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인권지킴이나 야학을 통해 만난 홈리스 당사자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꼭지입니다.
‘꽁지의 하루’
<홈리스뉴스 편집부>
홈리스행동의 공간에서 만난 꽁지님(예전 노숙할 당시 머리가 길어 묶고 다녔는데 그 모양이 꼬리와 비슷해서 별명이 꽁지다). 현재 노숙을 하면서 24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저녁 10시~아침 8시)를 하고 있다. 꽁지님도 예전에는 신촌에서 만화방을 운영하던 사장이었다. 사업이 실패하고 건설일용직을 다니면서 허리마저 다쳐 장기 노숙으로 접어들었다. 이 글을 통해서 노숙상황에서 일을 하는 꽁지님의 고충과 사회적으로 노숙인들은 일을 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들이란 편견과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어보고자 한다. 이 글은 꽁지님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서 쓴 글이다.
나는 노숙인이다.
나는 집이 없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종교단체나 봉사단체에서 나눠주는 무료급식을 이용해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일자리가 생겼다. 종로의 큰 빌딩 아래 자리 잡은 24시 편의점이 나의 직장이다. 2년 전 주거지원을 받은 후 1년 정도 일을 했던 곳이다. 만성인 허리 통증이 도져서 그만두었지만 편의점 사장과의 친분으로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다시 시작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은 좋지만 몇 가지 문제가 머릿속에 스친다.
벤치에 요철만 없어도 편하게 잘 텐데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잠자는 문제다. 야간 아르바이트다 보니 낮 시간에 잠을 자야한다. 아침 9시쯤 퇴근을 하면 머리와 발이 무겁다. 빨리 쉴 곳을 찾아야 하는데 갈 곳은 뻔하다. 돈이 있으면 찜질방이나 만화방에 가서 쉬겠지만 월급이 들어오려면 아직 2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 평일에는 주로 홈리스행동의 교실 한편에서 침낭을 덮어쓰고 잠을 잘 수는 있지만 주말에는 문을 닫아서 다른 방법으로 잠을 잔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몇 번을 순환하거나 공원 벤치에서 잠을 잔다. 공원 벤치도 눕지 못하게 요철을 세워놔서 앉아서 잠을 자야한다. 서울역 3층 대합실엔 노숙인들이 앉아서 TV보는 것도 싫어 의자까지 치웠다던데 앉아서 잠을 자는 거라도 감사해지. 이런 식으로 잠을 자면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요즘 다시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앉아서 자는 영향도 있겠지만 새벽 1시가 되면 편의점에 신선품(빵, 우유, 김밥, 도시락 등)이 입고가 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허리에 무리가 갔나보다. 지난번 그만 둔 것도 허리가 아파서 그만두었는데…
씻는 것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그 다음은 씻는 문제다. 서비스 직종이다 보니 청결은 필수다. 씻는 장소는 사람이 드문 지하철 화장실이나 공원 화장실을 찾아 주로 이용한다. 아무리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도 한두 명은 화장실에서 마주친다. 손만 간단히 씻는 거라면 눈치를 안 보지만 세수하고 머리감고 양치질까지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힐끔 힐끔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사람 씻는 것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 힐끔 거린다.
생명 줄=식사대기 줄
편의점에서 일하면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 좋다. 편의점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폐기를 하는 신선품들이 꽤 된다. 유통기한이 몇 시간 지났다고 음식이 상하지 않는다. 가방에 3~4개의 삼각김밥이나 샌드위치류를 가지고 다니면 벤치에서 앉아서 먹는다. 원산지도 불분명하고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무료급식보다는 내가 골라서 먹을 수 있어서 좋다. 10~20분 줄서서 기다리다 먹는 무료급식보다는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다.
저녁 9시면 다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종로로 발길을 돌린다. 길을 걷다 긴 꽁초가 보이면 하나 주워 물고 그렇게 일을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