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세계의 홈리스]는 미국, 유럽 등 세계의 홈리스 소식을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여 시사점을 찾아보는 꼭지

 

주거권 뒤흔드는

미국의 ‘노숙금지법’

우익 포퓰리즘 세력의 공세 속에
전역으로 확산…“생존이 곧 중범죄”

 

<안형진 / 홈리스뉴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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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노숙을 중범죄로 처벌하는 미국 최초의 주(州)인 테네시에서 살고 있는 거리홈리스 타네샤 그린. 그녀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존이 곧 중범죄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지난 5년간 평균 임대료가 40% 넘게 상승한 이곳(테네시주 네슈빌)에서 홈리스가 안전하게 머물 공간은 이제 없다. 

<사진=CNN, 2022년 8월 9일자>

 

거리노숙을 범죄로 간주하여 처벌하는 이른바 ‘노숙금지법’(anti-homeless law)이 미국 전역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미 텍사스, 테네시, 미주리를 비롯한 여러 주(州)가 노숙금지법을 시행 중인 가운데 최소 5곳 이상의 주에서 현재 입법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전체에 효력을 갖는 주법(州法)으로 제정ㆍ시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정부 차원의 조례에 머물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태를 보이고 있다. 법체계상의 위상만 다른 것이 아니다. 홈리스를 단속할 목적으로 제정된 시정부의 여러 조례들이 내용상의 통일성 없이 산발적으로 난립했던 것과는 달리, 현재 각 주에서 시행ㆍ검토 중인 법안들은 마치 하나의 모델을 따르는 것처럼 놀라운 수준의 유사성을 띄고 있다. 입법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이런 체계적ㆍ조직적인 움직임엔 진앙지가 있기 마련이다. 텍사스 주 오스틴 시에 위치한 극우 성향의 싱크탱크, ‘시세로 연구소’(Cicero Institute)가 바로 그곳이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의 이름을 본 딴 시세로 연구소는 억만장자 기업가이자 투자자 조 론스데일이 2016년에 설립한 사설 연구기관이다. 기업가정신과 시장주의를 핵심 가치로 삼아 “망가진 공공 시스템”을 복원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진 이 연구소가 홈리스 정책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19년, 미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가 캘리포니아주의 홈리스 문제를 언급한 직후부터다. 당시 본격적인 재선 행보에 나선 트럼프는 “우리의 아름다운 캘리포니아주에 홈리스가 산다는 건 치욕스런 일”이라며 캘리포니아에서 홈리스를 “쓸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들은 트럼프의 이 발언이 야당(미국 민주당)의 텃밭 캘리포니아의 ‘아픈 곳’을 지적함으로써 민주당의 무능함을 부각시키려는 선거 전략이라 평했는데, 실제 이때를 기점으로 미국의 홈리스 정책은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하게 된다. 근 20여 년 동안 연방정부가 꾸준히 추진해 왔던 ‘주거우선’(housing first) 전략이 진영논리에 휩싸이며 포퓰리즘 우파 세력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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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세로 연구소의 설립자 조 론스데일(Joe Lonsdale). 론스데일은 최근 한 보수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거리노숙을 비(非)범죄화하는 법안을 검토 중인 오레곤 주의회를 맹비난하며 이를 "자본주의가 홈리스를 양산한다고 보는 빨갱이스러운 사고(Marxist idea)"라고 표현했다. 그는 민영 교도소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한 벤쳐캐피탈 회사 8VC의 핵심 관계자이기도 하다.  <사진=8VC 홈페이지>

 

적정 주거의 제공을 홈리스 지원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주거우선 전략은 꽤 오랜 기간 동안 미국 홈리스 정책의 핵심 기조였고, 약간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초당파적인 성격을 지닌 정책 프로그램으로 평가받았다. 애초 연방 차원에서 주거우선 전략을 처음 추진했던 정권이 다름 아닌 조지 부시(W Bush) 공화당 행정부(2001~2009)였고,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2009~2017)에서도 이는 흔들림 없이 계속되었다. 성과 또한 적지 않았다. 2007년에서 2016년까지 미국의 홈리스 규모는 꾸준히 감소했다(647,258명→549,928명). 비록 주택 자원의 부족으로 ‘노숙 종식’이라는 목표에는 크게 미달했으나 주거우선 전략은 특히 만성 홈리스에게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고, 이용자들의 주거유지율은 85%에 달했다. 

