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뉴스

Homeless NEWS

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진단]은 홈리스 대중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된 정책, 제도들의 현황과 문제들을 살펴보는 꼭지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

 

<정성식 /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필자 주] 이 글은 시민건강연구소에서 최근 발간한 보고서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http://health.re.kr/?p=10292)의 내용을 발췌, 요약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자세한 논의와 참고문헌은 보고서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더 큰 피해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팬데믹 초기부터 공공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됨에 따라 평소 공공병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홈리스 환자들로서는 의료접근성이 크게 제약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자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제’(이하 ‘지정제’)로 인해 일부 병의원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제한받고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이 공공의료기관이다.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는 서울시의 ‘노숙인 등 의료지원사업’ 역시 지정제를 준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의료보장체계에서 이처럼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을 제한하는 경우는 ‘외국인 의료지원사업’을 제외하면 지정제가 유일하다. 이는 홈리스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차별적 형태의 제도로서, 국가인권위원회도 지정제 폐지를 보건복지부에 권고한 바 있다(2022년 1월 19일). 하지만 복지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코로나 유행 2년이 지나서야 ‘주의’ 이상의 감염병 위기단계 발령 시 모든 1‧2차 의료급여기관(요양병원 제외)을 노숙인 진료시설로 확대 지정하는 고시를 제정하였다(2022년 3월 22일). 그리고 올해 3월에 해당 고시의 유효기간을 1년 더 연장하였다.

 

그러는 사이 국회에서는 노숙인 진료시설 지정 조항(12조 1항)의 삭제를 골자로 하는 ‘노숙인복지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대한의사협회를 제외한 관계 기관과 단체들은 대체로 개정안을 수용하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홈리스 진료에 의료기관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적 보완책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일선 의료기관들에서는 홈리스 진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만연해 있는 게 사실이다. 지정제를 폐지하면 자칫 기존에 이용하던 병의원에서마저 진료를 받기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일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지정제 존속의 근거가 될 수 없고, 홈리스 의료보장제도를 더욱 내실화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지부 역시 폐지안에 동의하는 의견을 냈다. 다만 노숙인 1종 의료급여는 그 대상자 수도 적을 뿐 아니라 임시적 의료보장 유형이라는 점에서 지정제 폐지의 정책적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정제가 폐지되면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자뿐 아니라 서울시 의료지원사업을 이용하는 홈리스들의 의료보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지정제를 준용하고 있던 서울시가 지정제를 계속 고수할 명분이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정제 폐지의 실효성이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러한 파급 효과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과 더불어 지정제가 홈리스의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지정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홈리스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나는 의료접근성을 제약하고 의료의 질 저하를 유발함으로써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차별적 형태의 제도적 속성에서 파생되는 ‘낙인 효과’를 통해 당사자의 건강(특히 정신건강)을 악화시키는 측면이다. 

 

의료접근성의 제약과 의료 질 저하

현재 한시적으로 시행 중인 노숙인 진료시설 확대 지정은 요양병원을 제외한 모든 1, 2차 의료급여기관에서 급여항목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면제해주는 노숙인 1종 의료급여가 적용되도록 함으로써 경제적 장벽을 낮춰주는 효과를 낳는다. 그런데 의료비 부담은 의료접근성을 제약하는 중요한 장벽인 것은 맞지만 현실에서 홈리스의 의료 이용을 가로막는 여러 장벽 중 하나일 뿐이다. 예컨대 보행 곤란 등의 이유로 지리적 접근성에 제약이 존재할 수 있다. 또 의료기관과 건강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부족으로 필요한 의료 이용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국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홈리스는 비홈리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료 이용에 덜 적극적이고 치료 순응도나 지속성이 낮은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까닭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처음 의료에 대한 필요를 느낀 순간부터 최종적으로 의료서비스를 받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개입하고 있는 여러 유·무형의 장벽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개인적 배경(유전, 가족, 친구, 문화)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장벽과 사회경제적 구조에서 기인한 장벽들이 포함된다. 구조적 장벽은 ‘내재적’ 장벽(인지, 감정)과 ‘외재적’ 장벽(물리, 재정, 의사소통, 행정, 태도)으로 나눠볼 수 있다. 진료시설 확대 지정은 이러한 여러 장벽 가운데 경제적, 지리적 요인과 같은 일부 장벽을 낮추는데 유효할 뿐, 나머지 장벽들의 영향력 약화에는 무효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그동안 홈리스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이 어떠한지는 정책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보건의료의 질은 다양한 요인들로 구성되는 복합적 개념인데, 크게 진료의 기술적 측면과 인간관계 측면, 시설의 편의성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홈리스는 이중 특히 의료진과의 인간관계 측면에서 더 큰 질적 문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신뢰, 관심, 공감, 정직, 민감성 등으로 구성되는 인간관계의 경우 유형의 객관적 지표로 평가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일률적인 정책 수단만으로 그 질적 수준을 표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홈리스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만연해 있는 사회일수록 바로 이 인간관계 측면에서의 질이 문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인식은 의료진의 인식과 관점, 태도에도 스며들기 마련이다. 의료현장에서 지정제의 존재는 홈리스 환자가 해당 의료기관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가뜩이나 정보 부족과 열악한 사회경제적 지위 등으로 불평등한 관계를 더욱 고착시킬 위험이 있다. 이는 부지불식간에 의료행위의 질에 대한 고려를 약화시키면서 치료 성과가 저해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의료진과의 관계에서 겪은 부정적 경험은 이후 의료 이용을 회피하게끔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접근성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때 부정적 경험이란 홈리스 환자가 빈번히 경험하고 느끼는 차별과 낙인의 문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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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숙인진료시설 지정제도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 <출처=원 보고서 p.19>

