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조회 수 : 1769
2012.06.29 (15:45:05)

[기고Ⅰ]

 

 당신은 무엇을 남겼나요

 

<사랑나라 / 글쓰기 모임 "늦봄에">


아침이 되면 가끔 누군가가 죽어간다
4월의 어느 날 아침 조금은 이른 시간에 경찰차가 보였다. 누가 사고를 쳤는가 생각하며 지나쳐 왔다가 입구로 돌아오는데 119 구급차가 넓은 도로로 나간다. 누가 싸워서 다쳤나, 아니면 아픈 구급환자?…. 골목으로 들어오는데 예전에 살던 집 주인 누나가 “천교야 승기가 죽었어, 술만 먹다가.” 사람이 죽었다는데 덤덤한 목소리의 주인아줌마. 듣는 사람들 또한 덤덤하니 표정의 변화가 없다. 쪽방 사람들 중 밤이 지나 아침이 되면 가끔 누군가가 죽어간다. 술을 조용히 먹고 밖을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은 옆방에서도 모른다.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서로 문도 두드리지 않는 사람들. 일일이 방을 찾아오는 복지사나 정신보건센터 사람들도 없으니.


형의 공책에 지금 형의 글을 쓰고 있어요
당신의 죽음 뒤에 영등포에 맡겨 두었던 짐 속에 당신이 언제인가 나에게 쓰라며 준 다이어리에 당신의 글을 쓰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않았소.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한 둘씩 자꾸 없어질 때 가끔은 당신들을 보낸다는 생각에 술이나 한 잔하고 싶지만 술 때문에 죽은 시간들로 보내기 싫어서 언제인가 저에게 이 다이어리를 준 것이 유일하게 남은 것이니. 나는 형의 공책에 지금 형의 글을 쓰고 있어요. 늙은 분, 젊은 분 할 것 없이 죽음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볼 때에 언제인가 나의 생활이, 아니 나의 아침이 나에게로 올런지. 그러나 무엇을 남겨 놓고 갈 수는 없어, 남길 건 남기고 남길 것이 없으면 형의 다이어리 한 권을 남에게 주어야지. 그리고 나에 대한 글들을 써 놓으라고….
형, 형이 나에게 말했었지. 예전에 중앙일보에 있을 때 돈을 엄청 벌었다며 그리고 책 겉표지 만드는 직업학교 컴퓨터 디자인과를 다녔었지. 그러나 밥은 잘 먹지 못하면서 막걸리로 밤을 새우며 컴퓨터에 매달렸지. 예전의 영광을, 그 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다시 만들겠다며.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꿈으로 끝내 버렸지. 병원에 몇 번을 입원하며 형의 뜻은 방향을 완전히 잃어버렸지. 지난날들의 영화는 하나도 못 찾고 그렇게 형은 떠나갔소.


잘 나고 못난 사람은 없어요
언제인가 술기운에 나에게 이러한 말을 하여 내가 아는 척도 하지 않은 적이 있었어. “쪽방에 산다고 다 같은 쪽방 생활자로 생각지 말라고.” 그런 꼴 보이기 싫으면 가정집을 얻어서 생활을 했으면 그러한 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겠지. 쪽방은 쪽방이고 잘 나고 못난 사람은 없어요. 단지 죽은 사람의 사체를 찾아가는지, 시체포기각서를 쓰고 돌아서는지가 문제인 것이요. 형은 정은 많았지만 자신을 가두어 놓고 산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전부 밑으로 보고 상대를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형의 생명줄을 빨리 끝냈지. 한 평 남짓한 쪽방에서 재주를 부리면 얼마나 부리겠소. 오늘도 밤 12시가 거의 다 돼서 한 사람이 우울증이 있는지 죽겠다며 자해를 한 것 같은데 그리고 경찰을 부르고 119 차가 왔었소. 주폭(주취폭력)을 없애겠다며 온 거리에 플랭카드와 인쇄물을 붙여 놓았소. 며칠을 다이어리를 펴 놓고 무엇을 적어야 할지 고민을 하였소. 이 다이어리에 글을 꽉 채우고 컴퓨터에 이야기를 적어 놓을 것이요. 형하고의 추억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제가 며칠씩 밥도 못 먹을 때 형이 편의점에서 사다준 죽은 잘 먹었습니다. 이제 형이 죽었으니 누구한테 죽을 얻어먹을 것인지 참 걱정이 되네요.


