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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les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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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045
2014.12.23 (21:57:16)

[특집]


염전노예사건 그 후


<김강원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두 달간 서울과 신안을 오가며
필자는 홈리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장애인단체에서 근무하며 홈리스의 문제보다는 장애인의 문제, 장애인의 관점에서 사실들에 접근했고, 홈리스 중에서 장애인이 있다면 그것은 장애인의 문제이지 홈리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홈리스’라는 특정 대상이나 집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또 홈리스의 문제는 개인에게 찾아온 일시적인 현상이고 또 어려움에 처한 개인의 문제, 언제든 재기가 가능한 잠깐의 고난이라는 정도의 어렴풋한 인식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올 한해, ‘염전노예’라는 말 만큼 많이 사용했던 단어도 없었을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었고 두 달간 서울과 신안을 오가며 남도의 따뜻한 봄볕 속에 영그는 소금 알처럼, 얼핏 따뜻하고 평안한 시골 마을 같던 그곳에서 남모르게 응결되는 누군가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접근해 보려고 했다. 그리고 지난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한국정부 심의에 참가하여 장애인권리위원들에게 염전노예사건을 사진으로, 자료로, 되지 않는 영어로 무진 애를 써서 알려 세계적으로 ‘나라 망신’을 톡톡히 시켜줬으니 피해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나라가 정신을 차리고 신경을 쓰게 하는 의미가 있었겠지만 필자 역시도 창피하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섬으로, 염전으로, 어선으로
필자는 올해 2월부터 4월까지 전남 신안군 신의면에서 있었던 염전노예사건의 민관합동조사에 민간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를 했다. 아마도 신의도는 이 글을 읽는 홈리스 분들 중에도 익숙하거나 가 본 경험이 있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경찰과 함께 신의도를 샅샅이 뒤지며 염전 인부들을 만나봤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임금을 제대로 못 받거나 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한 사람들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놀라웠던 것은 염전 인부 중 거의 3분의 2 이상은 글을 읽고 쓰지 못하거나 스스로 돈 계산을 못하거나 혹은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라고 규정짓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신안 염전에 그런 ‘장애인’들이 있고 임금도 제대로 못 받은 채 노예처럼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2012년 군산 ‘섬 노예’ 사건 때 들은 적이 있다. 그 당시 어선 등지에 장애인들을 팔아넘기는 일당이 검거됐고 피해자가 100여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래서 피해자가 발견된 군산 개야도에 갔었고, 개야도의 한 주민이 “여기보다 신안 염전에 한번 가 보소.” 라고 했었다. 연고도 연줄도 없이 무작정 염전에 찾아가기 어려워 그냥 올라왔지만 그 때 어선과 염전 등에서 일어나는 고단한 사람들의 인생을 알게 된 것이다.
군산에서도 그랬고, 신안에서도 그랬다. 섬으로, 염전으로, 어선으로 들어가는 경로는 이제 익숙한 스토리이다. 영등포역이니, 서울역이니 역전에서 노숙을 하는데 웬 남자들이 다가온다. “돈 벌러 가자.” “일자리가 있으니 가자.” 라고 접근을 해서 목포역 인근의 직업소개소로 데려간다. 그리고 근처 여관에서 묵게 하면서 술집도 데려가고 아가씨도 붙여 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다 내 앞으로 달린 선불금으로 남고, 같이 놀았는데 다 내가 내는 돈이 되고, 하룻밤 놀았는데 50만 원, 100만 원이 내 앞으로 달린다. 그리고 선장이니 염주이니 하는 사람이 와서 내 앞으로 달린 선불금을 갚아주고 나를 데려 갔다. 그리고 돈도 안 주고 부려 먹고 선불금 다 갚기 전엔 도망도 못 간다며 가두고 때리고… 그렇게 일 년을 일해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푼돈뿐이고 갈 곳 없는 겨울이 찾아오면 또 직업소개소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나마 매년 직업소개소와 염전을 오가며 사는 사람들은 내가 벌어서 내가 쓰니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30년, 40년씩 섬에서 돈 한 푼 못 받고 일하면서도 염전주를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그곳이 삶이 되고 인생이 된 것이다. 그 분들은 섬 밖으로 나가자고 해도 싫다고 하셨다. 나가도 갈 곳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다면서.


