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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53
2023.11.27 (00:15:54)

[똑똑똑]은 초보 활동가의 반빈곤 운동과 진보적 장애운동 활동을 담은 꼭지

  

그래서 원하는 것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민푸름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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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 '개대장'(별칭) <사진=홈리스행동>

  

“시설에서 나오고 무엇이 가장 힘드셨어요?”

이 질문을 듣고 개대장님(별칭)은 생각에 잠겼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진화위)에서는 2022년 말 국가폭력에 의한 시설 수용 피해생존자들로부터 진실규명 신청을 받았다. 서울의 경우 시립아동보호소, 시립아동상담소, 시립갱생원, 시립부녀보호소, 시립영보자애원을 포함했고, 다른 지역의 경우 형제복지원 영화숙, 선감학원, 대구시립희망원 등을 포함했다.

 

진화위에서 이처럼 진실규명 신청을 받는다는 공지를 홈리스야학 한편에 붙여놨는데, 이를 본 개대장님이 자신도 모처의 시설‘들’에 수용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에 홈리스야학 교사들이 조력하여 피해 사건을 접수했고, 1년여가 지난 10월 말, 홈리스야학 컴퓨터 교실에서 개대장님과 진화위의 면담 조사가 이뤄졌다. 나는 피해 사건 접수를 조력한 것을 계기로 면담 조사 자리에도 조력자로 함께할 수 있었다.

 

개대장님은 총 5곳의 시설 수용 피해를 접수했다. 당일 면담 조사를 진행한 조사원은 ‘5곳의 시설 모두가 진화위 진상규명 대상’인데다가,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기억하고 진술해 주시는 분은 없으셨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개대장님은 자신의 수용시설 피해 사실에 대해 진술을 잘해냈다. 개대장님의 진술 내용을 들으며 몇 번이고 주먹을 꽉 쥐었다가 풀곤 했다. 개대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그때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이 이 모든 일을 겪었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았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개대장님의 이야기 속에서 연이어 펼쳐졌다. 개대장님의 왼편 뒤 대각선으로 앉아있었는데 이야기를 하는 개대장님의 단어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반의반도 안 보이는 개대장님의 눈과 입을 좇느라 눈이 뻐근했다. 이가 거의 없어 발음이 부정확했지만 개대장님의 문장은 짧고 명확했고, 개대장님의 이야기는 그 속에서 무언가를 환하게 비추기도, 어둡게 꺼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근래 들은 어떤 이야기보다 더 마음을 혼란하게 하면서도, 잘 들리는 이야기였다.

 

이전까지 시설에서 겪어야 했던 각종 피해 사실에 대해서는 막힘없이 대답하던 개대장님은 이 질문 앞에서 멈췄다. ‘시설에서 나오고 무엇이 가장 힘드셨어요?’ 한참 고민 끝에 이렇게 답했다. ‘특별히 좋고 나쁘고는 없어요.’ 그리고 서울역과 수원역에서 오랫동안 지낸 일, 그곳에서 시설에서 함께 지낸 동료들을 만났던 일, 그러다 운이 좋게 임대주택에 들어간 일을 이야기했다.

 

“이 사건조사를 통해서 원하시는 게 뭐에요? 제일 억울하셨던 게 뭐에요?”

조사원은 다정하게 물었다. 내가 굳이 ‘다정하게’를 강조하는 이유는 세상 많은 사람이 이 ‘이유’를 다정하지 않게 묻기 때문이다. 왜 굳이, 이제 와서, 뭘 얻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냐는 식으로 묻기 때문이다. 개대장님은 이번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난 딱히 대단한 걸 원하는 것도, 억울한 것도 없는 또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 내가 함께 활동하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수미 권익옹호활동가다. 개대장님이 면담 조사를 진행했던 10월, 수미 언니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의 자립왕으로 선출됐다. 우리는 ‘수미가 어둠을 헤치고’라고 크게 적힌 현수막을 들고 수미 언니를 축하했다. 수미 언니는 세상 모든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을 탈시설 시켜서 자립왕으로 만들겠다는 어마어마한 야망이 담긴 수상소감으로 우리를 쓰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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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왕 수미 언니 축하식’ 장면. <사진=필자>

 

언젠가 수미 언니를 인터뷰하며 물어본 적 있다. 언니는 재가 장애인으로 40년을 살다, 소위 제 발로 시설로 들어가 수십 년을 산 시설 장애인이다. 억울하지 않았냐고,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던 적 없냐고 묻자. 언니는 고민도 하지 않고 그랬던 적 없다고 대답했다. 장애인이면 그렇게 살아도 되는 줄 알았고, 차별 받으면서 살아도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아서 억울하지 않았고, 시설에서 나와 보니 억울하긴 했지만, 억울한 마음을 품으면 나만 힘드니 안 그러기로 했다고 말이다. 나는 세상을 용서한 탈시설 장애인의 마음을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어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어떻게 세상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평소의 나였다면 왜 용서까지 그의 몫이어야 하냐고 화를 냈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대신 수미 언니는 ‘나는 그러고 살았지만, 다음 세대 장애인은 차별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어서’ 싸운다고 했다. 그게 수미 언니가 원하는 것이었다. 수미 언니가 자신의 시설경험을 이야기하고, 탈시설 운동을 하고, 자립생활운동을 하고, 진보적 장애운동을 하는 건 자기 자신이 무언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게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다음 세대 장애인이 자신과는 다른,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서다. 세상을 용서한 이의 사랑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그때부터 투쟁의 힘을 간절히 믿어보기로 했다.

 

면접조사를 마치고 개대장님과 담배를 피우는데 뻘쭘하다는 듯 개대장님이 몇 번이고 자신이 대답을 잘한 게 맞는지, 이가 없어서 잘못 알아들은 건 아닌지 확인했다. 나는 진짜 제대로 잘 들었다고 대답했다. 개대장님은 그래도 이런 얘기를 하니 한겨레에서도 와서 듣고, 저런 조사원도 와서 들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개대장님이 원하던 것도 결국은 이런 수용 피해 사실이 더 많이 알려지고, 이런 문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작년 제출한 진실규명신청서의 신청 취지에 이렇게 썼다. ‘삶의 많은 시간을 시설에서 보내야 했음. 원하지 않은 시설에서 원하지 않은 일들을 하며 자유와 인권을 침해당했음.’ 

 

그저 지역사회에서 살고자 했던 사람들일 뿐인데,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 시설에 수용시켰던 국가. 이제와 그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너무 늦었지만, 그 진실을 규명하여 다시는 그 강제수용을 반복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그 강제수용 피해사실을 규명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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