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옮기는 짐수레에 천 한장 덮지 못하고 실려가는 동료 노숙인의 주검을 보며 인간적인 울분이 치밀어 경찰에게 항의한 것이지 노숙인들이 폭도나 깡패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일반인들이라고 사람이 그런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걸 보면서 가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달 22일 서울역에서는 노숙인들과 경찰의 충돌 사태가 있었다. 철도 당국이 화장실에서 숨진 노숙자의 사체를 짐 옮기는 수레에 그대로 실어 옮긴 것에 대해 노숙인들이 집단 행동에 나선 것. 최소한의 인권도 없이 죽어간 노숙인의 처지에 분노한 노숙인들은 그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했고 일부 언론은 이를 노숙인들의 폭동으로 묘사했다. 서울역이 노숙인들로 점거되다시피한 상황에서 이용객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고 이에 따라 노숙인 강제 수용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이다.
그러나 노숙인 지원단체들은 “기초적인 사회 안전망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를 잃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노숙인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는 도외시한 채, 무조건 노숙인들을 강제 수용하겠다는 것은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이하 노실사)은 노숙인 지원 단체 가운데서도 정부의 지원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대표적인 시민단체로 꼽힌다. 2001년 노숙자 쉼터에서 공공 근로자로 일하다 노숙인들과 인연을 맺어온 문헌준 대표는 직접 ‘노실사’를 만들어 노숙자 인권과 권리 찾기에 나서고 있다. 문 대표는 “온정주의에 기대는 노숙자 정책은 노숙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노숙인 인권과 사회구조적 희생자로서의 복지 개념을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경찰과 노숙인들이 최초로 충돌한 이른바 1. 22 서울역 사태는 최소한의 인권도 인정받지 못한 채 사람이 쓰레기처럼 죽어나가는 현실에 대한 노숙인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며 “일부 언론이 앞뒤 맥락은 배재한 채 무조건 노숙인들을 폭도처럼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문 대표는 또 “노숙인 문제는 쉼터 문제, 공공 역사 문제, 쪽방 문제 등 노숙인들이 처한 각각의 상황에 맞는 대안들이 고민돼야 한다”며 “돼지 우리 만도 못한 쉼터에서 살고, 길거리에서 주는 밥을 구걸하듯 먹는 수준의 사회 안전망이라면 제 2, 제 3의 서울역 사태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문 대표와의 일문일답.
|
"서울시 노숙인 대책은 도외시한 채 시민과 노숙인 대결 구도 방치"
|
|
[사진=노실사 제공 ] | =서울역사가 노숙인들에게 점거돼서 이용객들의 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단속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 아닌가? 서울시와 언론이 노숙인 문제를 노숙인과 시민간의 대결 구도로 호도하는 것이 문제다. 서울 역사는 공공역사다. 그런데 그 안의 공간을 보면 공공성 보다는 상업적 공간으로 가득 차 있다. 쇼핑몰, 음식점은 엄청나게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데 정작 시민들의 대기 공간이나 휴식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날이 추워지면 장기 노숙인이나 부랑자 뿐 아니라, 가출 청소년, 실직자, 가정 폭력 피해 여성 등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역으로 모여들게 돼 있다. 공공역사를 지을 때는 그런 점까지 고려를 해야 한다. 현재의 서울역사가 그런 점을 고려해 공간 설계가 돼 있나. 시민들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세금으로 지은 역사가 상업적 공간으로 채워져도 되나.
최소한 몰려드는 노숙인들을 감안해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는 공간은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노숙인들이 상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행정 지원 센터를 만들고 무료 진료소도 대폭 확장해야 한다. 노숙인들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없다면 상생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역 충돌사태에 대해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는데.
노숙인은 사람이 아니고 국민이 아닌가. 시민이 역사에서 쓰러져도 119도 부르지 않고 들 것 하나 없이 물건 싣는 손수레에 천으로 가리지도 않은 채 쓰레기 치우듯 했을 것인가. 그런 앞 뒤 맥락없이 노숙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게 언론이다.
