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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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돌봄, 여성, 홈리스]   

 

여성홈리스의 눈으로 보는 세상

돌봄을 ‘홈’ 밖으로 퍼뜨리는 길순자 이야기

 

<홍혜은 / 여성홈리스구술사기록팀,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

 

왜 여성홈리스인가

홈리스행동의 아랫마을홈리스야학에서 자원활동가로 활동을 한 지 3년째다. 처음 여기로 흘러 들어온 건, 솔직히 말해 어떤 ‘페미니즘’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였다. 2015년 한국에선 페미니즘이 대중화 됐다. 그 덕에 그럴 듯한 문화자본을 물려 줄 부모도, ‘선배’도, ‘어른’도 없던 나에게까지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이 흘러 들어올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개인(시민) 되기’를 목표로 시작됐다. 그러니까, 당시엔 알 수 없었지만, 돌이켜 보면 자신이 자유주의적 세계관에서 ‘개인’이라는 감각을 성장 과정에서 잘 배우고 체화한 중산층 출신이 대중적 페미니즘에 훨씬 친연성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반면 빈곤을 경험한다는 것은 시민에서 점점 멀어지는 일이다. 사회를 분석하는 가장 강력한 틀을 계급, 인종, 젠더로 꼽는데, 나 역시 여성이라 페미니즘에 연결될 구석이야 많았지만 아무래도 완전히 ‘그’ 여성의 일부가 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한편 내가 여기에까지 오는 데 영향을 준 글쓰기반 날라리(최현숙 작가의 별칭)는 지나가는 ‘노숙인’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거리를 두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홈리스행동을 통해 빈곤 운동에 결합하게 되었다고 썼는데(그의 책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중), 나 같은 경우엔 내가 겪은 빈곤과 ‘홈리스’ 운동이라는 게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가 고민이었다. 날라리가 경험적으로 표현했듯 홈리스는 한국에선 ‘노숙인’으로 전형화된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홈리스란 용어는 홈의 박탈을 의미”하고, “그 안(홈)에서 이뤄지는 재생산 기능을 포함”한다고 설명한다(‘홈리스가 노숙인으로 대치될 수 없는 이유’, 프레시안 2014. 10. 24. 기고글). 나는 이 글을 읽고는 ‘아니, 그렇다면 나는 정말 홈리스야! 여기가 바로 내가 가야 하는 곳이야!’ 하고 생각했다. 과연 그랬다. 내가 아는 한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여성주의의료협동조합에서 만날 때 가장 편안해 보이는데, 바로 그것처럼 나는 아랫마을야학이 가장 편하다. 지금은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로서, 이동현 활동가의 설명을 통해 접한 ‘홈리스’의 ‘홈’이라는 개념이 여성홈리스의 특수한 문제를 설명하는 데 크게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이에 이 시각의 분석에 지면을 할애해볼까 한다.

 

여성홈리스의 눈으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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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 여성홈리스구술사 화청자 간담회 <사진=홈리스행동>

 

나는 (곡절 끝에)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고 있다. 여성학은 페미니즘이 학문으로 발전한 것인데, 특히나 여성사를 발굴하는 작업을 통해 본격화된 학문이다. 그런데 여성사 작업이 그때그때 시기적으로 쉽게 대표되는 여성만을 여성으로 포착하고 어떤 여성은 쉽게 배제해버리는 오류가 생기자, 이를 비판하면서 젠더라는 총체적 개념을 통해 역사를 통시적으로, 엄밀하게 분석하면서 나온 것이 젠더사다(‘젠더’ 역시 ‘홈리스’처럼 외래어라는 이유로 흔히 배척되고, 대중적 오해를 산다). 젠더 관점의 여성학 연구가 무엇보다 문제시한 것은 이 사회에서 ‘홈’의 안팎, 즉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사적 영역과 생산이 이루어지는 공적 영역이 경계지어지는 방식이다. 여성을 모두 ‘홈’ 안에 있는 존재로 가정하면 여러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까, 물리적인 집house이 아니라 ‘홈’의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홈리스라면, ‘홈’ 안에 있는 게 당연한 여성이 홈리스가 되면 경험의 특수한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작업에 결합하기로 한 작년 여름, 홈리스행동을 통해 두 명의 여성홈리스를 만났다. 원래는 청자 한 명이 화자 한 명을 만나서 작업하는 게 기본인데, 나는 한 여성홈리스와의 작업 진척에 실패해 두 번째 청자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난 사람은 청년 여성홈리스였는데, 그와의 인터뷰를 원고화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내가 그의 사례를 접하며 느낀 점은, ‘홈’을 벗어난 젊은 여성이 홈리스 ‘사회’에 끼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했는데, 따라서 ‘서울역 노숙자’로 대표되는 홈리스 상에서 한참 벗어난 생활을 했다. 현재의 홈리스 담론은 이런 생활에서 겪는 문제를 제대로 포착할 눈이 없다.

