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2006-12-22 21:59:08] |
[2006 노숙인 추모제] 거리에서 죽어간 넋들을 기리며 [2006 노숙인 추모제] 거리에서 죽어간 넋들을 기리며 [프레시안 강이현/기자] 22일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팥죽을 먹는 즐거운 명절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추위가 더 깊어짐을 알리는 괴로운 신호이기도 하다. 특히 노숙인들에게 겨울은 '공포의 계절'로 다가온다. 얼어죽게 만들 수도 있는 추위는 노숙인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매년 400명에 가까운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사망하고 있다. 알아주는 사람 없이 죽어간 노숙인들을 위한 추모제가 동짓날을 맞아 열렸다.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는 2001년부터 해마다 동짓날 개최돼 올해로 여섯번 째를 맞았다. 노숙당사자모임,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햇살보금자리상담보호센터 등 11개 인권·복지단체가 공동으로 주관한 이 행사는 지난 9월 노숙인 사망사건이 일어났던 서울 영등포역에서 오후 1시부터 밤늦게까지 열렸다. "한계적 상황에서 죽음은 일상적인 사건이 됐다" 추모제 기획단측은 "노숙인 사망실태는 그들의 무권리 상태와 열악한 생활 실태를 반증하는 것"이라며 "빈약한 의료지원체계와 길거리라는 한계적 상황에서 노숙인들은 죽음을 일상적인 사건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운 겨울 거주공간의 부재는 노숙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서울역, 영등포역 주변 등에 집중돼 있는 '쪽방'. 한평 반도 채 안되는 이 쪽방은 노숙 생활을 청산하게 도와주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쪽방을 지속적으로 철거하는 추세다. 추모제 기획단측은 "얼마전 영등포2가에 있던 쪽방 50채가 철거됐고 2003년에는 서울역 인근의 쪽방 200채가 철거됐다"며 노숙인들의 주거권을 최소한으로 보장할 수 있는 쪽방 철거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서울시가 올해 초 자체 보유한 다가구매입임대주택을 '노숙인일자리갖기사업' 참여자들에게 제공하기로 했지만 최근 발표한 '동절기 노숙인 보호대책'에는 이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며 "서울시는 언론을 통해 공언한 임대주택 제공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노숙인들이 노숙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실업 문제도 겨울철에는 더욱 심각하다. 기획단측은 "대다수의 노숙인들(85%)은 구직활동을 하며 노동으로 노숙을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그러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005년부터 시작한 노숙인 일자리 사업은 참여자 중 만족하는 이가 23.7%에 지나지 않을 만큼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설문조사 결과, 사업을 중도에 그만둔 이유의 20.8%가 '노숙인이라는 낙인과 차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서울시 자체 조사에서도 참여 중단 사유 중 '노숙인 차별과 비인격적 언행'의 비율이 43%에 달했다. 기획단측은 "서울시는 내년에도 600명 규모로 사업을 이어간다고 했지만 사업의 질적 변화 없이 한 해 사업을 연장하는 것만으로 노동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 "서울시는 '프로젝트'라는 이벤트성 행정으로 노숙인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안정적인 노숙인 노동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숙인 인권 해결에 철도공사가 먼저 나서라" 기획단측은 노숙인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공공시설을 통해 노숙인, 가출청소년 등의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대책이 보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철도역사는 철도공사나 민간자본의 것이 아니라 철도 이용객을 비롯해 불가피하게 공공역사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노숙생활자, 가출청소년, 인근 쪽방 거주민 등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며 "영등포역, 서울역 등 대도시 공공역사에서 의료적·행정적 지원과 사회복지·공공서비스 지원이 가능한 'SOS 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철도이용객, 지역사회 주민 등 공공역사를 이용하는 이들 역시 언제든지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그러나 현재 공공역사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응급하게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이윤창출과 영리추구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이들은 △소액채무 탕감, 개인파산 지원 등으로 노숙인 금융피해 문제를 해결할 것 △24시간 밀착형 거리아웃리치제를 통해 노숙인에 대한 위기개입 기능을 강화하고 재활시설을 구축할 것 등을 요구했다.
"탄광노동자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슬픈 얼굴이 보인다" 이날 저녁 6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추모제에서는 한 해 동안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들의 영정을 모시고,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제의가 진행됐다. 추모 사자춤, 마임, 노래 공연 등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공연을 비롯해 추모사 및 동료 노숙인들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도 상영됐다. 한편 추모제 사전행사에서는 노숙인들의 실태를 알리는 캠페인뿐 아니라 노숙인들을 위한 행사도 함께 진행됐다. 한쪽에서 진행된 노숙인들을 위한 초상사진 촬영은 시작부터 노숙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이명하 사무차장은 "노숙인들은 자기 사진이 많이 없다"며 "이 정도 연세가 드신 분들은 대개 집에 하나씩 자기 사진을 걸어둘 텐데 그러지 못한 노숙인들을 위해 초상사진 촬영을 고안했다"고 밝혔다. 2년전부터 추모제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진작가는 "노숙인들의 사진을 다른 사진들과 비교해보면 슬퍼 보인다"며 "마치 탄광노동자들의 사진을 보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활짝 웃으시라고 권한다"며 "그런데 아무리 웃어도 웃는 느낌이 나지 않고 억지로 웃는 느낌이더라"고 덧붙였다.
강이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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