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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200
2023.08.28 (14:09:39)

[특집]

 

“계고장을 두려워하지 말자”

퇴거위기 순화공원 홈리스, 사회단체와 함께 구청 상대 요구안 관철

 

<황성철 /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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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 과정을 감시하는 홈리스행동 활동가들<사진=홈리스행동>

 

“텐트에 계고장이 붙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냐. 계고장 붙을 적마다 잠시 피했다가 다시 오고 그랬어.”

 

순화공원 터줏대감인 이모씨의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붙은 계고장은 예전과 느낌이 영 달랐던 모양이다. 이씨는 지난 7월 27일 오전 홈리스행동 사무실에 방문해 텐트에 계고장이 나붙은 사실을 전했다. 구청에서 환경 정비를 한다며 31일까지 텐트와 짐을 모두 치우라 했다고 이씨는 전했다. 이씨의 텐트에는 붉은색으로 쓰인 ‘노상적치물 강제정비 예고통지서’가 붙어 있었다. 7월 24일부터 31일까지 자진 정비 후 나가라는 내용이었다. 

 

계고장이 붙은 7월 24일 기준, 순화공원에는 텐트가 총 8동 있었다. 이씨의 말에 따르면, 계고장이 붙은 후 서부역과 순화공원 텐트를 오가던 사람이 보이지 않고, 함께 생활하던 외국인 홈리스도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계고장이 붙은 순간부터 이미 퇴거가 시작된 셈이다.

 

중구청의 순화공원 재조성 추진계획

순화공원은 중구 순화동 216-2 일대 약 2,000㎡ 면적의 부지로 2013년 기부채납으로 조성된 공원이다. 지난 3월 중구청 도시관리국 공원녹지과는 오는 10월까지 공원의 가벽 및 노후시설물 철거, 어린이 놀이시설 및 순환 산책로 도입, 수목 식재 및 휴게시설 신규 설치 등을 추진할 계획을 발표했다. 추진계획서에서 눈에 띄는 건 “노숙자 유입, 노후된 공원시설, 어린이놀이터의 부재로 이용이 저조한 공원을 재조성하여 쾌적하고 안전한 공원환경을 제공하고자 함”이라 명시된 부분이다. 구청은 공원 이용이 저조한 원인을 홈리스에게 돌리고 있었다. 공공기관이 노골적으로 차별과 혐오를 드러낸 것이다.

 

텐트 거주민이 공원을 떠나지 않도록

텐트에 붙은 계고장 내용을 확인한 홈리스행동 활동가들은 공원녹지과 주무관과 곧바로 통화했다. 계고장을 붙인 경위를 물으며 일주일이라는 짧은 이행 기간의 문제, 텐트 거주민들에게 공사에 관해 전혀 설명하지 않은 문제, 후속 대책은커녕 기본적인 지원연계조차 고려하지 않은 문제 등을 지적했다. 또한 31일로 예정된 강제정비 시점을 연기할 것과 강제정비 이전까지 복지지원을 연계할 것을 요구했다. 

 

7월 28일, 홈리스행동은 공원에서 살고 있는 주민 네 명을 만나 31일에 ‘텐트 철거 대응 모임’을 갖기로 약속했다. 이후 담당 주무관과 면담을 통해 강제정비 시점을 8월 2일로 연기하는 한편 사람이 없는 텐트와 텐트 거주민들이 쓰지 않는 물건만 우선 정비하고 거주 중인 주민들은 공사 시작 시점인 8월 말까지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7월 31일과 8월 1일 양일에 걸쳐 텐트 주민 5명을 만나 면담 결과와 함께 공사 관련 내용을 전하며 정비 당일에 꼭 텐트에 있어 달라고 당부했다.

 

8월 2일, 경찰과 중구청 직원, 직책을 알 수 없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사람들이 공원으로 몰려 왔고 곧이어 쓰레기 압축차량이 뒤따랐다. 다행히 사전에 만났던 텐트 거주자 5명은 모두 현장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3동의 텐트가 철거됐는데, 과거처럼 철거한 물품과 텐트를 즉시 폐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서소문 폐기물처리장에 우선 보관하고 만약 텐트를 찾으러 오면 보관비용 징수 없이 원주인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계고장이 붙은 이후 자취를 감춘 주민 두 명의 텐트는 홈리스행동 활동가들과 순화공원 주민들이 함께 말고 접어서 중구청 직원에게 맡겼다. 계고장이 붙은 이후에도 계속 공원에서 거주하였던 5명의 주민들에겐 임시주거지원을 받거나 텐트를 옮길만한 곳을 찾을 시간이 생겼다.

 

계고장은 다시 붙었지만...

공원 정비 이튿날인 8월 3일, 순화공원 텐트들에 다시 계고장이 붙었다. 8월 25일까지 자진 철거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사이 5명의 거주민 중 2명은 임시주거지원을 택했고, 나머지 주민들도 스스로 거취를 선택했다. 

 

거리홈리스의 텐트나 짐에 붙은 계고장이 당사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과거처럼 계고장이 붙었다고 하여 그 장소를 아예 떠나거나 짐을 처분할 필요는 없다. 이번 사건에서 보듯, 거리홈리스의 텐트나 짐을 노상적치물로 간주해 계고장을 붙이는 사람들과 담판을 짓고 침해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최근 미국의 시애틀 시정부에서 의미 있는 판결을 내렸다. 홈리스의 텐트, 움막 등을 강제 철거할 때 그 대상을 그저 ‘방해물’이라는 애매한 표현과 기준으로 광범위하게 정해 철거하는 것인 위헌이며 따라서 철거를 하려면 철거의 주체들이 실제 방해물에 해당한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비록 해외 사례이긴 하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홈리스의 텐트와 물품은 타인을 방해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 삶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부당한 조치에 침묵하지 말고 함께 연대하여 침해된 권리를 회복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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