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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00
2023.06.21 (13:48:24)

[똑똑똑]은 초보 활동가의 반빈곤 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을 담은 꼭지

 

 

건실한 사회복지사 되기

다른 이의 시선을 받아 넘기는 일

 

<민푸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7면.jpeg

▲ 창신동 주민들의 자조모임. <사진=필자 제공>

 

내겐 실패하지 않는 농담이 있다. 대항로에서 차려입은 활동가를 만났을 때, ‘오늘 되게 건실한 사회복지사 같네?’하고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그러면 깔깔 웃으며 그날의 토론회 일정이며, 공무원과의 면담 일정이며 하는 것들을 읊는다. 생각해보면 이 농담이 먹히는 것은 조금 이상하다. 대항로 건물의 많은 활동가가 이미 사회복지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활동가가 건실하게 활동을 이어간다. 단지 이들이 편한 옷에 투쟁 조끼를 일상복으로 입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옷이 뭐가 중요한데요?

예컨대 이런 것들. 내가 처음 창신동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쪽방상담소의 한 사회복지사가 나에게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반팔, 반바지는 안 입는 게 좋아요, 푸름씨.’라고 이야기했다. 요는 사회복지사의 신뢰를 깎아내리는 복장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주민을 클라이언트라고 부르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매일 만나는 당사자 형이나 언니들을 클라이언트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우리는 매일같이 당사자들이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라고 말하는데, 세상에 ‘클라이언트’라니. 서비스의 대상이라는 말을 영어로 그럴듯하게 클라이언트라고 바꾸면 괜찮다는 말인가 싶은 생각에 불끈했던 기억이 난다.

사회복지사의 신뢰라는 말도 그렇다. 사회복지사의 신뢰는 어떻게 생기는가. 그의 권위를 증명해줄 복장에서 생기는가. 그 전에, 사회복지사는 권위를 증명하여 그 권위를 바탕으로 상대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왜 사회복지사는 만만해 보이면 안 되는가. 문턱이 낮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후 긴 시간을 함께 보내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함께 할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내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겨우 복장으로 만들어지는 신뢰는 얼마나 얄팍한가. 그때부터 내게 ‘건실한 사회복지사 되기’는 농담이 되었다. 건실한 사회복지사의 눈에 나 같은 사회복지사는 진지하지 않게 보인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얼굴에는 나사, 몸에는 문신

그러다 최근, 이 ‘건실한 사회복지사 되기’가 나에게 농담거리가 아니게 된 사건이 있었다. 창신동에서 조력을 하던 한 당사자분이 나와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두절한 것이다. 내가 큰 실수나 잘못을 했나? 당사자와 친분이 있는 활동가를 통해 겨우 연락이 닿았다.

 

그는 나의 지원이 이제는 싫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 이유로 ‘몸에 문신 많고, 얼굴에 나사 박은’ 게 싫다고 했다. 참고로 얼굴의 나사는 내가 얼굴에 한 피어싱 세 개를 뜻한다. 나와 다른 활동가는 헛헛함과 당혹감이 섞인 소리 없는 웃음을 마주 보고 내뿜었다. 우선 센터로부터의 지원 일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니 대체할 조력자를 찾는 것으로 당사자와 타협점을 찾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우리는 센터를 둘러보며 활동가들 면면을 그 어느 때보다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저이는 너무 중증 장애라 안 되지?’, ‘저이는 중증에 문신까지 있어서 더 안 돼’, ‘저이는 탈색모라 안 될 거야’, ‘하, 저이는 너무 투쟁 반팔만 입고 다녀’, 이런 말들을 읊조리고 있는데, 누군가 유레카를 외치듯 말했다. ‘푸름 피어싱은 탈부착 안되나? 그분 조력할 때만 피어싱을 빼고 긴 옷으로 문신을 가리는 거야, 어때!’ 나는 그냥 이 모든 상황에 웃음이 나서 크게 소리쳤다. ‘어떻게 이 집단엔 제대로 된 건실한 사회복지사가 이렇게도 없을 수가 있어!’

 

나도 그 마음 뭔지 아니까

나의 사려 깊은 동료 활동가들은 당사자의 말을 듣고 상처받았을 나를 염려했다. 그런데 나는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 나는 이해가 갔다. 마을 밖을 나가면 사람들은 그에게 일상적인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던질 것이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그 시선만으로도 버거운데, 동행인에게까지 가해지는 시선의 무게까지 감당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젊은 여성이 자신 나이보다 많아 보이는 개수의 문신을 드러내고 돌아다니면 얼마나 서늘하고 무거운 시선들을 감당해야 하는지 아는가. 나 또한 그 시선의 무게를 알기 때문에 그를 이해했던 것 같다.

 

나를 염려하던 활동가들이 ‘얼굴에 나사 박힌 애? 푸름, 프랑켄슈타인이야?’ 하면서 깔깔 웃었다. 이렇게 건실한 프랑켄슈타인이 어딨나. 나 활동가 월급으로 재가 강아지 안 만들려고 우리 거봉이 강아지 유치원까지 보내는데. 내가 비록 건실한 사회복지사는 못 돼도 건실한 집사는 된다고, 그 정도 책임감은 있다고 다음 주에 당사자 분께 어필이나 해 봐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혹시 또 농담처럼 먹힐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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