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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013
2004.06.09 (11:51:11)
[정동탑] 한줌 햇볕도 빼앗긴 사람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던 난곡지역 재개발이 지난해 시작됐다. 한때 서울 곳곳의 산등성을 뒤덮었던 달동네도 지도에서 사라지게 됐다. 낮게 깔린 슬레이트 지붕, 다닥다닥 붙은 쪽방들, 좁다란 골목길, 연탄재…. 우중충한 과거를 걷어낸 자리엔 고층 아파트들이 세워지고 있다. ‘뉴타운’ 개발에 이어 노후·불량주택지역 299곳도 곧 재개발에 들어간다고 한다. 바야흐로 ‘하이 서울(Hi Seoul)’이 세계적 대도시에 걸맞은 스카이라인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가만…우리가 빠뜨린 게 있다. 사람들은, 달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한국도시연구소에선 이들이 옮겨간 대체주거지로 ‘지하’를 꼽고 있다. 지하라고? 그렇다. 지하다.


비싼 분양금과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분양권·입주권을 포기한 주민들은 인근 지하 셋방으로 집단 이주했다. 난곡의 경우도 가까운 곳부터 차차 먼 곳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임대료가 40~50%씩 뛴 곳도 적지 않았다. 이렇듯 도시 발전에 떼밀려 지하 주거 공간에서 살고 있는 인구 규모가 서울에만 최소 25만가구에 이른다는 게 도시연구소의 분석이다.


문제는 지하 거주 환경의 열악함에 있다. 병원체를 번식시키는 습기가 항상 가득 차 있다. 벽지에는 곰팡이가 펴 썩어간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하다. 그나마 낫다는 반(半)지하층도 일조시간이 ‘하루 평균 42분’에 그친다는 게 공식 조사결과다. 환기가 되지 않아 부엌에서 요리를 하면 음식 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물과의 전쟁을 치르는 건 연례행사다. 2001년 여름 폭우때는 서울에서 9만5천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는데, 이중 80%인 7만여가구가 지하·반지하 가구였다. 이들에겐 비는 낭만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이다. 결국 빈곤이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흩어졌을 뿐이다. 은폐됨으로써 오히려 고통은 더 심해지고 있다. 삶의 질만큼은 차라리 달동네가 나았을지 모른다. 궁핍한 살림은 다르지 않아도 그땐 서로 기댈 수 있는 이웃이 있었다. 창문 턱에 걸린 아침 햇살에 눈을 뜰 수 있었다.


도시가 아름다워질수록 일부 시민들의 삶은 피폐해지는 역설, 한쪽에선 아파트 투기의 단물을 들이키는 동안 다른 쪽에선 지상에서 추방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서울이 커다란 놀이공원이라고 생각해보자. 롤러코스터, 바이킹, 회전목마…. ‘자유이용권’을 가진 계층은 신나게 비명을 지른다. 5개의 놀이시설을 탈 수 있는 ‘빅5’ 이용자도 다소 아쉽긴 해도, 그럭저럭 즐겁다. 그러나 한줌의 햇볕마저 누릴 수 없는 저소득층들에겐 지옥이나 다름없다. 당신은 이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과연 자랑스러운가.


아무리 개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지만, 최소한 인간다운 삶은 보장받아야 한다. 이것은 인권문제다. 둥지가 망가지면 그 안의 가정도, 사람의 마음도 상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지하주거 규제’식의 행정조치를 통해 다시 거리로 내몰자는 얘기는 아니다. 아직 지하주거 실태에 대한 조사가 한번도 변변히 실시된 적이 없었다. 우선 현실부터 파악,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도시 미관을 정화하고, 청계천을 복원하고, 시청앞 광장에 잔디를 깔고, 페스티벌(축제)을 벌이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서울을 상생(相生)의 생태계로 가꿔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하우 서울(How Seoul)’도 필요하지 않을까.

<권석천/경제부 차장 miladk@kyunghyang.com〉

최종 편집: 2004년 06월 04일 19: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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