죽음은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나와 동광에 같이 있던 형제는 결핵에 걸렸는데 병원에 가기 전에 술을 엄청 많이 먹었습니다. 간이 많이 안 좋았으리란 걸 알면서도 서북병원에서는 독한 결핵약을 먹였습니다. 씻으러 갔다가 앞으로 넘어져 혹이 났다고 내가 병문안 갔을 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담당의사가 영양제를 3~4일 놔준다고 그랬답니다. 이 형제는 저보다 한 살이 더 많은 데 저보고 형이라 불렀습니다. 내가 자기가 어려운 일 당했을 때 도와줬다고. 내가 이 친구를 다시 병문안 갔을 때 죽었다고 했습니다. 병실에 가보았더니 침대에 사람이 없어 간호사에게 물어봤죠. 그래서 어떻게 죽었냐고 물었더니 신장이 나빠져 죽었답니다. 이것은 살인행위입니다. 폐병이 걸렸어도 간이 엄청 좋지 않은 형제에게 독한 결핵약을 먹여서 신장이 나빠져 죽은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죽여도 뒤 끗발이 없으니 따질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핏줄이 섞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리인도 아닌 내가 무어라 따지겠습니까.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독한 결핵약만 투여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고 투여하여 신장이 망가진 것입니다. 한 형제는 둘이서 방에 자다가 죽었습니다. 알코올성 간질이 있어서 계단에서 간질하면 머리가 깨지고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에서는 얼굴이 까지는 사람을 입원을 시켜서 고쳐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쪽방은 사각지대입니다
몰라서 못 고치고 찾아보는 사람 없어 병을 고치지 못합니다. 딸아이가 한 명 있는 형제는 우울증이 걸렸습니다. 자살을 했습니다. 그는 집수정에 머리를 담그고 죽어 있었습니다. 복수가 차 거리를 헤매다가 죽은 사람도 있고 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은 형제도 있습니다. 두 다리가 없이 쪽방 생활이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저도 요즘 목은 목대로 아프고 저녁이면 다리가 부어 양말 신은 위를 손으로 누르면 누른 데가 한참 있어야 솟아오릅니다. 저도 먹는 약이 많아 신장이 안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밤에는 잠을 못 자고 낮에는 환영이 와서 말을 걸어 잠을 못 잘 데가 많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짧다보니 담배는 거의 두 배를 피우는 것 같고 그러니 몸이 좋을 리 있겠습니까.


친구 잘 있는가
가끔은 자네가 생각이 나는데 무어라 전할 말들은 정리가 되지 않아서 나중에 이야기 하여줌세. 예전의 일이 생각나네. 자네 앞으로 승용차를 빼서 타고 다니는 놈 때문에 자네가 그 돈을 갚겠다며 노동일을 하며 다달이 얼마씩을 갚았었지. 그러나 가끔 술을 먹으면 몇 날을 마셔대는 자네의 술 문제가 걱정되었지. 내가 겨울에 자네의 방에 가기만 하면 같이 살자고 몇 번 말해도 나는 거절했지. 자네는 그러다 어느 여름에 앉아서 죽었지. 쪽방에서 자네의 뒷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네. 요즈음 그 곳은 어떤가? 내가 가끔 부탁하는 것을 주님께 말씀드리는가? 잘 부탁하네. 기갑이는 잘 있는가? 그리고 충열이와 상현이도 잘 있겠지. 자네가 모르는 친구도 있는데, 그곳에선 모르는 게 없겠지. 잘 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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