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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91
2023.10.20 (16:16:37)

[똑똑똑]은 초보 활동가의 반빈곤 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을 담은 꼭지

  

미치게 만드는 이야기

20년, 30년을 반복해도 지치지 않고 이어지는 어떤 이야기들

 

<민푸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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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과 쪽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찍은 사진들  <사진=필자>

 

 

우리는 쪽방에 나란히 누워있다. 언니는 손을 뻗어 모기를 잡으려 애쓰며 얘기한다. 

“내가 도저히 그 집에서는 못살겠는 거야. 그래가지고 봇짐 하나 싸들고 아무도 없을 때 얼른 집을 나왔지. 엄마도 황당했을 거야? 생전 싫은 소리 안 하던 애가 갑자기 날랐으니까. 그러고 이십년도 더 있다가 엄마를 딱 만난 거야, 세상에. 응? 생뚱맞은 서울 한복판에서. 근데 대번에 하는 얘기가 날 찾으러 온 사방을 떠돌다가 돈을 다 뺏겼다고. 돈 좀 달래.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나도 큰소리를 쳤지. 내가 돈이 어디 있냐고. 그게 할 말이냐고. 그 말을 듣자마자 온갖 욕을 하는데 얼마나 사람 미치겠는지.”

가만히 뒷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 방 아저씨가 신경질적으로 우리 쪽으로 다가와 빽 소리친다. 

“시방 아줌마는 질리지도 않아? 똑같은 얘기를 몇십년을 시방 그러고 있는 겨? 아가씨도 작작 들어줘. 나처럼 삼십년을 듣게 되는 수가 있으니까. 사람을 아주 미치게 하는 건 이런 거야 아줌마야.” 

우리는 괜한 소리 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다. 아저씨가 갈피 잃은 화를 못 이겨 건물 밖으로 나가자, 언니는 다시 얘기를 이어간다. “그래가지고 내가 쪽이 팔려서….” 삼십년이 반복된 이야기가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같은 얘기를 수십년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형숙은 매일같이 국회의사당역으로 출근한다. 거기서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만든다. “우리는 이십년 동안 외쳤습니다.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도 함께 살자고, 장애인도 노동하고 교육받고 이동하며 함께 살자고 외쳤습니다,” 하고 시작되는 이야기를 한다. 형숙과 형숙의 동료들은 이십년간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왔다. 각기 다른 구호였지만, 결국 같이 살고 싶다는 같은 얘기였다. 고개를 들어 한 번쯤은 형숙의 얼굴이라도 쳐다볼 법도 한데, 대개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형숙이 탄 휠체어가 시민들의 가방이나 발끝을 스치면 그제야 고개를 들고, 보기 싫은 무엇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한다. 누군가의 귀 앞에서 멈춰버리곤 하는 이야기를 수십년 간 반복하며 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 이야기를 멈추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더 크게, 더 많이, 더 자주 외쳐야 했을까. 목이 쉬어라 외치면서도 다음 날 또 외쳐야하니 목소리를 잃지 않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절실했을까. 

 

같은 얘기를 삼십년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할머니랑 매번 같은 길을 걸었던 일이 생각난다. 할머니 집을 출발해 마을을 벗어나 딸기밭까지 갔다가 정미소를 거점으로 돌아 작은 소 축사를 지나쳐 언덕인지 낮은 산일지 모를 곳을 건너왔던 일. 우리는 차도와 인도, 논밭과 길, 산과 들의 경계가 모호한 그 길을 걸었다. 경계가 모호한 길을 걸어서 그런지, 할머니의 시공간도 모호해지고는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삼십년 간 여지없이 그 얘기를 했다. “니 갑돌이와 갑순이 헌 거 기억 나냐? 쪼매난 애가 바닥에 쭈구리 앉아서 갑순이라고 까꿍을 했다가 고개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는데 니 그거 기억 나냐?” 나는 기억나지도 않는 그 짧은 순간이 할머니의 어디에 어떻게 어째서 맺힌 걸까. 왜 어떤 순간들은 마땅한 설명도 없이 그렇게 몇십년 동안 회자되는 이야기가 되어 누군가의 입과 귀에, 뇌와 심장에 맺혀버리고야 마는 걸까. 할머니가 세상을 뜨고 나는 다시 걸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 그 길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홀로 남겨두고 온 게 맞는 걸까. 결국 형숙이 매일같이 마주했던 무심한 사람들처럼.

사실은 나도 몇 번씩 들은 적 있는 언니의 이야기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재미나게 듣는다. 언니는 같은 얘기도 새롭게 느껴지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 같은 얘기를 삼십년 넘게 해온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꾼이 된다. 언니는 긴 호흡의 이야기를 마치고 모로 누워 내 쪽을 바라본다. 주말에 뭐하냐고 묻는다. 보신각에 일정이 있다고 대답한다. “너 또 데모 나가? 데모도 주말에는 쉬어야지, 보신각은 무슨 죄냐, 보신각에 하도 사람들이 모여 싸니까 그 큰 종도 지치겄다, 그렇게 종을 지치게 하면 신년에 종이 울리기나 하겠냐,” 한다. 우리는 울리지 않는 큰 종을 상상하며 깔깔 웃는다. 우리는 고급스런 원단으로 만든 두루마기를 멀쑥하게 갖춰 입은 높으신 분 여럿을, 울리지 않을 종을 치기위해 하나둘 하며 합을 맞추는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상상을 한다. 결국 종이 울리지 않아 그들이 그들만을 주목하는 사람들과 카메라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상상을 하며 더 크게 웃는다.

 

“쌤통이다”라고 언니가 말한다. “뭐가?” 하고 되묻는 나를 툭 치며 “쌤통이잖아. 그런 사람들이 그런 광장에서 자기 짓거리가 씨알도 안 먹히는 경험을 언제 해 보겠냐, 우습지, 우스워” 하고 언니는 혼자 깔깔 웃는다. 나는 삼십년간 해왔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간신히 노력해야 씨알정도 먹히는 이야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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