누구도 노숙인 시설로 던져진 이들을 찾지 않았다
두 달여 쉴 새 없이 염전 사건에 몰두하다가 신안과 멀지 않은 진도 앞바다에서 일이 났다.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것이다. 신의도에 파견되었던 경찰관들은 모조리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갔고 이후에는 유병언을 잡는다고 쫓아다녔다. 그렇게 염전노예사건은 뿌리 뽑히지 못한 채 일단락이 된 것이다. 경찰은 한 개 섬에서만 10여 명의 염전주를 구속하고 40여 명의 염전주를 입건했다. 그나마 오갈 데 없는 사람들 먹여주고 재워줬다는 핑계는 이제 통하지 않게 되었으리라며 위안을 삼는다.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는가 했지만 남은 것은 조사를 통해 만났던 63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한 명, 두 명 또 여기저기서 비슷한 사건의 피해자라며 계속 연락이 왔다. 그런데 너무나 막막하기 짝이 없는 것은 이들을 거두고 도울 기관도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경찰은 사람들을 끄집어내서 노숙인 시설에 입소시킬 뿐이었고, 누구도 노숙인 시설로 던져진 이들을 찾지 않았다. 이들은 답답한 시설은 견디지 못했고 또 다시 소개소를 찾거나 노숙을 하다가 염전이고 어선이고 팔려갈 것이 뻔했다. 이제 경찰이 단속을 해서 그나마 일할 곳도 없어졌을 터, 글도 못 읽고, 돈도 못 세고, 버스도 탈 줄 모르는 이들은 그냥 그렇게 잊히고  잠깐 떠들썩했던 이슈는 그새 묻힐 판이었다. 그래도 살아 있던 것은 시민이고 시민단체였다. 시민단체와 장애인단체들은 머리띠를 싸맸고 군수를 찾아가 이들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고 외치고 싸웠다. 그래서 많은 분들을 장애인으로 등록을 해서 그룹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후견인도 생기고, 기초생활수급 신청도 했다. 길게는 백년도 넘게 지역의 관행으로 있었을 이 사건이 이제야 문제고 잘못임이 알려졌고, 그리고 일부나마 ‘그들’이 ‘사람’이란 사실이 발견되었고 언제나 주변인이었던 그들이 사회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국가는 먼저 와서 알려주고 챙겨주는 법이 없다
스스로 일어서기 어려운 사람에게 국가는 좀처럼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국가가 돈도 주고 집도 마련해 주고 일자리도 소개해 준다지만 알아서 챙겨먹지 않으면 먼저 와서 알려주고 챙겨주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 없거나 스스로 챙겨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길거리를 전전하다 끌려가 평생 노예 노릇을 한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필자는 홈리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정히 돈 없고 갈 곳 없는 분이 계시다면 동사무소(주민센터)에라도 찾아가 사회복지 한다는 공무원을 붙잡고 너희가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챙겨준다지 않았냐며 따져 보시기를 바란다.


11월도 지나갔으니 이제 염전일은 다 끝이 났을 것이고 염전 인부들은 육지로 올라와 1년 모은 돈을 펑펑 쓰고 있거나 아니면 김 양식장에서 또 일을 하고 계실 것이다. 그나마 가끔 연락을 하는 몇 분을 제외하고는 사는 환경이 다른 탓에 형님 동생 할 만한 분들을 만들지 못한 것은 아쉽다. 나에게는 따뜻하고 안락한 이 겨울, 또 누군가에게는 춥고 배고픈 계절이겠거니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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