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인’과 ‘노숙인’의 차이를 아시나요? | |||||
입력: 2007년 11월 09일 15:08:54 | |||||
거리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은 노숙인일까, 부랑인일까. 노숙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기준이 지나치게 자의적이어서 노숙인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령 ‘부랑인 및 노숙인 보호시설 설치 운영규칙’에 따르면, 노숙인은 일정한 주거 없이 상당한 기간동안 거리에서 생활한 사람이지만 부랑인은 일정한 주거와 ‘생업수단 없이’ 상당한 기간동안 거리에서 생활한 경우를 일컫는다. 생업수단이 있고 없고에 따라 노숙인과 부랑인으로 나뉘는 것이다. 또 2005년 지방분권 정책에 따라 부랑인은 보건복지부에서, 노숙인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도록 해 비효율적인 노숙인 정책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울시는 지난 9월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노숙인을 ‘일반노숙형’과 ‘부랑형’으로 나눌 것을 관할 4개 상담보호센터에 지시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세부구별 기준’에 따르면 부랑인은 ▲위생상태가 불량하고 ▲취침장소가 일정하지 않고 ▲전염병 또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일자리가 주어져도 일할 의지가 없는 경우다. 그에 반해 노숙인은 위생상태가 양호하고 일정한 곳에서 잠을 자며 정기적으로 일을 하거나 일할 의욕을 가진 사람들이다. -위생·건강상태 심각하면 ‘부랑인’, 양호하면 ‘노숙인’?- 그러나 전문가들과 노숙인들은 “부랑인과 노숙인을 구분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노숙당사자모임 한울타리회’ 김우정 총무는 “거리 생활을 하다보면 위생상태와 건강이 안 좋아지고 삶의 의욕도 사라진다”며 “영등포역에 있다가 무료급식소를 찾아 서울역으로 옮기면 노숙인이 부랑인이 되는 것이냐”고 꼬집었다.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의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부랑인 시설은 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 노인 등을 대상으로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노숙인 쉼터에서는 일터 등 사회복귀를 위한 자활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그런데 노숙인 시설과 부랑인 시설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부랑형과 일반 노숙형을 구분한 의도는 행정편의와 예산부담 등 때문일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랑인은 노숙인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대신 사회복귀가 더뎌 업무성과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사람을 놓고 부랑인이냐, 노숙인이냐를 나누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상담보호센터에서 부랑인 시설로 입소시키느냐, 노숙인 쉼터로 입소시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와 관련해 한 노숙인 거리상담원은 “현재의 복지 시스템은 대상의 특성에 따른 것이 아닌 데다 지자체의 재정상태에 따라 서비스의 질도 천차만별”이라며 “노숙인과 부랑인으로 이분법화 할 게 아니라 여성과 장애인, 단기·만성형 등 유형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남기철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외국에서는 ‘홈리스’로 통칭한다”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용어와 정책을 통합해 노숙인들의 요구에 맞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희 경향닷컴기자 mong2@kha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