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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빈곤과 결핵
가난은 질병을, 그리고 질병은 다시 가난을 혹은 죽음을


<건강세상네트워크 빈곤층건강권팀>


▲  3월 24일은 ‘세계 결핵의 날’이다. 2012년 세계 결핵의 날 홍보 이미지

적절한 시기에 치료만 이루어졌더라도
강씨가 처음 결핵을 앓은 것은 20여 년 전이다. 결핵을 앓기 전 강씨는 구두공장에서 일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직장에서 결핵에 옮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20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강씨는 대부분의 결핵약에 내성을 가진 심한 상태였고, 치료를 위해 폐절제 수술도 받은 적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치료를 마치고 작년에 완치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다. 염증으로 망가진 폐로 인한 결핵의 후유증이 심각했다. 가족이 있었지만, 의지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결국 아직까지 요양병원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마음 한편에 직장을 구하고 다시 사회로의 복귀를 원하지만, 이미 세상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처음 결핵을 진단받고 보건소에서 완치판정을 받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2014년 지금의 현실이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종종 자신을 탓해 보기도 한다. 재발하고 난 이후, 결핵 약 먹는 것을 게을리 했다. 그래서 그의 몸에 살던 결핵균은 점점 더 강한 균으로 변해갔다. 세상과 그는 현재의 상황을 너무 쉽게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변씨는 작년 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영등포 인근의 쪽방에서 2주일간 술만 마셨다고 하는 것이 담당의사가 전해들은 사실이다. 이미 모든 폐에 결핵균이 퍼져있고 염증이 가득했다. 인근 주민의 도움으로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지 1주일 만에 짧다면 짧은 생을 마감했다. 변씨가 앓던 결핵은 약제내성결핵도 아니었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만 이루어졌더라도 죽음을 마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핵 문제는 ‘가난’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결핵은 치료가능한 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에서 결핵은 공포의 질병으로 다루어진다. 다시 강조하고 싶다. 결핵은 치료가능한 병이다. 다만,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는 상황에서 결핵은 개인과 사회에 큰 고통을 안겨준다. 문제는 ‘특정한 조건’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높은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 자료는 거의 모든 결핵 관련 기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원인은 결핵균이요, 예방은 기침예절, 조기발견, 강제격리조치이며, 치료는 항생제라는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언론과 학계와 심지어 시민사회에서조차 다뤄지지 않는 결핵을 둘러싼 ‘특정한 조건’은 무엇일까?
1965년 20명 중 1명은 결핵을 앓고 있었다. 2013년에는 그 수가 1,000명당 1명으로 줄었다. 전 국민이 가난하던 시절, 결핵은 그/녀의 삶에서 멀리 있는 질병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 국민이 잘 살게 되었다는 지금, 결핵은 그/녀의 삶에서 잊혀져 가는 질병이다. 하지만, 결핵은 여전히 국내에서 법정전염병 중 가장 높은 발생률과 사망률을 기록한다. 1,000명 중 1명에 포함되는 그/녀가 누구인지, 더욱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관련 연구가 극히 드물지만, 몇몇 연구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한 보고서(김희진 외, 건강검진 자료를 이용한 폐결핵 발생률 조사. 결핵연구원, 질병관리본부)에서는 건강보험료가 낮은 사람들에서 결핵 유병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연구들에서는 거리 홈리스와 주거취약계층의 높은 결핵 유병률을 보고하기도 한다(조승희 외, 2012. 2011년 취약계층 결핵검진결과 분석; Lee et al., 2013). 해외의 문헌들을 찾아보면, 그 실마리는 보다 분명하다. 결핵은 이미 오래전 선진국에서부터 ‘빈곤의 질병’으로 인식되었고, 지금도 선진국의 빈곤층에서의 발생률과 저개발국가의 높은 유병률이 변하지 않은 현재를 설명하고 있다. 정부도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2011년 결핵예방법의 개정과 함께, 결핵 환자의 부양가족에 대한 생활지원이 시작되었다. 다만, 지원은 강제입원명령을 받은 환자에 국한된다. 그리고 강제입원명령이 해제된 이후에는 생활지원도 함께 중단된다. 정책의 무게중심이 생활지원인지, 강제입원명령인지 헷갈리는 대목이다. 요약해 보자. 2014년 대한민국의 결핵 문제는 ‘가난’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결핵환자들을 격리하는 조건으로 일정시기 동안만 부양가족을 지원하는 것이 전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입원명령이 최선의 정책인지에 대한 반성이 시민사회에서조차 이루어진 적이 없다는 점이다.


결핵에 국한된 정책만으로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
가난이 결핵의 한 원인이라면, 결핵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후 삶은 어떠한지 궁금해진다. 강씨와 변씨의 사례에서 그/녀의 이후 삶을 유추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한 명은 여전히 병원에서 생활하며 사회로의 복귀가 요원하다. 다른 한 명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사회는 강씨의 부적절한 치료 행태와 변씨의 뒤늦은 치료를 그/녀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세상의 시선은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3월 27일 결핵의 날을 맞이하여 쏟아졌던 결핵기사의 제목만 나열해 보자. “정부, 모든 결핵환자 접촉·복약 조사한다(연합뉴스, 2014.3.24)”, “한해 1300억원 진료비로 쓰는 ‘결핵’… 후진국 병이라고요?(헤럴드경제, 2014.3.24)”, “카이스트 ‘결핵 공포’…21명 확진(한겨레, 2014.3.20)”, “7월부터 ‘의료기관 격리치료 명령제’ 시행(데일리메디, 2014.3.24)”……결핵은 공포의 질병이거나, 후진국 질병이라는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정부는 조사하여 관리하거나 격리명령을 내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인식의 굴레에서 결핵을 앓고 있는 그리고, 완치 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의 삶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결핵환자 모두가 ‘가난’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가난한 결핵환자’의 삶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결핵완치 후 그/녀는 부정적 질병 인식으로 인해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오랜 기간 치료로 인한 경력의 단절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다시 빈곤의 굴레에 갇혀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녀가 겪는 삶의 고통에 있어서 우리 모두는 편견을 양산하고 방관한 가해자일 수도 있다.


그/녀의 삶에 기반한 결핵 정책이 필요하다. 관리와 격리가 필요하다면, 그/녀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환자를 적절한 치료의 공간으로 유도할 수 있어야 하고, 의료진은 직접 설득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가족과 주변 공동체도 완치의 희망을 강조하야 한다. 강제격리정책은 다른 시행 가능한 대안이 없을 때 극히 제한적으로 시행되어야 함을 세계보건기구는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다른 시행 가능한 대안을 얼마나 시험해 보았는지 자문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난이 결핵을 만들고 결핵이 다시 가난의 원인이 된다면, 결핵에 국한된 정책만으로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 복지정책 때문에 결핵예산이 삭감되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더 넓고 깊은 복지정책을 구상하고 실천해야 한다. 장기간의 치료 기간은 물론 그 이후에도 생활에 문제가 없고, 직장으로의 복귀에 문제가 없다면 그/녀의 치료중단 혹은 그/녀의 치료지연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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