 

나는 아랫마을홈리스야학에서 집house을 아예 잃어 본 홈리스들을 만나며 서울에 물리적 주거 공간이 없어도 이곳저곳 잘 곳, 먹을 곳이 꽤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했다(언젠가 나도 집이 없어진다면 참고할 정보가 잔뜩이라 든든하다). 그런데 이런 ‘팁’들은 노숙 경험을 공유하는 하나의 ‘사회’에서 공유된다. 전체 사회에서부터 비전형적인 위치에 놓이는 ‘젊은 여성’은 홈리스 사회의 일원이 되기도 어렵다.

 

두 번째로 만난 인터뷰이 길순자 님은 양동쪽방주민회에서 활동하는 70대 쪽방 주민이다. 이 원고를 쓰기 위한 통화에서 최근 주민회 활동, 양동 상황을 공유해 달라는 내 요청에 순자 님은 주로 두 가지 얘기를 했는데, 하나는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걱정, 다른 하나는 주민회에서 인천 석모도 야유회를 다녀온 얘기였다. 순자 님에게 야유회는 “차 안에서 아침 안 먹은 사람이 있으면 빵과 베지밀을 주고”, “오리백숙을 먹었던” 것으로 회상된다. 구술사 작업에서 순자 님은 대부분의 이야기를 의연하게 했지만, 엄마로서 자신의 아이들을 제대로 못 먹였던 기억에 대해 반복해서 말할 때는 종종 눈물을 붉혔다.

 

구술사 작업 때부터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순자 님의 걱정은 끝이 없는데, 요즘도 그는 다른 주민의 생활에 이런 식으로 개입한다. “장사 그렇게 하지 말아요. 이 아저씨가 시킨 것만 돈을 받아가야지, 다른 것도 아저씨한테 받냐고. 이 아저씨는 불알 두 쪽밖에 없는데 장사 그 따위로 하지 마세요(쪽방촌 구멍 가게에선 돈 계산에 어두운 주민에게 폭리를 취하기도 한다).” 재작년엔 남성 홈리스 대상의 구술사 작업을 했다. 이번 작업에선 그때와는 사뭇 다른 시각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데, 순자 님과 구술사 작업을 하다 보면 이 노년 여성은 세상 모든 걸 돌보고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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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층 빌딩 사이에 위치한 양동 쪽방촌. 재개발을 앞둔 이곳에서 길순자 님은 지금도 여성이자 홈리스로 살아가고 있다. <사진=홈리스행동>

 

양동 쪽방촌은 개발을 앞두고 있다. 많은 집이 철거됐고, 남은 집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중이다. 올해 집회 현장 등에서 양동쪽방주민회는 적정 주거 공간으로서의 공공임대주택을 요구하는 발언을 주로 해 왔기 때문에, ‘여성홈리스’ 특집에는 다른 부분을 적고 싶다. 순자 님은 마을 사람들이 노름에 쉽게 빠져 수급비, 일용직 급여를 탕진해버리는 게 걱정이다. 동네 구멍가게가 주민을 ‘등쳐먹는 게’ 걱정이다. 아저씨들이 술을 너무 많이 먹는 게, 병에 걸린 주민들이 건강이 너무 나빠져서 잘 씻고 잘 먹을 수 없게 되는 게 걱정이다(순자 님은 그렇게 된 이웃들을 가능한 한 씻기고 먹인다). 요약하면, 그는 집house이 홈home으로서, 마을이 홈들의 복합체인 홈타운hometown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걱정하고 있다. 그에게 돌봄은 중산층들의 돌봄처럼 좁게 구획된 각자의 홈 안에서만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돌봄을 ‘홈’ 밖으로 마구 퍼뜨리고 있다. 내가 만난 여성홈리스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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