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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은 초보 활동가의 반빈곤 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을 담은 꼭지

  

할아버지는 자꾸 내게 용돈을 쥐어주려 한다

지역사회에서, 길 위에서, 밀려나지 않고 함께 살아내기 위한 ‘나의 노동’

 

<민푸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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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필자 제공>

 

거구의 할아버지를 수동휠체어로 창신동에서 국립중앙의료원까지 밀고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게 할아버지한테 용돈 받을 일은 절대 아니다. 이건 내게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이게 나의 노동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운가 보다. 할아버지는 항상 병원 순회를 마치고 창신동 방에 돌아오면 빳빳한 신권 만원짜리 다섯 장을 건넨다. ‘(일하다 나와서 괜한) 고생했으니 가져가’ 레퍼토리도 잊지 않는다. 근데 이런 일은 비단 할아버지와의 관계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일하다가 피곤하면 종종 와서 몸 좀 지지고 가’, ‘기왕 땡땡이치는 거 더 있다가 뭐 좀 입에 밀어 넣고 가’, ‘이렇게 나와 있으면 사무실에서는 연락 안 와?’라는 말을 다른 주민분들께도 수없이 듣는다.

 

처음에는 내가 그럴싸한 사회복지사처럼 생기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방점은 내가 아니라 그들 자신에 있었다. 어느 날 주민분은 ‘반 칸 쪽방에 마주앉아 없는 사람 얘기 들어주는 게 어떻게 일이냐’고 물으셔서, 나는 왜 일이 될 수 없냐고 되물었다. 왜냐니, 당연하지, 으레 노동다운 노동은 누군가의 곁이 아니라 사무실 똑똑한 콤퓨타 앞에서 이뤄지곤 하니까, 나는 뭐 앓는 소리만 하지 영양가 있는 얘기를 하지 않으니 얻어가는게 없으니까, 얻어가는 게 없는 사람을 계속 찾아다니는 건 노동다운 노동이 될 수 없으니까. 주민분들은 노동다운 노동을 할 수 없다고 판명된 장애당사자 혹은 수급자니, 그들 자신과 내가 딱히 노동의 관계로 묶일 수가 없다고 생각하셨던 거다. 그리고 노동다운 노동에서 밀려난 노동들의 이야기는 창신동 밖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서울시는 2020년부터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시행하고 있다. 이 일자리에는 ‘가장 노동능력이 없다’고 평가받는 최중증장애인이 가장 먼저 고용된다. 그리고 이들의 장애 특성을 고려한 3대 직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 중 하나가 권익옹호활동이다. 권익옹호활동에는 기자회견, 집회·시위, 거리 캠페인 등이 포함된다. 최중증장애인들이 거리에서, 광장에서 그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 그들이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임을 선언하는 것, 이 지역사회를 장애 당사자가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권익옹호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오세훈의 서울시는 더 이상 이를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권익옹호활동을 서비스업 보조(체육시설 보조, 병원·검진센터 보조, 도서관 사서 보조)로 변경하였다. 심지어 다른 직무에 대해서도 2인 이상 외부활동 금지 원칙을 내걸었다. 떼를 지어 밖에서 활동하지 말고 사무실 안에 조용히 있으라는 거다.

 

감옥 같은 시설에 살다 세상 밖으로 나온 장애 당사자들이 왜 길 위로 나오겠는가. 사무실 에어컨의 시원함을 몰라서? 폭우에 전동휠체어 배터리가 방전될까 하는 긴장감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럴리가 있나.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곁이 없던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것, 그로써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 이 도시의 당연했던 풍경에 균열을 내는 것, 그로써 이 도시가 가려왔던 폭력을 고발하는 것. 반복되는 현재를 멈춰세우는 것, 그로써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고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은 사무실 네 벽 안에서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길 위에서, 사람 곁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야만 하는 노동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창신동에서, 서울시청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외친다. 이것도 노동이라고, 아니 이것이 노동이라고. 이것이 노동일 수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노동일 수 없다고. 누가 감히 길 위에서의 노동을, 사람 곁에서의 노동을 무시할 수 있냐고. 길 위, 개개인 곁에서의 노동을 누가 감히 가로막고 시멘트 벽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느냐고. 이것이 지역사회에서 시설로 다시 존재들을 밀어 넣으려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당신들은 아느냐고. 우리 시설로도, 시멘트 네 벽 사무실 안으로도 어디로도 밀려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길 위에서, 그로써 서로의 곁에서 함께 노동하며 살아가야하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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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필자 제공>

 

분에 겨워 글을 쓰는데 할아버지한테 전화가 온다. 할아버지는 배가 고프고 아프다고 하고, 나는 주말에 베지밀을 들고 찾아뵙겠다고 했으며, 우리는 할아버지의 쪽방에 가로 앉아 티비로 야구를 보며 결국 아무것도 먹지는 못하고 얘기나 나눌 것이다. 이것도 노동이다. 이것이 노동이다. 길 위에서, 쪽방에서 만나자. 여보세요, 할아버지? 안 바빠, 식사는 또 못하셨지? 주말에 갈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안 미안해, 주말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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