 

인구 추이.jpg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홈리스 규모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전체적으로는 증가 폭이 크지 않았지만 가시성이 높은 지역인 캘리포니아주와 뉴욕시 등지에서 홈리스 인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이는 상술한 트럼프의 발언 직후부터 본격화한 ‘주거우선 무용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주거우선 전략은 이제 폭스뉴스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납세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고비용-저효율’ 프로그램이자 ‘진보 기득권 세력의 실패작’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성공한 보수언론은 약물남용에 시달리는 홈리스, 정신질환을 가진 홈리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곧이어 주거우선 프로그램은 이용자에게 절주나 치료를 강제하지 않기에 대다수 홈리스에겐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시세로 연구소는 우익 포퓰리즘 세력이 일으킨 이 전쟁의 지휘관이자 선봉장이었다. 시세로 연구소는 시종일관 주거우선 전략의 폐기와 국공유지 내 노숙금지 조치를 요구하며 홈리스 정책을 단기ㆍ임시 지원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범위한 로비와 언론을 동원한 논리 설파에 주력했던 시세로 연구소의 활동은 곧 결실을 거뒀다. 2021년 보수세가 강한 텍사스주에서 처음으로 시세로 측의 주장을 충실히 담은 노숙금지법을 채택한 것이다. 첫 번째 입법에 성공한 시세로 연구소는 이를 바탕으로 훗날 ‘시세로 모델’이라고 불리는 예시 입법안(연구소가 붙인 정식 명칭은 ‘거리홈리스 감소법’이다)을 만들어 공개했는데, 그 내용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주(州) 전역의 공유지 내 야영 및 노숙 금지

◉ 홈리스를 주정부가 설립ㆍ운영하는 대피소에 단기 수용

◉ 이 법에 반하는 조치(비범죄화 등)를 취하는 하급 지자체는 법적 제재

◉ 홈리스 인구가 증가한 지자체에 대한 재정지원 삭감

◉ 임대주택 건설에 사용해 왔던 국가 기금을 약물남용ㆍ정신질환 치료 및 임시ㆍ단기 지원에 사용

◉ 정신질환 치료 절차의 기준 완화 – 강제성 강화

 

이 같은 시세로 모델을 채택한 두 번째 주는 테네시였다. 테네시의 법안은 시세로가 제안한 원안보다 훨씬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최초로 거리노숙을 ‘중범죄’로 분류해 적발 시 최대 6년의 징역과 3,000달러(약 385만원)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 것이다. 이어 미주리주가 시세로 모델을 받아들여(2022. 6. 법안통과) 올해 1월부터 시행에 나섰고, 그 외 애리조나, 조지아, 오클라호마, 위스콘신 등지에서도 시세로 모델에 입각한 법안이 제출되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승부의 추는 확실히 기울고 있다. 이제 미국에서 주거우선 전략이 보편적인 지지를 받는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홈리스에게 ‘집’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의심받기 시작했고, 열악한 의료보장체계, 가파르게 상승하는 물가와 임대료, 낮은 임금수준 등의 지표들은 노숙의 원인을 논하는 자리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물론 조직된 저항이 곳곳에서 일고는 있지만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한 채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현지 한 활동가의 다소 군사주의적인 표현을 빌자면, 주거권 진영은 몇몇 전투에서 이겼을 뿐 전쟁에선 분명히 패하고 있다. 밝은 전망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말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기나긴 ‘주거권 퇴행기’의 시작점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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