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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뉴스 소식지 입니다.
조회 수 : 28
2024.02.05 (23:25:36)

[똑똑똑]은 초보 활동가의 반빈곤 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을 담은 꼭지

  

"동아줄을 꼬는 마음으로"

‘똑똑똑’ 마지막 칼럼, 홈리스뉴스 독자에게 드리는 인사

 

<민푸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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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화목한사랑방’ 홍보활동을 하는 필자(사진 맨 왼쪽)의 모습 <사진=홈리스행동>

  

감사합니다. 글로 먹고 살고 싶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생에 가장 바닥을 찍고 있던 열아홉 그 시절, 생을 포기하고 싶던 그 시절, 생을 놓지 않을 수 있던 유일한 이유였습니다. 미친 듯이 읽고 쓰며 그 시절을 견뎌냈습니다. 지금은 기억에서 지워낸 그 시절을 지나 지금은 다른 일을 하며 먹고 살고 있지만,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제게 여전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 제게 홈리스뉴스 지면을 빌려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었단 건 정말 귀한 기회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어느새 글을 읽고 쓰는 일이 그렇게나 중요한 일이 되어있었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글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이랄까, 끈기랄까 하는 것들이 제게는 충분치 않다는 걸요. 어쩌면 그냥 비겁한 걸 수도 있겠습니다.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고, 그에 비해 나는 이제 유쾌하면서도 통찰력있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이유로 도망쳐버린 걸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놓을 수 없었습니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저에게 절박한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하루하루 나사 하나 빠진 상태로 살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싫었습니다. 근래 가장 감명 깊은 문장이라고는 철 지난 시트콤의 대사가 전부일 정도로 무언가에 감응하기엔 낡고 지쳤고, 어쩌면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커피와 담배로 하루하루를 눅진하게 때우는 것일 뿐인 것 같은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끈덕한 논에 던져져 허우젹대다 이 또한 나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 안위하며 진흙에 서서히 빠져 들어가는 것 같달까요.

 

익숙했습니다. 아홉수니까요. 농담이 아닙니다. 열아홉 때도 그랬고, 지금 스물아홉 때도 그렇습니다. 저는 아홉수, 악삼재, 이런 것들을 이상하리만치 믿는 편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 바닷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사주를 볼 때면 저는 물에 빌어야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열아홉에는 강원도 작은 산속 마을에 잡혀 사느라 물에 빌지 못해, 물가 근처에는 발도 들이지 못해 그렇게나 끔찍했나보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아홉수를 맞이하며 제발 무탈히 지나가게 하기 위해, 큰 물에 빌기 위해 바닷가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비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정동진역과 정동진역 너머의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친구와 마주앉아 각자의 글을 썼습니다. 친구는 소설을, 저는 홈리스뉴스의 글을 썼습니다. 저는 소설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 친구의 소설을 읽는 것이, 친구의 소설을 써내려가는 경쾌한 리듬의 타자소리를 듣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기차 출발시간인 4시 전까지 글을 마감해야겠다고 다짐해보지만 고르고 고른 단어도, 이어붙인 문장도 마음에 드는 것들이 없어 지우고, 절망하고, 허공을 바라보고, 허공을 바라볼 시간에 바다라도 한 번 더 보자는 생각에 수평선을 내려다보기를 반복했습니다. 친구도 글이 써지지 않는 건지, 아니면 생각의 속도를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개탄스러운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사이 열차가 정동진역을 들어오고 나갔습니다.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글을 쓰는 건 즐거운 일이 분명합니다. 제가 소설을 쓸 수 없는, 아니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마치 붙잡고 일어날 동아줄을 꼬아내는 일 같달까요. 허우적대다 지쳐 질척한 진흙과 거머리들에 뒤엉켜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포기해버린 건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인건지 모른 상태로 누워있을 때. 바로 그 때 문득, 글로 엮어냈던 순간들, 글로 끝내 엮어내 버렸던 그 절실한 마음들을 떠올리며 한바탕 웃고, 울면 다시금 일어나 싸우고,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리곤 하더라고요.

 

결국 고마웠습니다. 글에 등장했던 창신동의 언니들, 창신동의 할아버지들, 대항로의 활동가들, 대항로의 언니들, 대항로의 형들. 그들이 보여준 말과 행동들. 그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 어느 것 하나 고맙지 않은 것들이 없었습니다. 내 눈이 카메라였다면 좋겠습니다. 매 순간을 가감 없이 녹화하여 애정 어린 청춘영화처럼 편집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절 살게 한, 결코 무뎌지지 않게 한, 결국 절실하게 한 그들의 다정함을 제 부족한 글솜씨로는 옮겨 담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래도 모르겠습니다. 연대와 환대, 응원과 기원의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만, 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창신동과 대항로, 아랫마을과 장판을. 수많은 거리의 현장들을. 이 거리, 이 도시 곳곳의 서로 연 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장소들을. 한땀 한땀 엮어 사랑의 마음으로 엮어내고 싶었습니다만, 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연히 사랑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떤 순간들을 통과해 낼 때는 지긋지긋하고, 끔찍스럽게도 죽네 사네 하더라도 결국 글로 엮어 낼 때면요. 결코 그것들이 시간이 지나 미화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끝끝내 그 순간들마저도 글로 꼬아내고 엮어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그 사랑의 마음으로 엮어낸 글들이 저의 너무나도 든든한 동아줄이 되었는데, 이 글을 읽은 독자 분들에게는 무엇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까마득하여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되었을까요. 무엇이 되었나요. 무엇이 되지 않았더라도 괜찮겠습니다. 저는 이 글을 마지막으로 홈리스뉴스에서 안녕합니다. 그래도 장판과 반빈곤운동판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사랑의 마음으로 글을 써내고, 동아줄을 엮어내고 있겠습니다. 그 동아줄을 엮고, 엮고, 엮다보면 어느새 저만치 길어져 여러분의 발치에도 닿아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정말 부지런히 뛰고, 걷고, 읽고, 쓰고, 엮는 삶을 살고 있어야겠네요. 그런 삶을 살고 있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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