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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336
2008.02.24 (20:35:33)
십 원짜리 언론의 촌철살인
이동현 메일보내기



“술 마시고, 라면 끓여먹고… 숭례문은 노숙자 ‘안방’이었다”는 조선일보 기사처럼 단박에 몰입할만한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 결국 나는 조선의 기자는 아니었다. 불탄 숭례문의 복원이 그렇듯, 이와 같은 기사로 졸지에 문화재 훼손 범죄 집단이 되어 버린 노숙인에 대한 여론을 되돌리는 일은 애초부터 쉽지 않은 과제이다.

남대문이 불탈 때 안쓰러움에 마음 졸이지 않은 국민은 없을 것이나 나는 또 다른 조바심을 내야 했다. 누구 하나 ‘노숙자로 보이는’, ‘노숙자 차림의’란 식으로 목격 증언을 전하지는 않을까, 그로 인해 거리 노숙인 줄 소환 사태나 검문, 단속이 빚어지지는 않을까, 노숙인을 범죄 집단화하는 선정 보도들이 쏟아지지 않을까하는 심란한 마음이었다. 역시나 화재 이튿날 ‘노숙자 차림의 60대 남자가 사다리를 타고 남대문에 올라갔다’는 제보가 바로 접수되었다. 다행, 얼마 지나지 않아 방화범은 ‘노숙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일부 보수언론들이 남대문에서 벌어졌다는 노숙인들의 일탈 행위들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리면서 노숙인들이 실제 방화범 이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집단 생매장’을 운운하는 등 당장이라도 노숙인들에 대한 집단 폭력이라도 가할 것 같은 위기감이 보인다.

사건 보도는 무엇보다 객관성에 근거해야 한다. 노숙인들의 남대문 누각 진입을 보도한 언론들은 어찌보면 객관성을 확보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남대문에 올라간 노숙인을 인터뷰했고, 목격한 이들의 증언까지 담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노숙인들의 자백과 목격담을 근거로 사실을 단정할 수 있을까? 최근 언론에 보도됐던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의 경우 범행을 자백한 노숙인을 구속했으나 이후 진범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영아 사체 유기사건 역시 노숙 여성이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그녀 역시 자백하였으나 유전자 검사 결과 사실이 아니었다. 노숙이라는 극한의 빈곤상황은 심리적, 정신적 질환과 혼돈 상태를 유발하곤 한다. 어떤 한 개인이 노숙생활을 1년을 한다면 노숙을 하지 않는 인구집단에 비해서, 신체화증상은 3.263배, 대인예민성은 10.451배, 우울증은 2.710배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심리 정서 상태에서 사실과 상상의 혼돈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욱 탐문이라든지 목격 질문 등과 같이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경우 그럴 확률은 더 높아지기 마련이다. 어제 서울역에서 노숙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노숙인이 “난 정신이 들어갔다 나왔다해서 거기(남대문)에 불 많이 질렀어”라고 하며 유유히 지나갔다. 만약 이 장면을 기자들이 봤다면 어떤 기사가 나왔을까?

지난 12일, 남대문 공원과 남대문 지하도에서 수년간 정주 노숙을 해왔던 5~6명에 대해 면접 조사한 결과 평소 남대문에 올라갔던 경험이나 그런 장면을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또한 14일 남대문 인근 거리노숙인, 쪽방거주민 52명에 대한 설문 조사결과 남대문에 올라가거나 이를 목격한 경험이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조선일보는 평소 알루미늄 사다리를 통해 남대문 누각에 노숙인들이 수차례 침입했다며 신빙성을 보충했으나 이는 노숙인들의 생활패턴에 대한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자신의 전 재산을 배낭하나에 간추려 짊어지고 하루를 보내야 하는 노숙인들이 사다리 2개를 오직 하나, 남대문에 올라가기 위한 목적으로 지고 다닌다? 당장 고물상에 갖다 팔면 아무리 못 받아도 최소 2만 원은 족히 받는데?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숭례문(남대문)은 우리나라 국보1호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과정에서 아무리 못 배웠다 하여도 누각 안에 들어가 취사를 하며 안에서 술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고 생각 되십니까? 어느 기자분이 실었는데 상식에 벗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뿐 아니라 노숙자들을 너무 몰아붙이는 것으로 사료됩니다.(한 서울역 노숙인의 글)  

숭례문의 허술한 야간 경비 실태로 볼 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었을 테고, 그런 사례 역시 없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노숙인들이 수시로 침입했다는 ‘사실’은 오로지 증언에 의존할 뿐이다. 또한 침입 현장을 실제 목격했을지라도 그가 ‘노숙자’라는 판단은 개개인의 통념에 따른 것일 뿐 사실적 판단 기준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숭례문은 노숙자 안방’ 운운하는 언론들의 보도행태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숭례문 화재사건을 노숙인들의 일탈 행위로 초점 지우는 결과를 초래하며, 문화제 관리에 대한 문제 제기나 남대문 복원 방식과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과 같은 건강한 토론을 무색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보 1호 손실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은 ‘노숙자’라는 고립된 소수를 표적삼아 쏟아지고 있다. 따라서 확인되지 않은 증언을 사실로 둔갑시키고, 이를 통해 사건의 본질에서 여론을 비켜 세우는 저질 언론들에게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잉크’가 아니라 ‘종이’에서 나온다. 재활용 수집상에서 신문 1kg는 통상 100원에 거래된다. 저질 신문 1부의 가치는 약 10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동현 /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상임활동가



2008.02.26 (11:12:29)
아해
저도 바로 그 날짜 10원짜리 저질 신문을 보면서 큰일났구나 싶었습니다. 정말 온 지면에 '노숙자'에 대한 적대감이 이글거리더군요.
이동현활동가가 조선의 기자가 아닌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쉽지않은 상황이지만 꿋꿋이 대응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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