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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反)빈곤’ 세상으로 나아가는 연대를 위하여

2023 반빈곤연대활동 후기
 

<지원 / 아랫마을홈리스야학 교사>

  

나는 아직도 ‘집’에 대한 감각을 모른다.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새는 바람에 곰팡이가 무럭무럭 피던 방, 집에 딸린 화장실이 없어 직접 화장실을 만들어야 했던 집, 집주인이 와서 깽판을 쳐도 가족 중 누구도 그만하라고 말할 수 없었던 시간, 거실 한구석 칸막이 친 곳에 누워 7명과 함께 살아야 했던 ‘닭장’ 셰어 하우스 등은 나의 삶 속에서 ‘집’스러운, 그러나 결코 ‘집’이 될 수 없는 무언가였다. 대학교 입학 이후부터 서울살이를 시작했고 빼곡히 솟아오른 건물들과 덩달아 높은 물가 사이에서 몇백만 원 보증금이 필요한 월세방이나 대학교 기숙사 생활은 불가능이었다. 비용 충당이 가능한 방 하나에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새벽마다 길거리로 나가 무작정 서울 거리를 걸었다. 어떤 때는 길이 집보다 편했다. 확실한 건 ‘길’도 ‘방’도 나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3년째 계속 활동해오는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교사회 단체 텔레그램 방에 ‘2023 반빈곤연대활동(이하 빈활)’ 홍보 이미지와 신청 폼이 올라왔다. 빈활에 드디어 참여할 수 있겠다 싶어 설렜으면서도, 과거 내가 살던 동네에 특정 시기마다 우르르 나타났다가 사라지던 청년 무리들이 떠올라 신청을 망설였다. 유년의 내게 그들은 내 삶을 구경하고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척’하는 이방인이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내가 살았던 동네에 연대 활동을 다녀오겠다는 대학 친구들로부터 서울의 건물만큼이나 장벽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빈활을 신청했다. 왜냐? 우선 빈활 티셔츠를 갖고 싶다는 욕망에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과거의 경험 어쩌고 등등을 무마시킬 정도로 빈활 티셔츠는 아름다웠다. 두 번째로는, 분노와 결핍만으로 투쟁과 연대가 가능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더욱 깊은 연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리라 스스로를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빈활에 가서 다양한 경험과 생각(그리고 빈활 티셔츠)을 얻어오고 싶다는 마음으로 신청 폼을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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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빈활은 용산 다크투어로 시작했다. 용산역 구름다리와 용산정비창을 지나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며 공공의 땅이 민간화가 되는 과정에서의 허점과 위험성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후 빈활 기획단 중 하나인 ‘홈리스행동’이 있는 아랫마을을 방문하여 식사하고, 빈활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 뒤 소사 마을로 향했다.

 

 소사3구역은 동네를 가꿔 온 주민들의 온기 대신 텅 빈 집들이 남아있었다. 금지 구역을 제한하는 것처럼 기다란 천들이 집 앞에 둘리어 있었고 강제집행을 예고하는 계고장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소사3구역은 재개발사업 중 하나인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재개발이 추진되는 중인데, 현행 법제도상 2008년 이전부터 거주한 세입자만이 대책 대상이 되어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대책과 보상에서 배제되어 쫓겨났다. 부천시청은 소사3구역 주민들과 어떠한 협의체 없이 철거 전 마지막 인허가단계까지 허가하였고 상가세입자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적은 금액의 보상만을 책정하였다. 소사 철거대책위원회(이하 철대위)분들께서 직접 소사3구역을 소개해주시며 현재는 명도소송 판결 선고를 받아 강제철거만이 남은 상황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다들 어떤 심정이실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끝까지 맞서 싸우시려는 철대위 동지들1)의 굳은 마음이 느껴졌다. 이후 빈활단을 위해 장소를 제공해주신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평등 약속문을 낭독하고, ‘우리가 바꾼다’, ‘동지가’, ‘바위처럼’과 같은 투쟁가를 함께 불러보았다. 이어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주거 불평등과 도시 개발 역사를 훑고, 모든 사람들이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부동산 상품으로서의 집이 아닌 ‘주거권’을 요구해야 한다는 강연으로 빈활 첫째 날을 마무리했다. 

