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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안전과 지원체계의 사각에서 사망한 여성홈리스

취약한 상태 이용한 범죄...여성홈리스 복지지원 강화 시급하다

 

<홍수경 /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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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1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故임*희씨 추모문화제 <사진=홈리스행동>

 

지난 3월 16일 서울역 인근에서 생활하던 여성홈리스가 성폭력 범죄로 사망했다. 가해자는 서울역 인근 골목에서 저녁 8시께부터 3시간 가까이 고인을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이는 안전 사각지대에 처한 ‘거리홈리스’이자, 성별 특성에 의해 더욱 취약한 ‘여성홈리스’를 표적으로 한 사건이다. 가해자는 17년 형을 선고받았다. 항소를 제기했기에 형이 확정된 상황은 아니다. 고인의 죽음 이후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 선고가 곧 사건 종결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운동단체 홈리스행동은 약 5년 전부터 고인을 만나왔다. 고인의 사망 직후 소식을 접했지만, 범죄로 숨졌다는 사실 말고는 범인의 정체도, 범행의 이유도, 죽음의 과정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에 홈리스행동은 한겨레신문 기자와 함께 사건을 추적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인의 형제자매들이 직계 유족이 아니란 이유로 정보를 충분히 전달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족들은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서야 가해자와 재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가해자는 형사공탁*을 완료했다. 유족들은 공탁 거부 의사를 밝히고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결국 공탁이 감형 사유로 인정되면서 검찰 구형(25년)에 한참 못 미치는 형량(17년)이 선고됐다. 

 

여성홈리스 지원체계 부재,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홈리스 

이 사건은 여성 홈리스에 대한 지원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고인의 상태를 이용한 범죄다. 고인은 작년 말 서울시의 ‘노숙인 임시주거지원 사업’을 통해 서울역 인근의 고시원에 거주하던 중 범죄 피해를 당했다. 거리홈리스가 서울시 지원을 통해 선택할 수 있는 주거는 고시원·쪽방과 같은 비적정 염가거처 뿐이다. 이런 거처는 층별 성별 분리는커녕 화장실, 샤워장 등 필수생활 설비조차 공용으로 두고 있어 여성을 묵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고인이 생활하던 고시원 역시 마찬가지로 고인이 해당 거처를 나온 데에는 이와 같은 주거환경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고인의 홈리스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가해자는 “유독 여성 홈리스들에게 친절한 60대 남자”, “피해자를 찾아다니던 남자”였다.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이 사건은 안정적인 거처가 부재한 고인의 취약한 상태를 잘 알고 이용한 범죄로 볼 수 있다. 

 

여성홈리스의 경우 구타와 가혹행위, 성폭력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신속하게 복지 서비스로 연계하여 이들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 하지만 홈리스 지원체계는 원칙부터 실행 전반에 있어 성별 특성에 기반을 두지 않은 상태다. 지난 2011년 제정된 <노숙인복지법>은 여성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었고 이후 “성별 특성을 고려하여 노숙인 등을 위한 지원사업을 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2019.01.15.)되었으나 구체적인 정책 설계는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여성 거리홈리스에게 응급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여성 전용 일시보호시설은 전국에 단 한 곳, 서울에만 존재할 뿐이다. 

 

성별 특성 반영한 지원체계 조속히 마련해야 

지난 3월 보건복지부는 ‘여성 거리노숙인 현장 보호 체계’를 강화한다면서 전담 조직을 선정·지원한 바 있다. 그러나 여성홈리스 복지지원 강화 없이 여성홈리스를 보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고인의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보호라는 이름 아래 단속이 아닌 여성홈리스에게 스스로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복지 제도의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무엇보다 성별 특성을 반영한 홈리스 복지지원 체계의 마련이 시급하다. 

 

고인은 내성적 성격으로 본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으나 조용하고 따뜻한 성품으로 주변을 잘 챙기고 고인과 가까이 지내시던 이들 기억에 “돈 한 푼 말 한마디 거짓이 없는 사람”이었다. 고인이 가난과 차별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길 바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전한다. 

 


*형사공탁이란 :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지 못한 피고인이 법원에 공탁금을 맡기고 나중에 피해자가 이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피고인이 공탁금을 낸 경우 양형에 참작하여 감형이 되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 12월부터 피해자 동의 없는 형사공탁이 가능해졌는데,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공탁금을 걸고 감형을 받는 사례가 늘면서 제도 보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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