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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58
2023.09.29 (19:39:16)

[똑똑똑]은 초보 활동가의 반빈곤 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을 담은 꼭지

  

가둬야만 하는 삶은 없다

 

<민푸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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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 한국피플퍼스트 소속 활동가들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기습 점거했다. <사진=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홈리스야학에서 활동하는 별칭 ‘할아버지’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집에서 유튜브를 보고 있었는데, 바깥에서 사람들이 너무 시끄러워서 다 죽여야겠다고 생각"해서 자택 인근을 흉기를 들고 배회했다고 한다.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체포됐고, 이후 ‘도망 염려와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이 발부, 구속됐다. 

 

진보적 장애운동 유진우 활동가에게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버스탑승 시위에 참여했다가 다른 활동가가 체포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관의 팔을 물고 할퀸 혐의”를 받은 그는 공무집행방해로 체포됐다. 이후 ‘도주의 우려와 증거인멸 우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경찰이 그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활동하던 이들이 구속되거나 구속될 뻔하면서 가두면 다 되는 줄 아는 국가, 가두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고 굳게 믿는 국가, 가두는 것이 왜 필요한지 되묻지 않는 국가에 넌덜머리가 났다. 특히나 서로 다른 이유로 체포된 둘에게 ‘도망 염려,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증거인멸의 우려’를 반복해서 갖다 붙이는 모습에는 정말이지 치가 떨렸다. 

 

‘가두어야 한다’는 선언은 ‘가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한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경찰이 할아버지와 유진우 활동가를 구속해야함이 마땅하다고 선언할 때, 그들은 특수협박과 공무집행방해라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일 뿐이다. 범죄냐 아니냐, 범죄자냐 아니냐 만이 문제가 되는 거다. 그러나 ‘가두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컨대 우리는 범죄자는 어떻게 구금될/된 범죄자가 되었는가를 질문할 수 있게 된다. 할아버지에 대한 여러 보도들을 보다 보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구절들을 발견하게 된다. “경찰은 폭력행위처벌법상 우범자 혐의로 체포했지만 목격자들로부터 “칼을 든 A씨에게 공포심을 느꼈다”는 추가 진술 등을 토대로 혐의를 특수협박으로 변경했”다는 구절이 특히 그렇다. 할아버지는 흉기를 들고 대학로 인근을 배회하다 집으로 돌아왔다. 인명피해는 당연히 없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행위가 “공포심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는 흉기소지자에서 특수협박범이 되어 구속됐 다. 우리는 누구를 더 자주 ‘체포되고 구금되어 마땅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무섭고 위험한 존재’로 여기는지, 누구에게 더 엄중한 판단을 내리게 되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중증 발달장애당사자이자 홈리스당사자이고, 무엇보다 형제복지원 등으로부터의 시설생존자다. 할아버지의 행위는 할아버지의 발달장애특성과 분리될 수 없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오랜 기간 시설수용이라는 국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따라서 할아버지의 이 행위가 어떤 맥락에서 왜 발생했는지를 마땅히 들여다봐야 함에도, 국가는 이런 상황과 전혀 무관한 양, 할아버지 개인을 무섭고,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발뺌한다. 구금이 결국 그 범죄행위를 하도록 방치한, 종용한 맥락을 들여다볼 기회를 완전 봉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금은, 누구보다 사회의 안전을 걱정하는 척하는 사법당국이, 사실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자신은 책임소재로부터 도망가는 무책임한 할 뿐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우리는 국가가 누구를 더 체포되고 구금될만한 행위를 자주하게 만드는지도 질문할 수 있게 된다. 세상에, 경찰들은 현장에서 누구든 무엇으로든 체포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얼마 전에는 지하철행동 현장에서 선전물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려고 했다는 이유로 체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군사정부일 때나, 보수정권일 때나 권리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쉽게 감금되었지만, 역사의 흐름에서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당사자 활동가들은 거리로 나서왔다. 그러니까 대체 왜 활동가들이 투쟁으로 권리를 쟁취하게 만드는가. 왜 감금을 무릅쓰고 도망칠 곳 없이 사법당국에 둘러싸이게 만드는가. 거리로 나서게 만드는 사회의 책임은 어디가고 투쟁하는 활동가들만 덩그러니 남기는가. 책임을 피할 거면 조용히 혼자 도망갈 일이지 활동가들은 왜 데려가서 가둬버리는가.

 

무엇보다 우리는 경찰이 더 많은 일들에 개입하는 것이 왜 당연한 일이 되었는지 질문할 수도 있다. 경찰들이 와서 나쁜 범죄자들을 잡아가 가두는 것이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든다는 감각이 지배적이지만, 경찰에게 더 많은 행위를 범죄로 지목하게 하고, 더 많은 개인들을 범죄자로 지목하게 하고, 그로써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범죄와 더 많은 범죄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로써 누군가를 가두고 가두고 또 가두는 것이 정말 우리, 이 사회에 필요한 문제해결 방식인지 우리는 돌아봐야한다. 개인의 행위를 그의 일탈적이고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라며 개인만의 탓으로 축소시키는 것, 그래서 그것이 그의 잘못이기 때문에 그를 처벌하고 구금하는 것으로 매듭짓는 것은 너무 간편한 문제해결 방식이다. 그러나 간편하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우리는 이 사회에 범죄자를 늘려만 가는 것, 범죄행위의 목록들을 늘려만 가는 것이 이 사회에 정말 이로운 일인지 멈춰서서 되짚어봐야 한다. 더 많은 이들을 범죄자라로 지목할수록 우리가 더 많은 이들로부터 보호될 수 있으니 정말로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 낙인찍는 방식은 결국 이 사회의 그 누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누구든 언제든 어디서든 배제되고 낙인찍힐 위험이 도사리는 사회로 만든다.

 

경찰력을 비롯한 사법당국의 통제 아래에서만 가능한 보호와 안전이 아니라 그 밖에서 더욱 굳건할 수 있는 이해와 존중을 상상해야한다. 누군가를 범죄자라 부르고 감금하기 전, 그가 그 행위로 내몰리기까지 우리가 하지 못한 일들은 무엇인지, 우리가 범죄자라고 부르면서 위험한 존재, 사라졌으면 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우리를 계속 누군가를 가둘 필요가 분명히 있다고 믿게 하는, 그로써 감금이라는 폭력을 우리 스스로 재생산하게 하는 그 힘은 무엇인지. 누군가를 구금시키는 데가 아니라 이러한 질문을 치열하게 쫓아가는데 그 힘을 써야한다. 감금해야 마땅한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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