=공간이 협소하다면 결국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철도 당국이 장기 노숙인들을 철저히 단속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노숙인들을 강제 수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노숙인 쉼터를 구금 시설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쉼터는 개방형 시설이다. 일부 미인가 구호시설에서 수용자들을 감금한 사례가 나올 때마다 인권의 사각 지대니 뭐니 하는 말들을 하지 않았나. 서울시가 노숙인들을 강제 수용하겠다는 것은 복지 정책을 몇 십년 전으로 후퇴하겠다는 말 밖에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숙인들의 실태 파악과 그에 따른 처방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다.
”쉼터 노숙인 문제 근본대책 되지 않아” =쉼터가 있는데도 노숙인들이 공공역사로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아직 노숙인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주거가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자도 노숙인으로 봐야 하나. 노실사 사랑방에 계시는 분들을 노숙자라고 하면 다들 싫어하신다. 거리 노숙을 하는 분들도 장기간 노숙하려는 사람은 없다. 빨리 돈 벌어서 집을 갖고 싶어하는데 일자리는 없고 주거비는 많이 나가고 그러다보니 장기간의 노숙이 되는 거다. 그런데 주거가 일정하지 않다고 무조건 쉼터로 가라고 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다. 쉼터는 최소한의 사생활도 보장이 안 된다. 한 평의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우리 같은 곳에 모아놓고서 노숙인 문제가 해결됐다고 할 수 있나. 아무리 사회적으로 배제된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개인적인 공간을 갖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노숙인 문제는 순차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쉼터는 임시거처일 뿐, 궁극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일용직 등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노숙인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주택을 제공하라는 거다.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쉼터에서 몰아넣고 공짜로 주는 밥에 의존해 살라고 하면 되는 것인가.
=현재 우리 복지 정책의 접근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데. 지금까지 빈곤 문제 특히 노숙인 문제는 종교 단체 등에 많은 부분 의존해왔다. 구호 사업과 온정주의만이 있을 뿐 정부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는 많지 않았는데.
노숙자 문제도 기본적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 동안 많은 단체들이 노숙인 지원에 나섰지만 대부분 정부의 위탁 사업을 하거나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정부의 미온적 정책이나 잘못된 정책 방향에 대해 전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복지를 인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움직임도 필요하다고 본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사비를 걷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마인드에 머물러있다. 그런 식의 복지 정책은 구조적 문제를 방치하게 된다. 노숙인들도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기여한 계층이다. 저임금 노동자로서 그리고 도시 개발의 희생자로서 국가에 합당한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는 집단이다. 이는 단지 노숙인들 만을 위한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도 노숙인 문제로 불편을 겪는 만큼 국가에 노숙인들의 복지 서비스를 요구해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다.
노숙인들이 그저 구걸만하는 존재는 아니다. 이들도 저임금 노동자로서 사회에 나름대로 기여한 계층이다. 그리고 사회 구조의 희생자들이기도 하다. 달동네가 없어지고 쪽방촌도 철거됐다. 시골에서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 도시로 온 이농민들이 도시의 빈민, 노숙인으로 전락한다. 현재 서울에 이웃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갈 곳 없는 그들이 사는 곳이 비좁은 고시원, 쪽방촌이다. 이들은 교통 약자이기 때문에 먼 곳으로 갈 수도 없다. 그러니까 소득이 30만원, 60만원인 사람들이 소득의 절반 가량을 주거비로 쓰게 된다. 빈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거다. 그런 면에서 노숙인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노숙인들에게 최소한의 복지를 요구하는 것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녕과 사회 안전망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비정규직 문제와 다를 게 없다.
