히 받을 줄 아는 착한 장애인으로 살게 해야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재앙일 것이다. 시설에 가만히 있어야 할 존재들이 떼를 이뤄, 감히 내 일터까지, 감히 내 턱밑까지 쳐들어오다니. 괘씸할 거다. 오세훈 서울시장처럼 지역사회와 중증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제복이라는 무기

그런 사람을 상사로 모시는 이들에게도 그런가 보더라. 경찰들은 아무렇지 않게 휠체어를 탄 동지들을 “들어 옮겨”라고 서로 지시하고, 짐을 옮기는 내 앞을 막아서고, ‘협조’하지 않으면 그 누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고 협박했다. 경찰이 휠체어를 뒤로 잡아 끌어 반쯤 뒤로 넘어간 한 동지가 스스로 굴러나가겠다고 하자, 이렇게 해야 도와 드릴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경찰들은 너무 많았다.

 

‘안전’, ‘통제’, ‘질서’ 따위의 말과 함께 쏟아지는 지시와 명령, 협박, 훈계에 지쳐서 무슨 법이 근거인지 따져 물었으나 그들은 ‘당연히 그러면 안 되는 거죠’ 같은 말만 반복했다. 난 지금껏 악법도 법이라는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고 생각했다. 악법이 법이 된 이유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 이유를 끝까지 붙잡고 늘어져야 악법이 더 이상 법이 될 수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법의 이름으로 제복을 입고 법을 집행할 자격이 주어진 이들이 법도 아니고 그저 제복 한 장을 무기로 입고 나왔다는 데 진이 빠졌다.

 

 

제복이 아닌 책임을 두려워하기

폭력적으로 대응하다가 운 나쁘게 ‘집회참여자’ 하나 둘 정도 실려 나가도 같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내게 제복을 쥐어준 사람들이 내 편일 테니까. 결국 법이 내 편일 테니까. 그들은 제복을 입는 순간부터 그걸 알았던 거다. 그래서 악법이 아니라 제복이 그들에겐 가장 큰 무기였던 거다.

 

제복의 지시, 명령, 협박, 훈계가 나는 두려웠고, 그 사실이 모욕적이었다. 나와 내 동지들이 진짜 이 제복 입은 이들의 손에 다칠까봐(실제로 많이 다쳤다), 궁지로 몰리고 뿔뿔이 흩어져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연행될까 봐, 그래서 우리가 두려움에 천천히 지쳐갈까 봐. 아득하게 두려워졌던 거 같다. 

 

그러다 최옥란 열사의 생전 사진을 다시 봤다. 그가 2001년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싸울 때도, 한 달 치 기초생활수급비를 반납하며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해 싸울 때도 경찰은 제복으로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20여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그래서 내 두려움의 방향을 바꿔보려고 한다. 제복을 입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정말 두려워하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는 나를 두려워 해보려 한다. 

 

 

당신의 동지 되어

최옥란 열사는 유서에 남겼다. “나의 주위 계신 동료 여러분께 부탁이 있습니다. 내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꼭 이어주십시오.” 나는 최옥란 열사 생전 그와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지만, 그의 유서에 호명된 “나의 동지”로서의 책임을 작게나마 하고 싶다. 그러니 내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그 책임을 함께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나이지 않은가.

 

우리가 자신들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는 제복 입은 그들의 믿음을 철저히 깨부수겠다. 제복은 기껏해야 말 같지도 않은 명령질, 훈계질, 협박질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열차가 어둠을 헤치고 세상에서 배제된 모든 이들과 함께 나아갈 때 ‘겨우 그런 훈계질을 들을 때가 있었다’고 ‘제복을 쥐어주며 그래도 된다고 감싸주던 그런 악법도 있었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너무 거창하게 말한 것 같아서 민망하다. 원래 멋모르는 초보들이 꿈만 크다고 하더라. 내년 이맘때는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조금만 더 작아져 있기만 해도 대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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