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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주거지' 쪽방에서의 하룻밤
혜리 기자의 쪽방 체험기

혜리 기자


낮에 본 윤 할아버지의 쪽방을 떠올렸다. 한 몸 겨우 뉘일 만한 작은 방, 그 방은 일전에 보았던 감옥 독방 모형보다도 작아 보였다. 한 달에 18만원이라니, 방의 크기나 건물의 시설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 곳이 철거되면 갈 곳은 거리이거나 저 세상일뿐이어서, 수세미 행상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윤 할아버지에게 그 방은 얼마나 소중한 공간이랴 싶었다.

그래서 걱정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쪽방에서 과연 세 명이 함께 잘 수 있을까? 아무리 덩치가 크지 않은 여자 셋이라 해도 말이다.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도시빈민선교회', '민중복지연대', '빈곤사회연대(준)', '전국노점상연합'이 주축이 된 2004 빈민현장활동 프로그램 중, 내가 선택한 노숙인 하루 체험은, 이렇게 쪽방 체험에 대한 불안으로 시작됐다.

현재 쪽방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 부부를 따라 그 날 밤을 보내게 될 쪽방으로 향했다. 대우빌딩을 지나 서울시티타워를 지나 횡단보도를 몇 개 건너 언덕바지를 약간 올라가니 소박한 동네가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그 초입쯤에 자리한 5층 짜리 쪽방. 나는 3층 16호실에 묵었다. 하룻밤에 만원 하는 그 쪽방은 살림살이가 없기도 했지만, 빈활대라고 좀 괜찮은 방을 구해주었는지 생각보다 좁지는 않았다.



언뜻 보니 한 층에 8-10개의 방이 있었고, 층마다 계단 바로 옆에 공동샤워장 및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에만 문이 달려있을 뿐, 달리 문이 없는 그 공간에는 짙푸른 색의 두꺼운 커튼이 달려 있어, 샤워를 하려면 오른쪽과 뒤쪽에 있는 커튼을 쳐야 한다. 쪽방에도 프라이버시 존중을 위한 서로 간의 약속이 있을 테고, 화장실 커튼이 바로 그런 약속 중에 하나일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단 하루 그 곳에 찾아든 이 이방인은 누가 커튼을 젖히기라도 할까 걱정이 되어 고양이 세수만 겨우 했을 뿐이었다.

화장실엔 치약도, 샴푸도, 휴지도, 아무 것도 없었다. 개인의 생필품은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 일세가 만원이니, 쪽방에서 한 달을 살기 위해서 주거비만 30만원이 드는 셈이다. 거기다 각종 생필품과 먹고 입고 움직이는 데 기본적으로 드는 돈을 생각해 보면, 1인 기준 36만여 원의 최저생계비는, 최저생계는커녕 최소생존비도 될 수 없겠구나 싶었다.

같은 쪽방 5층에 거주하는 그 부부로부터 바닥에 깔고 잘 요와 덮을 이불 하나를 얻었다. 빈활대 참가 학생 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한 시각이 1시 반 경. 베개도 없이 누운 바닥이 어색하고, 문고리 하나 만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제대로 된 소화기 하나 보이지 않는 이 곳에 불이라도 나면 어쩔까 온갖 불안한 상상을 하니, 오던 잠도 다 달아나는 듯했다. 온갖 거리의 인생들이 드나드는 쪽방이다 보니, 겉보기엔 깨끗한 바닥 장판지에서도 눅진하니 고단한 삶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게다가 이 곳의 방음은 형편없었다. 누군가 TV를 틀어두었는지 2시까지 무척 시끄러웠다. 익숙하지만 제목을 알 수 없는 오페라나, 하바네라, 그리운 금강산까지 큰 소리로 흘러나왔고, 누군가가 그에 못지 않은 큰 소리로 뭐라고 욕을 해댔다. 듣자하니, TV를 틀어놓은 장본인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애꿎은 지탄의 대상이 되는 듯 했다.

그 소리가 잦아들자, 이번에는 정담을 나누는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3시가 넘도록 누군가 걸어다니는 발자국 소리, 샤워하는 소리, 물 내려가는 소리, 온갖 소리들로 인해 잠을 통 못 이뤘다. 조금 지나자 열어둔 창문으로 쓰레기 썩는 냄새가 들어와 이내 좁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다음 날 예정된 꼬지 체험을 위해 새벽 5시 10분까지 회현역으로 가야 했던 난, 결국 잠들기를 포기했다.

'열악하다'는 표현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쪽방. 하지만 그 곳에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는 극빈층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거리로 나가기 전, 혹은 거리에서 돌아온 후 그들 스스로 '지불가능한' 유일한 주거 형태인 쪽방은, 이토록 열악할지언정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나의 권리, 소중한 자기만의 방인 것이다.

'최후의 주거지'라 불리는 쪽방은 어찌 보면, '적절한 주거를 향유할' 국민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 국가가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동안, 국가를 대신해 순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쪽방을 '녹지 조성'을 명목으로, 적절한 대책 없이 철거해 버린다는 것은, 고령이거나 병약한 사람들이 상당수인 쪽방 거주민들을 거리로 내몰아 하루빨리 죽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가 자국민의 인권을 이렇게 유린할 수 있는 것인가. 또한 빈곤층 스스로 지불 가능한 영구임대주택의 재고가 전체 주택 재고 대비 1.5%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주택 정책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건설교통부의 발표에 따르면, '4인 가구 최저 면적 11.2평, 전용 부엌 및 화장실 확보, 적절한 환기, 채광 및 냉난방 설비' 등이 우리나라 주택 정책의 기본이 될 최저주거기준이다. 쪽방은 이에 견주어 보자면, 그야말로 기준 이하의 주거 형태가 된다. 정부에서는 쪽방의 순기능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곳을 좀더 나은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일단 다 때려부수고 새로운 것을 좀더 비싸게 지어, 살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새벽 4시 40분 경, 쪽방에서의 짧은 밤을 마감하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문가에 앉아 담배 피우고 있던 중년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을 하길래 저렇게 일찍 일어났을까. 대로변에 나서니 인력알선센터에서 나온 버스가 서 있었다. 아, 고단할 것임에 틀림없는 그의 하루가 기다리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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