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싱턴 복지권 연합은 빈곤층의 경제적 인권 보장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수백 개의 풀뿌리 조직들과 지역단체, 사회단체의 네트워크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인종을 넘어 광범위한 반빈곤운동의 기반을 조직하는데 헌신해왔습니다. 이러한 전국적인 네트워크의 중요성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빈곤이 과거의 빈곤과 다르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기술적인 변화와 그로 인한 탈산업화, 구조적인 실업으로 홈리스상태와 빈곤은 더욱더 영구적이고 지속적인 상태로 변했으며, 이른바 중산층을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들까지 고통 받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전국적인 자유 버스 투어(한국의 희망 버스와 유사한 활동)와 같은 캠페인을 조직하면서 만난 농부들은 대대로 캔사스 지역에서 살아왔는데, 그들은 땅을 잃어버리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삶의 터전에서 떨어져 나오게 되면서 혼란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전국에 걸쳐 켄싱턴과 같은 상황에 처한 지역과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가난한 이들의 리더십의 발전이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어떻게 다양한 힘과 에너지를 강력한 방식으로 모을 수 있을까요?
저의 경험과 연구를 통해 배운 것은 가난한 대중을 위해서 미국 내 여론에 주요한 정치적・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대중들은 인종을 가로질러 사회세력으로 조직화되고 단결했습니다. 단결을 이루기 위해 지도자들은 협력과 훈련의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사상가 그람시는 이러한 단결된 지도자들을 유기적 지식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가난한 대중들이 더 깊게 공감하고 더 멀리 보기 위해서, 결과적으로 더 큰 대중으로 통합되기 위한 과정에서 가난한 대중들로부터 지도자들이 출현했습니다. 이것은 가난한 대중들의 조직화 과정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단결과 통합이라는 부분은 교육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에 대해 성찰하면서 배우는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를 알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던 것들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거칠게 대략적으로 그린 그림보다는 상황의 특이성 및 복잡성에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개발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당신이 큰 그림만을 그리고자 한다면, 당신은 구체적인 투쟁에서 차이를 만들어내는 미묘한 무언가를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대중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하고 상황을 바꿀 책임이 있습니다.
▲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년 ~ 19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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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이 가난한 이들의 투쟁에서 지성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는 일상적인 실천들을 반영하는 것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지적 풍경을 살펴본다면 학계의 사회이론 전반에 걸쳐 현실 문제와는 유리되는 비생산적인 양극화 경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양극화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구조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서 우리는 학계의 지적인 도구를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분석과 행위를 안내하고 일반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경험과 고민을 알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실제 현실로 다시 돌아가야만 합니다. 우리에게는 실용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관점, 즉 반이론적인 접근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냥 해보자’고 말하며 문제를 반성하거나 되돌아보는, 다시 말해 해결책을 읽어내는 과정을 ‘뒷걸음질 치는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반(反)지성주의(지식과 지성 혹은 지식인 일반에 대해 적대적 태도와 불신을 보이는 것)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