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조회 수 : 1468
2013.12.27 (17:11:41)

[특집]

 

육교는 철거해도 홈리스는 철거할 수 없다

 

<홈리스뉴스, 편집부>

 

1p.jpg 10월의 마지막 밤
서울역 인도육교 폐쇄 전날인 10월 31일 밤, 인도육교를 찾아갔다. 여느 때 같으면 10여 명의 거리 홈리스들이 비닐과 천막 조각들로 바람막이를 만들어 잠을 자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이런 풍경이 사라진 지도 벌써 만으로 2년이나 지났다. 중구청이 지속적으로 홈리스들의 거처를 철거해 왔기 때문이다. 그 후로 얼굴이 매번 바뀌긴 했지만 이곳의 노숙인원은 열 명 남짓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날 밤엔 고작 세 명 밖에 없었다. 줄곧 광장에서 노숙하던 박씨는 무슨 심사인지 육교에 터를 잡았다. 철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생각해야 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결국 육교에 계신 다른 거리홈리스 한 분과 푸념을 나눴다. 당초에는 그곳에서 노숙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으나 인원이 워낙 적어 포기했다. 대신 난간마다 띄엄띄엄 적힌 낙서들을 찍기로 했다. 홈리스들의 거처가 사라진다는 냉혹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짓을 10월의 마지막 밤에 하고 말았다.

 

폐쇄된 구름다리
11월 1일, 서울역 舊 역사(문화역서울 284)와 서부역을 연결하는 서울역 인도육교(별칭, 구름다리)가 폐쇄되었다. 철거 시행사인 한국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는 철거 이유로 “철도이용객 통로로서의 목적을 다 하였고”, “건설 후 36년이 경과하여 교량슬래브 및 난간이 노후 훼손되어 열차안전운행에 지장”이 되며, “(노숙인으로 인한) 지역주민의 지속적인 민원”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그동안 관할 지자체 주민의 이동통로로 사용하기 위하여 인수 및 유지관리 업무를 협의하였으나, 지자체의 인수 의향이 없”었다고도 하였다. 서울지역본부 시설팀과의 통화에서도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중구청에 대해 인도육교에 거리 홈리스들이 많이 밀집해 있고 그에 따른 민원도 있으니 이를 무상 인수하여 개보수해 이용할 것을 요청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중구청은 이를 거절하였고, 구조안전의 문제가 심각해 진 인도육교는 36년의 역사를 끝으로 철거에 직면해 있다. 철도공사의 계획에 따르면, 11월 1일 인도육교 통행 폐쇄 후 4개 월 간의 공기를 거쳐 철거가 완료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거리홈리스가 많은 중구청, 1년 8개월 동안 고작 1명 지원에 그쳐
철도공사와 중구청 등은 인도육교 철거에 앞서 지난 8월 23일 ‘지역주민 설명회’를 거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인도육교를 버팀목 삼아 고단한 노숙생활을 이어가는 거리홈리스들에게는 어떠한 설명이나 의견수렴도 없었다. 오히려 중구청은 “중구는 다른 지역보다 홈리스 배회가 많”다며 홈리스의 존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육교에서 거주하던 홈리스에게 강압적으로 시설에 입소시키는 행위 등 노숙인들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 이동조치를 금”했다며 마치 이것이 홈리스에 대한 배려이거나 철거에 따른 후속대책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중구청은 “이동의 간접계도인 노숙에 필요한 집기수거”를 했다고 한다. 인도육교 위 홈리스들을 끌어다 시설에 넣는 것은 반인권적이고, 생활도구들을 빼앗아 노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인권친화적이란 말인가?

인도육교는 그 사용연한을 다하여 철거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을 의탁하여 삶을 이어왔던 거리홈리스들의 생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며, 지자체는 이들이 더욱 건강하게 생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울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인도육교라는 노숙의 터전이 사라짐에 따라 홈리스들도 같이 철거되는, 현대판 순장(殉葬)과도 같은 행태가 일어나고 있으며, 중구청은 이를 방관하고 있다.

 

우리는 ‘인도 육교 철거에 따른 해당 시설물 거주 홈리스에 대한 대책’과 이를 위한 논의제안 수용 의지’를 중구청에 물은 바 있다. 그러나 중구청은 노숙인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동문서답만을 해 왔을 뿐이다. 인도육교에 살고 있었던 이들에게 긴급복지지원이나, 임시주거지원을 실시해 그곳에 살던 홈리스들이 더 나은 거처로 이동하고, 향후 노숙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계기로 만들 생각이 중구청에는 없는 것이다. 실제, 중구청이 밝힌 노숙을 사유로 한 긴급지원 현황은 제도 시행 이후 지난 10월까지 단 1명, 그것도 1회 지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후속지원(기초생활보장연계, 일자리 연계 등)도 없었다. 과연 그는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제도가 시작된 지 1년 8개월이 지난 상황에서 고작 1명만 제도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 굳이 이런 것을 ‘제도’라 부를 필요가 있을까? 더군다나 중구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거리홈리스가 많은 지자체인데 말이다. 결국 중구청은 홈리스 축출을 위해 인도육교 철거라는 사건을 더 없이 반겼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과오와 연대의 상실을 직면할 수 있는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
홈리스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공공장소의 사유화, 고급화, 그리고 국가권력의 전횡적 사용과 같은 경향의 한 형태로 발생하고 있다. 인도육교의 철거 역시 그러하다. 홈리스들의 생활터전의 상실은 단지 물리적 공간의 박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육교라는 공간에 아로새겨진 노숙 첫 날 밤의 기억, 맨 처음 무료급식을 먹었던 기억, 난생 처음 죽은 사람을 봤던 기억, 난간에서 뛰어내리는 30대 노숙 동료의 발끝을 잡았지만 그대로 미끄러졌던 기억, 거리홈리스들이 쓴 “인내”, “은혜와 사랑” 따위의 낙서... 이런 노숙의 기록과 기억이 사라진 것 또한 엄청난 상실이다. 우리사회의 과오와 연대의 상실을 직면할 수 있는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구청은 서울역 인도육교 철거에 따른 거리홈리스의 주거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인도육교는 사라지지만, 그것과 함께 했던 거리홈리스들의 고단한 삶을 증언할 수 있는 기억의 기록 방편도 함께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구청은 이와 같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홈리스 당사자들과 인권 단체들과의 대화의 자리부터 신속히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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