 

낙인 효과

낙인은 사회적 관계의 악화와 자원의 가용성 제한 등 당사자에게 각종 불이익과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방식으로 건강과 삶의 기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보건학계에서는 낙인을 건강의 중요한 사회적 결정요인이자 건강 불평등 문제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동안 많은 선행연구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낙인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밝혀져 왔다.

 

홈리스에 대한 낙인을 유발하는 다양한 구조와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우선 홈리스 상태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빈곤 낙인’을 경험하게 될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료급여를 비롯한 여러 공적 부조를 수급하는 경우라면 ‘복지 낙인’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또 홈리스는 의료기관에서도 낙인찍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국외 연구결과에 따르면, 홈리스들은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흔히 낙인을 경험하게 되고 이것은 이들의 건강상태와 의료 이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홈리스는 의료기관에서 노골적인 치료 거부나 수준 이하의 의료서비스, 언어적 학대와 모욕, 망신주기, 불친절한 태도, 진료 연기와 긴 대기시간 등의 ‘미세차별’을 통해 낙인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의료기관에서의 차별과 낙인 경험으로 인해 의료 이용을 회피하기도 한다. 사회적 낙인은 홈리스의 자존감을 저하시키며 스스로 비난하는 경향을 악화시킨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취약해진 시기에 의료기관을 찾아온 이들에게 가해지는 낙인찍기는 이들의 자존감을 더욱 훼손시키고 불안과 우울증 등을 유발하며 정신건강을 위협한다. 이렇게 낮아진 자존감은 의료 이용을 기피하게 만드는 내재적 장벽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전문가와 공무원 시각에서 전혀 문제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 ‘사소한’ 정책이라 할지라도 홈리스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의료 이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제도적 낙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타당한 이유 없이 의료기관의 선택권을 차별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지정제는 그 존재 자체로 낙인화의 조건이다. 소극적으로 해석하더라도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홈리스 환자가 겪고 있는 아픔에 대한 정책적 무관심의 산물로밖에 볼 수 없다. 

 

홈리스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반인권적 문제로서 규탄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홈리스의 건강보장을 위해 적극 개입해야 할 보건학적 과제이기도 하다. 한데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홈리스가 겪는 차별과 낙인이 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한 학술적, 정책적 관심과 논의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복지부가 지정제 폐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편익에 낙인의 완화 효과를 고려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정제 폐지는 의료 이용의 접근성 개선과 질적 수준의 제고, 그리고 낙인 효과의 감소를 통해 홈리스 건강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정책적 실효성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지정제가 없어진다고 해서 의료현장에 만연해 있는 홈리스에 대한 낙인이 단번에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정제 폐지는 일정 부분 낙인의 부정적 영향력을 완화시키는 효과와 함께 의료현장에서 홈리스 환자에 대한 낙인을 문제시하고 이를 감소시키려는 첫 번째 정책적 개선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홈리스 건강권 보장과 모두에게 차별 없는 보편적 의료보장체계를 지향하는 관점에서 볼 때 지정제는 시급히 폐지되어야 한다. 

 

진료시설 지정제 폐지를 시작으로 사람 중심의 홈리스 의료보장체계 세워야

지정제 폐지는 홈리스 의료보장제도의 산적한 개선 과제 중 하나일 뿐이다. 지정제 폐지를 전환점으로 만들어가야 할 사람 중심적 홈리스 의료보장체계는 낙인을 유발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른 사회 집단과 동일한 수준의 의료접근성과 질을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고유한 요구를 존중하는 가운데 특수 상황을 고려한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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