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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69
2023.07.30 (23:06:43)

[특집]

 

어느 여성홈리스의 죽음

같은 비극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여성홈리스 복지지원체계 강화해야

 

<홍수경 /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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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화(가명) 씨의 장례가 치러졌던 지난 4월 17일, 고인의 동료들이 서울역 광장 모퉁이에 차린 제사상.  무료급식소에서 받은 짜장밥과 십시일반으로 구매한 치킨을 올렸다. <사진=홈리스행동>

 

지난 3월 16일, 서울역에서 생활하던 여성홈리스 이경화(가명) 씨가 병원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폭행으로 인한 다발성 손상. 열흘 전인 3월 5일, 가해자는 서울역 인근에서 저녁 8시부터 3시간 넘게 고인을 폭행했고, 그녀는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오래지 않아 용의자가 잡혔다. 용의자는 60대 중반의 남성으로 서울역에서 생활하는 이는 아니지만, 광장의 여성홈리스들에게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그는 현재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이경화 씨가 사망한 지 한 달 만인 4월 17일에 치러진 무연고 장례식에 그녀의 홈리스 동료들이 참석하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장례를 치렀음에도 이 씨의 동료들은 그녀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고인이 범죄로 숨졌다는 사실 말고는 범인이 누구고 범행의 이유는 무엇이며 병원에서 적절한 조치가 있었는지 등을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락이 닿은 유족들도 경찰로부터 용의자는 물론 이 씨가 폭행을 당한 이유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홈리스행동은 이 사건을 취재하는 한 일간지 기자와 함께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을 만나며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갔다.

 

이경화 씨는 3년 전에 처음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고시원에 주소지를 두고 얼마간 살았으나 다시금 거리생활을 하게 되면서 수급 자격을 잃었다. 그러다 작년 말 노숙인 임시주거지원 사업을 통해 서울역 인근의 고시원에 거주하게 되었다. 오랜 기간 서울역 광장에 적을 두고 살아갔지만 광장은 여성홈리스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오늘날 뻔한 위험 앞에서 안전을 지키는 것은 여성홈리스 스스로의 몫이다.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홈리스는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적다. 2021년 기준 여성홈리스는 전체 홈리스 규모의 27.8%인 2,493명에 불과하다. 범위를 ‘거리’로 좁힐 경우, 성비의 불균형은 더욱 커진다. 복지부 실태조사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여성홈리스가 고작 146명(전체의 9.2%)뿐이라고 전한다. 피시방, 찜질방, 패스트푸드점 등의 실내 공간을 잠자리 장소로 선호하는 여성홈리스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자기가 자는 곳을 안 가르쳐 준대요. 그게 자기한테 불리해질 수가 있다는 거야. 여자가 어디에서 잔다는 얘기가 돌면 거기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는 거고...” - 2022년 여성홈리스 증언대회 인터뷰 중

 

이 같은 통계의 누락은 남성 중심의 복지정책을 강화한다. 여성홈리스의 특성을 고려한 포괄적인 실태조사와 그에 따른 복지지원 체계의 구축을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사회운동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이경화 씨의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여성홈리스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복지제도의 범위가 지금보다 더욱 넓어져야만 한다. 

 

필자가 만난 광장의 동료들은 최선을 다해 이씨에 대한 기억을 꺼내고 애도했다. 그들의 말을 통해 이 씨의 삶은 모양을 띠었다. 그 기억들과 가족의 말 등을 종합해 뒤늦은 부고를 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래는 한겨레 이문영 기자의 ‘사건으로 인정받지 못한, 어느 여성홈리스의 죽음’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인용한 것이다.

 

"이경화 씨는 1968년 2월 19일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다. 1남 6녀 중 다섯째였다. (중략) 2000년께 충북 음성 ‘꽃동네’(사회복지시설)에서 여수로 전화가 걸려왔다. 야산에서 화재 사고를 낸 뒤 소방서를 통해 꽃동네로 보내졌다고 알렸다. ‘갈 곳이 없어 꽃동네 어르신들을 보살피며 살고 싶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2010년께 고인의 큰딸이 “엄마를 찾고 싶다”며 막내 이모에게 왔다. 금융 기록을 조회했더니 아무 기록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13년 뒤 범죄로 사망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두 딸은 집을 나와 살았고 엄마를 찾았던 큰딸은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엄마에 대한 원망이 컸던 둘째 딸은 시신 포기 각서를 쓴 뒤 연락을 끊었다. (중략) 2020년 4월 반포대교 근처에서 다리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져 있던 그를 경찰과 119가 출동해 응급실로 이송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서울역 다시서기센터로 인계했다. 센터가 수급 자격 취득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고인은 “필요한 도움이 없다”고 했다. “나보다 곤란한 여자 찾아서 도와주라”는 말은 고인을 아는 사람들의 공통된 기억이었다. 고인의 동료는 “이경화는 너무 착해서 그렇게 죽기 아까운 아이”였다며 “광장에 앉아 술 먹다가 앞에 공돈이 떨어져도 절대 자기 주머니에 넣는 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 한겨레, 2023년 5월 13일자 기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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