 

둘째 날은 소사3구역 철대위 동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였다. 10년 동안 소사에서 장사를 해오며 만난 단골손님들이 재개발 이후 식당에 밥을 먹으러 오는 대신 철대위 투쟁에 응원을 건네주신다거나, 함께 하는 이들이 있기에 끝까지 싸워 승리 소식을 전하겠다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이후 동자동으로 이동하여 동자동 쪽방촌과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동자동 쪽방촌은 오래전부터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었으나 토지·건물주들의 이해관계와 제도 문제로 시간이 흘러 건물들도 노후 되어 갔다. 2021년 2월 5일 정부는 쪽방 주민들은 2026년 1월 완공 후 입주하게 된다는 내용의 「서울역 쪽방촌 정비방안」이라는 공공개발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공공개발이 발표되자 토지·건물주들은 강력한 공공개발 반대와 민간개발을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서울시와 국토부는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보다 토지·건물주들의 반발을 신경 쓰느라 결국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발표 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동자동 쪽방 주민 대부분은 1인 가구로 1.5평의 방에 거주하며, 개인 위생과 관련된 시설을 십여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노후되고 불편한 생활을 감수해야 하는 쪽방 건물은 동자동 쪽방촌에 67개가 존재하지만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는 건물은 단 한 곳도 없는 현실을 강연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후 동자동 주민간담회를 진행하였고 쪽방촌 마을을 방문하여 다 같이 청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사로 돌아온 뒤에는 재개발을 다룬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파크테일 이야기>와 <아현포차>를 시청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빈활의 마지막 날은 모든 빈활 참여자들이 둘러앉아 ‘좋은 개발’은 무엇인지, ‘연대’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시작했다. 빈활 내내 보고 느낀 것들을 서로에게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종합 토론 후에는 원래 집회를 기획할 예정이었으나, 기상 악화로 인해 부천시청에 가서 재개발 관련 항의 민원을 넣는 행동을 진행하였다. 각자 만든 피켓을 우산 삼아 항의 행동을 하고 돌아와보니 소사 마을에서는 해단식을 위해 잔치를 준비하고 계셨다. 해단식을 위해 각 조에서 열심히 몸짓과 연대 발언을 준비하거나 투쟁하는 동지들을 위한 시를 써서 낭송하기도 하였다. 또 재개발 구역으로서가 아니라 사람 사는 동네로서 그린 소사 마을 그림, 빈활 동안 만난 동지들의 독백으로 구성된 연극을 보며 몇 사람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해단식 중간중간 열심히 준비해주신 음식을 먹으며 홈리스야학 학생회장 림보님, 소사철대위 동지, 전철연 동지의 발언을 들었다. 해단식은 빈활을 통해 한 가닥 이상 연결되어버린 사람들이 함께 벌이는 잔치였다. 우리들의 잔치로 2023 빈활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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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중인 빈활 참여자들. 오른쪽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 필자이다.  <사진=필자 제공>

 

 빈활을 다녀오고 며칠 동안 계속해서 몇 가지 고민이 (즐거웠던 기억들과 함께) 내게 머물렀다. 연대는 무엇일까. ‘집’에 대한 감각이 비어있는 곳에 경계심과 분노를 채워두었던 과거 나의 결핍으로부터 난 지금까지 무엇을 채워두었는가. 각기 다른 존재들끼리 서로 맞닿는 현장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타자화와 침범, 관계 맺기 속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아직도 유효한 고민이지만, 우리가 얼마나 '빈곤'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거나 '빈곤' 현장을 방문하고 당사자들을 만나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반(反)빈곤’ 세상은 어떤 곳인지, 우리의 공동체가 어떻게 ‘반(反)빈곤’할 것인지, ‘반(反)빈곤’을 위해 수많은 존재들2)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마음껏 상상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지만 모두의 해방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빈활이 끝나고 꽤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정리가 된다.

 

 빈활은 빈활에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각자의 질문과 대답을 만들어주었을 테다. ‘반(反)빈곤’ 세상, ‘뺏지도, 빼앗기지도 않는 평등한 땅’을 위한 '반빈곤연대활동'이 앞으로도 계속 힘차게 유지되면 좋겠다. 빈활 기간 동안 준비해주신 맛난 비건 식사, 해단식 때 푸짐하게 차려주신 잔칫상, 투쟁하는 동지를 위해 써 내려간 시와 같은 애정, 그리고 연대에 대한 고민과 마음을 가득 안고서 말이다. 

 


  1. 현재 소사3구역에는 상가와 거주자를 포함하여 40여 세대가 남아있고, 그중 7명의 철거민대책위원회를 이루고 투쟁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2. 빈곤해방의 대상은 인간 동물을 포함한 수많은 존재이다. 좁은 땅만이 허락되어 오염된 공기와 쓰레기에 노출되는 가로수, 인간의 개발 논리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거나 기후 위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야생 동물, 좁은 철장 속에 갇힌 채로 강간당하며 상품화되는 여성 동물 등, ‘반(反)빈곤’세상은 모든 존재를 위한 세상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인간 동물뿐만 아니라 수많은 존재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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