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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961
2011.12.26 (11:50:35)

 

눈.jpg빈곤을 대하는 두가지 눈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가난은 죄다’ 혹은 ‘가난은 죄가 아니다’, 이 두 말 중에 어느 것이 맞을까? 또 ‘사람 나고 돈났지, 돈나고 사람났나?’라는 말과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 말 중에 어떤 쪽이 진실에 가깝게 여겨지는가? 정답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우리가 어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어떤 사회인가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이웃인가에 따라서 정해진다. 같은 사회에서도 시대에 따라, 또 살림살이의 팍팍함과 사람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 가난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다양한 눈이 있겠지만 거칠게 말해 이 세상에 두 개의 눈만 있다고 가정하자. 하나는 가난을 미워하고 업신여기는 눈이다. 이런 눈으로 볼 때 이 세상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한테는 누구에게나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런데 제 앞가림을 못하는 사람은 게으르고 무책임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불운을 자초했으니 그런 사람을 무작정 도와주는 것은 의존심만 키울 뿐이다. 사회복지 혜택을 사기쳐서 받으려 할지 모르니 아주 엄격하게 심사해서만 줘야한다. 무책임한 사람을 도울 바에야 그럴 돈이 있으면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돕는 게 낫다. 공정한 기회균등의 사회에서 가난하고 뒤떨어진 사람한테는 무슨 흠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은 술독에 빠져살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되도록 사회의 선량한 시민들로부터 격리하고 엄격하게 대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정부와 언론은 부자들의 세금 사기(탈세)보다는 복지 사기를 더 강조하며 가난한 사람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 부족한 사회복지를 확충하는 것을 정부의 역할로 여기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노숙인이나 노점상 등)을 안보이게 치우고 도시를 개발하고 치장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럼, 앞에서 말한 눈과 반대되는 눈으로 가난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가난은 세상살이의 아주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일들이 빚어내는 상황이다. 가난은 경제적 어려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은 업신여기고 모욕주고 의심하는 주위의 시선 속에서 더 깊어진다. 차별과 배제 속에서 사람은 주눅들고 불만을 키우게 되지 자기존중감을 갖기 어렵다. 기회균등의 사회라고 말들 하지만, 뿌리 깊은 차별과 배제로 인해 누구한테는 아예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교육도 취업도 주거도 의료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형편에서 태어나 성장할 수 있다. 혹은 사회복지가 빈곤한 사회에서는 멀쩡하게 잘 살다가도 실직하거나, 주거비가 치솟거나, 병원비가 많이 들어서 하루아침에 추락할 수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직장을 얻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빚은 빚을 부르고, 가난한 사람들이 빚을 질수록 부자는 더 부자가 된다. 정부와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도덕적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내쫓고 죄인 취급하는데 힘을 쏟을 게 아니라 먹을 것, 쉬고 잘 곳, 일자리, 교육과 의료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하는데 희소한 자원을 써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두 가지 눈에 대한 얘기는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다. 빈곤 문제를 다루는 유엔의 전문가가 2011년에 내놓은 보고서의 내용이다. 유엔의 빈곤 문제 전문가가 각 국의 정부와 시민들에게 가지도록 권하는 눈은 두 번째의 눈이다.

가난을 없애고 줄이는 데는 물론 경제적 자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료 시민들이 빈민을 동등한 이웃으로 대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연민과 공감을 가진 시민들이 많으면 정부가 차별적이고 가혹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을 죄인취급하고 혹독하게 다룰 것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많으면 가난이 죄가 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인 사회가 된다.

나도 간혹 지방에 다니러 기차를 타고 내릴 때면 역전의 노숙인들을 보게 된다. 물론 유쾌하지가 않다. 나는 귀가해서 잘 곳이 있는데, 귀가하고 잘 곳이 없는 사람들이 거기 있다는 것이 맘에 걸리고, 나는 씻고 단장하고 거리에 나섰는데, 씻고 단장할 수 없는 사람들이 거기 있다는 것이 슬프다. 나는 동료 시민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믿고 싶다. 당장 모든 이에게 집을 줄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역에서나마 내쫓고 두들겨 잡는 시책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시민들의 울타리는 있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가난했지만 서로 연탄불을 꿔주고, 아궁이에 아껴둔 더운물을 나눠주고, 이웃집 아이의 밥을 챙겨주던 이웃이 있었기에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식의 동네와 이웃이 사라졌다지만, 우리의 할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언론 등을 통해 정부가 노숙인이나 노점상 등 빈민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를 알고 있다. 적의와 반감을 드러내는 이웃이 될지, 연민과 공감을 드러내는 이웃이 될지, 뒷짐지고 구경만 하는 이웃이 될지, 나아가 어떤 식으로 살림살이를 꾸리는 사회의 구성원이 될지를 정하는 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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