"복지시설 대형화는 노숙인들 격리시키고 복지 재벌만 키워" "가족단위 복지개념 벗어나 노숙인 주거 문제 근본 대책 세워야"
|
|
[사진=노실사 제공 ] | 영등포 시장 부근에 자리한 ‘노실사’ 사랑방. 문 대표는 2002년 노숙인의 사생활이 보장되는 유료숙박소인 ‘노실사 사랑방’을 만들었다. 비록 7실에 불과한 소규모이지만 일반 쪽방보다는 방세가 저렴한데다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고, 비좁은 공간에서 단체 생활을 강요하는 쉼터보다는 개인의 인격과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주거 공간이다. 7인의 방세를 모두 합하면 96만원. 이 가운데 40만원은 월세로 나가고 나머지 56만원으로 식비와 운영비를 조달한다. 문 대표는 “처지가 어려운 노숙인들에게 돈을 받느냐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노숙인들을 거지로 보는 시각은 거부한다”며 “대형 쉼터가 아닌 노숙인들의 자활을 도울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의 유료 숙박 시설을 여러 곳에 늘려나가는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밝혔다.
=노숙자 복지 문제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갖게 됐는가? 학생운동을 10년 정도 했고 학생 운동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노숙인 쉼터의 실무자로 일하다가 지금까지 왔다.
=노숙인들의 자활의지가 결국 문제라는 시각도 있는데.
이 곳에 사는 분들도 다 일한다. 경비원으로 일하시는 분, 아르바이트로 일하시는 분도 있다. 노숙인들이 일하기 싫어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오히려 일을 해도 잘 살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가족 중에 누구 한 명 아파서 쓰러지면 빈곤층이 되고, 저임금 막노동에 시달려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병을 키워서 나이 40만 되도 일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는 상황이다. 멀쩡하던 사람도 재수가 없으면 노숙인으로 전락하게 되는 사회다.
=결론적으로 노숙자 단체가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공공 주택 100만호 만들면 뭐하나. 노숙인 문제는 절대 해결 안된다. 그런 곳에 가려면 가족이 있어야 하고 수급자가 돼야 한다. 노숙인들은 가족에게서 소외되거나 가족을 이끌 능력이 없는 사람들 아닌가. 복지 서비스가 가족 단위로만 이뤄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현재는 가족 해체의 시대 아닌가. 독신자들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런 목소리에 귀도 기울이지 않는다. 예산이 많이 드니까 그러는 거다.
현재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이 유료 숙박시설은 7실에 불과하다. 서울시가 쉼터를 폐쇄하면서 쉼터들이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다. 쉼터의 대형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복지 시설이 대형화 되면 복지 재벌들만 생겨날 뿐 노숙인들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 없다. 노숙인들 가운데는 실직으로 노숙인으로 전락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조금만 도움을 받는다면 스스로 사회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 장기 노숙으로 알코올 중독과 정신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사연과 능력이 다 다른데 노숙인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전부 쓰레기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우리의 복지 시스템이다. 바람직한 대안은 노숙인들을 노숙인으로 낙인찍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활할 수 있도록,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0명에서 30명 내외를 수용할 수 있는 소규모 쉼터는 지역사회에 잘 적응하며 묻어갈 수 있다.
노실자 사랑방은 활동가들이 돈을 모아 보증금 2000만원으로 조금 시설을 개조해 마련한 것이다. 불쌍한 노숙인에게 돈을 받느냐면서 욕하는 사람도 많았었다. 노숙자 지원 단체면 무료로 살 곳을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난 그런 시각에 반대한다. 노실자 사랑방은 14만원에서 17만원의 방세로 숙식이 모두 해결되니까 한 번 들어오신 분들은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싼 가격에 사생활이 보장되는 주거 공간을 노숙인 문제의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 곳을 시작으로 이런 소규모 숙박 시설을 여러 곳에 만들어서 홈리스 주거의 대안 모델로 제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노숙인들에게 길거리에서 밥을 제공하는 것도 불만이다. 장관이니 정치인이니 하는 사람들이 와서 노숙인들에게 밥 퍼주고 사진 찍고, 후원금 몇 천만원씩 내고 간다. 그게 노숙인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나. 그것은 노숙인들을 비참하게 하고 자존심을 버리게 만든다. 최소한 밥은 실내에서 먹도록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